리트비넨코 독살, 나발니 수감, ‘유코스’ 회장은 추방…프리고진 수사 안끝나 “벨라루스 생활 가능할지…”
푸틴이 프리고진에게 말 그대로 ‘자유’를 보장한 것에 대해 사실 놀란 사람들은 많았다. 그간 푸틴이 지도자로서 보인 모습은 정적들에 대해 가혹하기로 유명한 독재자의 모습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가령 진보 야당 인사인 일리야 야신과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는 지난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맹렬히 비난한 대가로 각각 8년 6개월과 25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들의 무기가 ‘말’이었다면, 사실 프리고진의 무기는 ‘탱크와 총’이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 ‘타임’은 프리고진이 “결코 안전을 보장받은 건 아직 아니다”라고 강조했으며, 정치 평론가인 데이비드 프룸은 심지어 프리고진의 운명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운명에 비유하기도 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뛰어난 정치가였던 카이사르는 결국에는 원로원에 의해 암살당한 비극의 인물이다.
러시아 언론 매체들도 이런 우려를 내비쳤다. 합의가 선의로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영통신 ‘RIA 노보스티’는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 입건이 아직 취소되지 않았다고 보도하면서 “과연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약속이 앞으로도 계속 지켜질지는 미지수다”라고 했다.
러시아 신문인 ‘코메르산트’와 3대 관영 통신사인 ‘타스(TASS)’ ‘리아(RIA)’ ‘인테르팍스(Interfax)’ 등도 러시아 연방보안국이 프리고진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곧 푸틴에게 굴욕감을 준 반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 러시아 대검찰청 관계자는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 입건에 대한 수사는 멈추지 않았다. 수사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프리고진은 ‘배신’과 ‘반역’ 혐의로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이런 가운데 푸틴이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국가두마(연방 하원)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따르면 바그너그룹과 같은 러시아 내 민간군사기업(PMC)의 탄압은 이미 시작됐으며, 실제 이를 규제할 법안 초안도 작성되고 있다.
‘타스’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러시아 대표 SNS인 ‘브콘탁테’에 있는 프리고진의 페이지를 삭제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바그너그룹의 신병 모집 사이트 역시 이미 폐쇄된 상태다. 대신 현재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3대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모병 활동을 하고 있다. 바그너그룹의 직원은 모병 활동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변한 건 없다. 우리는 평소처럼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스톡홀름 동유럽연구센터의 마틴 크라흐 부소장은 “프리고진이 다시는 러시아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푸틴이 이번 반란을 잊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베를린 싱크탱크인 유럽회복력이니셔티브센터의 설립자인 세르게이 수메니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푸틴은 이제 자신의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적들과 반역자들을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만 문제는 푸틴이 그렇게 하는데 필요한 방편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라고 했다.
충성스러운 크렘린의 선전가들도 푸틴의 선처에 분노의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민간 용병기업 소속의 프리고진이 러시아군에 등을 돌리고 크렘린의 약점을 노출하도록 내버려둔 데 대해 분개하고 있다. ‘데일리비스트’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선전 쇼프로그램인 ‘선데이 이브닝 위드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가 이런 푸틴의 관대한 처사에 혐오감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강경 민족주의자이자 퇴역 육군장교인 안드레이 구룰료프 러시아 국가두마의원은 “전쟁 중 반역자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들이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하든, 이마에 총알을 맞는 것이야말로 프리고진에게는 유일한 구원이다”면서 “배신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협박이 괜한 소리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 푸틴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반하는 정적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전혀 관대하지 않았다. 2003년에는 러시아 권력자들의 부패 현황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최고 갑부 가운데 한 명이자 ‘유코스’ 회장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를 10년간 징역형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석방된 후 스위스 취리히로 추방됐다.
