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설정액 76조 원으로 12년 만에 43배 급증…대출 일으켜 매입했는데 공실 늘고 금리 올라 낭패 가능성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2008년 말 해외펀드 설정액 77조 원 가운데 부동산 비중은 2.28%로 1조 8000억 원이 채 안 됐다. 올해 6월 말 해외펀드 설정액은 약 300조 원이다. 12년 동안 3.9배 늘었다. 그중 부동산펀드는 76조 원으로 43배 급증했다. 전체 해외펀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이후 25%를 웃돌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럽의 재정위기 등을 겪으면서 주식과 채권 등 금융자산 가격이 크게 출렁이자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은 증시와 연관성은 낮으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자산을 찾기 시작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채권은 금리 하락으로 충분한 이자수익(Yield)을 내지 못했다. 기관들은 상업용 부동산이 임대차 계약기간 동안에는 증시 부침과 관계없이 안정적 임대수익이 발생하고 자산가격이 상승하면 매각을 통한 추가 수익도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저금리로 부동산 매입을 위한 대출도 일으키기 쉬웠다. 원금 대비 차입이 많을수록 기대수익은 높아진다. 무역 흑자로 큰돈을 번 한국과 중국의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중개회사 등의 영업도 활발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한국의 기관투자자들을 만나러 오는 중개인들도 상당했다. 투자자들과 투자대상 부동산을 살핀다는 명목으로 중개인들과의 해외출장도 이뤄졌다.
중국의 기관투자자들이 2015년 증시 폭락 이후 시진핑 주석의 해외투자 단속으로 글로벌 부동산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중국의 빈자리를 한국의 기관투자자들이 메웠다. 모건스탠리캐피탈그룹인덱스(MSCI) 리얼에셋(실물자산) 자료를 보면 한국은 2019년 유럽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외부투자자였다. 2019년에만 18조 5000억 원을 거래할 정도였다.
투자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투자한 금액(설정액) 대비 자산가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연도별로 따져보면 2008년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평균 5% 이상이다. 다만 2012년 11%를 정점으로 설정액 대비 자산가치 초과율은 하락세다.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둔화된 결과다. 2020년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최근 3%대를 회복했지만 좋은 성적이라 볼 수 없다. 가장 안전한 국채 수익률을 밑돌기 때문이다.
증시와 상관관계는 낮지만 상업용 부동산도 경제와 금융환경 변화에는 영향을 받는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가 확산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급감했다. 미국 부동산서비스업체 CBRE가 집계한 올해 3월 말 전세계 오피스 공실률은 12.9%로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정점이던 2009년 13.1%에 버금간다. 미국 주요 도시인 LA와 샌프란시스코 등은 20% 이상이고 유럽 도시들도 20%에 육박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최근 미국의 오피스 공실률이 35~40%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금융센터(IFC)는 최근 보고서에서 “1분기 유럽의 오피스 공실률은 미국 공실률을 밑돌긴 하지만, 거래액은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면서 “스웨덴과 독일을 중심으로 전체 상업용 부동산 거래가 전기 대비 62% 급락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증권사의 지역별 해외 부동산 투자 비중은 미국이 47%로 가장 높고 이어 유럽(26%), 아시아(12%), 영국(8%), 기타(7%) 순이었다. 용도별로는 오피스(50%), 숙박시설(17%), 기타(15%), 주거용(12%), 물류(7%) 등으로 70% 이상이 상업용이다.
치솟은 금리도 위협 요인이다. 해외 부동산 투자는 대부분 차입을 동반했다. 투자자들이 낸 투자금을 바탕으로 싼 금리로 대출을 일으켜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제때 팔지 못해 대출을 연장할 때 금리가 상승하면 이자부담이 급증한다.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올해부터 2025년까지 해외 부동산펀드(특별자산 제외)의 만기물량은 전체 설정액의 40%에 육박하는 30조 원에 달한다. 부동산펀드는 만기가 되면 자산을 팔거나 새로운 조건으로 투자를 연장해야 한다. 임대차 계약이 줄어 공실이 늘면 자산을 팔기 어려워지고 그에 따라 기존 대출을 갚기가 곤란해진다. 대출을 갚지 못하면 높아진 금리로 다시 대출(Refinancing)을 해야 한다. 공실로 임대수익은 줄어드는데 이자 비용만 늘어나면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지스자산운용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트리아논빌딩이 이 경우다.
임대차 계약은 안정적이지만 애초에 너무 비싸게 사서 문제가 된 사례들도 있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의 미국항공우주국(NASA) 빌딩이나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벨기에 법무부 빌딩은 임대차 계약은 유지되고 있지만 가격이 급락했다. 현지 사정에 어두웠던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중개인들에 속아 바가지를 쓰면서 '호구'가 된 사례다. 특히 이 두 곳은 운용사들이 투자금 상당수를 개인투자자로부터 모집했다. 환매가 연기되거나 대규모 손실이 확정되면 불완전판매 논란이 일 수도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5년간 2등급 빌딩을 사들인 한국 투자자들의 심각한 타격 가능성을 지적했다. 한국의 투자자들은 장기임대 계약만 돼 있으면 건물의 입지나 친환경 등급에 대한 고려 없이 매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의 재택근무 선호를 줄이기 위해 기업들은 사무실을 최상의 공간으로 꾸미려 애쓰고 있다. 한국 투자자가 주로 매입한 2등급 건물은 엄청난 개보수 비용을 들이기 전에는 이 같은 수요에 부응하기 어렵다.
임대료로 이자비용도 감당할 수 없는 부동산이라면 헐값에라도 팔아야 한다. 수요는 줄고 금리는 높아진 상황에서 매각이라고 쉬울 리 없다. 그래도 팔아치우려면 값을 많이 깎아야 한다. 그런데 할인 판매에 따른 손실이 특정 투자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 미래에셋의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투자가 그렇다. 국내 금융회사들과 2800억 원을 투자했지만 선순위 채권자가 아니어서 빌딩이 팔렸지만 자금회수가 어려워 투자금의 90%를 손실로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단독] 미래에셋 홍콩 부동산 투자 2800억 원 상환 연기 내막).
해외 부동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곳은 연기금과 보험·증권사다. 국민연금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해외 부동산 투자액만 약 40조 원에 달한다. 해외투자에 특화된 한국투자공사(KIC)의 지난해 말 부동산 및 인프라 순자산도 165억 달러(21조 4500억 원)에 달한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보험사와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관련 위험노출액(익스포져·Exposure)도 각각 15조 원, 22조 원 이상이다.
해외 부동산의 부실은 일단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규모 파악이 어렵다. 실시간 시장가격이 결정되는 주식이나 채권과 달리 부동산은 자산 평가나 거래 전에는 정확한 손실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아직 드러나지 않는 대규모 손실이 올해 말 장부에 반영된다면 관련 금융회사들의 무더기 신용등급 하락과 자금시장 경색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특히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까지 감당해야 하는 증권사들의 타격이 상당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투자사들은 투자한 건물 가치가 투자 당시보다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투자사마다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자기 자본을 통해 직접 투자한 경우 일단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