2021년 1월에는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체포했다. 이로 인해 당시 러시아에서는 근 몇 년 만에 가장 큰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러시아 정부는 친나발니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티모피 밀로바노프 키이우 경제대 총장은 “과거 푸틴에게 도전했던 인물들은 모두 현재 망명 중이거나 박해를 받고 있거나 또는 살해됐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미스터리하고 불명확한 이유로 목숨을 잃은 반대파들도 있었다. KGB 요원 출신으로 과거 러시아 연방보안국을 맹렬히 비난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2006년 런던의 한 호텔에서 차를 마시던 중 급사했다. 영국 수사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리트비넨코는 독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당시 그가 마신 차 안에서는 치명적인 폴로늄-210이 다량 검출됐다. 당시 사건에 대해 서방 언론들은 푸틴에 의해 ‘승인된’ 명령에 따라 행동한 러시아 요원들의 짓이 분명하다고 의심했다.
2015년에는 야당 지도자이자 푸틴 비판가였던 보리스 넴초프가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등에 네 발의 총을 맞고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넴초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에 동참할 것을 러시아 대중에게 촉구했고,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만에 총격을 당해 사망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전 러시아 공산당원이었던 데니스 보로넨코프는 러시아를 탈출한 뒤 푸틴을 비판하다가 2016년 키이우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 당시 이에 대해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저지른 국가 테러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배후에 푸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크라흐는 “프리고진이 일으킨 이번 무장 반란은 이전에 보았던 그 어떤 반란과는 질적으로 달랐다”면서 “과거 푸틴에 도전했던 사람들은 주로 정치체제 밖에 존재하는 인물들이었지만, 프리고진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상당 부분을 푸틴에게 빚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푸틴이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보다 더 편집증적이고 훨씬 더 억압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다시 말해 프리고진에 대한 보복을 시작으로 야당과 시민사회, 언론을 더욱 탄압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크라흐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러시아는 앞으로 그 어떤 나라보다도 더욱 통제가 심한 독재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서 “따라서 공개적으로 권력에 이의를 제기한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조용히 망명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더욱 불확실해졌다”고 점쳤다.
케네스 얄로위츠 전 벨라루스 주재 미국 대사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으며, 이는 분명히 프리고진에게든 푸틴에게든 혹은 러시아에게든 이야기의 마지막 장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그너 용병 사망 보상금 1.5조 원…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바그너그룹 소속의 용병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얼마일까. ‘데일리비스트’에 따르면, 용병들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만 해도 매달 4400파운드(약 730만 원)를 급여로 받았지만, 지난해 10월에는 이보다 약 두 배가량 많은 월 8000파운드(약 1330만 원)를 받았다.
더욱 놀라운 건 전선에서 싸우다 사망할 경우 받는 보상금이다. ‘독일마셜펀드’는 푸틴을 위해 우크라이나군과 싸우다 전사한 용병들의 유가족들에게는 현재 500만 루블(약 7600만 원)이 보상금으로 지급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문제는 이 보상금이 어떻게 지급되고 있는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보상금은 은행 계좌를 통해서가 아닌 현금으로 전달되고 있다. 일종의 ‘블랙 캐시(음성적으로 유통되는 돈)’인 셈이다. 실제 몇몇 유족들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보상금을 받기 위해 특정 장소로 직접 갔으며, 그곳에서 현금다발이 든 가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세무조사를 비롯한 다른 금융조사를 받지 않도록 그 돈을 은행 계좌에 넣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다고도 말했다.
현재 이렇게 음성적으로 시중에 풀려있는 돈은 약 1000억 루블(약 1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러시아 경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유동성이 계속 증가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러시아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중에 유통 중인 현금은 증가했으며, 이는 다시 말해 물가를 잡기 위해 애쓰는 중앙은행의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사망 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유가족들도 있다. 익명의 한 바그너 용병이 지난 1월 독립매체 'VchK-OGPu' 텔레그램 채널에 밝힌 바에 따르면, 처형을 당하거나 혹은 시신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보상금을 받지 못한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