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의료자문‧고지의무 위반 등 이유로 들어…“처벌 수위 강화와 교육 진행 필요”
최근 금감원은 메리츠화재와 DB손해보험의 보험금 부지급 문제에 대해 과징금‧과태료를 부과했다. 메리츠화재에 과태료 2640만 원과 과징금 500만 원, DB손해보험에 과징금 1400만 원을 부과하고, 관련 직원에 대해서는 자율처리를 의뢰했다.
보험금 부지급은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했는데도 보험사에서 가입자의 치료 내용이 약관에서 보장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금감원은 부당하게 보험금이 부지급된 사례를 적발하기 위해 보험사에 대한 정기검사와 수시검사를 진행한다. 이번 메리츠화재와 DB동부화재 보험금 부지급 사례는 지난해 금감원이 검사에 나서 적발했고, 제재 심의와 금융위원회 정례회의를 통해 과태료 및 과징금 등 제재 조치를 확정한 것이다.
메리츠화재는 2019년 7월 19일~2021년 12월 15일 총 14건의 보험계약에 대해 보험약관에서 정한 내용과 다르게 보험금 405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DB손해보험은 2019년 8월 22일~2021년 12월 30일 총 26건의 보험계약에 대해 보험약관에서 정한 내용과 다르게 보험금 2억 62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해당 보험사들은 적발된 건에 대해서는 모두 보험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고의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게 아니라 실수로 누락된 건들이 많이 있었다”고 전했다. DB손해보험 관계자는 “각 개별 사례마다 지급을 못하는 사유가 있어서 지급을 하지 않은 것이고, 의도적으로 지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비단 이번에 국한하지 않고 백내장 실손보험금 부지급, 암 보험금 부지급 등 보험금 부지급 사례는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부지급 행태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금감원의 처벌과 제재가 솜방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약하다”며 “소비자들이 봐도 금감원 처벌이 우스울 정도인데 보험사들이 봤을 때는 어떻겠냐”고 말했다.
최근 금감원에 적발된 메리츠화재와 DB동부화재의 사례를 살펴보면 해당 보험사들이 부지급한 보험금은 적게는 4000만 원대, 많게는 2억 6000만 원대에 달한다. 하지만 금감원이 내린 과징금과 과태료는 500만 원, 2600만 원 대에 불과했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해당 보험계약의 연간 보험료의 100분의 50 이하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금감원에 적발되면 보험사는 부지급된 보험금을 가입자들에게 지급하기는 한다. 하지만 금감원이 검사 기간 이외의 보험금 부지급 사례까지 적발할 수는 없고, 보험사에서도 적발되지 않은 부지급 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적발되지 않은 건에 대해 개인적으로 금감원에 민원을 넣을 수는 있지만 민원 적체 현상이 생겨 처리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금감원은 ‘최근 분쟁민원 적체로 처리에는 3~6개월 정도 소요되거나 상황에 따라 6개월 이상 소요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금감원에 민원을 넣어도 처리 시간이 오래 걸려 3~6개월 동안 발생하는 병원비 지출이나 정신적 고통은 보험 가입자가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최근 롯데손해보험의 암 보험금 부지급 사례에서는 금감원 민원 지연 현상을 보험사에서 역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롯데손해보험 가입자들은 해당 보험사가 기존에 지급하던 암 면역 치료제에 대해 갑자기 부지급을 선언했다며 집단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고의로 치료비 지급을 지연시켜 암환자의 조기 사망에 일조하고 있다”며 “보험사에서 부지급을 내려도 당국의 별다른 제재가 없는 점을 악용해 오히려 환자로 하여금 금감원에 민원 넣기를 독려하고, 금감원의 민원 적체 현상을 역이용해 부지급 기간 연장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소비자와 보험사 간 정보 비대칭도 보험금 부지급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보험사와 가입자 간 정보 비대칭이 보험금 부지급 문제를 키웠다고 본다”며 “보험 가입자들이 약관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가입자들은 이를 부당하다고 인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도 “보험사에서는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경우와 지급되는 경우를 명시 해놓았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 불완전판매로 인해 보험금 부지급 사례가 계속 발생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보험사들은 의료자문 제도나 고지의무, 애매한 약관 내용 등을 통해 보험금 부지급 행태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청한 보험업계 관계자 A 씨는 “보험사들이 의료자문 제도로 소비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들이 의사와 직접 대면해서 의사소견서를 받아와도 보험사들과 연결돼 있는 의사들의 의료자문 서류 한 장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버린다”고 말했다. A 씨는 “의료자문 서류를 쓴 의사들은 보험사들에 몇백씩 돈을 받고 보험사에 유리하게 의료 자문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자문은 보험금 청구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국내 10대 손보사의 보험금 청구건 중 의료자문 시행 건수는 지난해 하반기 2만 480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5% 증가했다. 의료자문을 통한 보험금 부지급률도 2021년 하반기 1019건에서 지난해 하반기 1871건으로 늘어났다.
보험사들은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은 약관을 들어 소비자들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도 한다. 롯데손해보험에 가입한 한 암 환자는 치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암 면역 치료를 받았지만 해당 치료가 암에 대한 직접 치료가 아니라며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A 씨는 “보험사들이 약관에 직접 치료를 받았을 때만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해놓은 경우가 있는데 ‘직접’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며 “소비자들이 이 직접 치료라는 단어를 봤을 때 어떤 치료를 말하는 건지 알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입자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도 한다. 고지의무란 계약자가 보험에 가입하기 전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사항이다. 보험금 지급 심사시 고지의무 위반 사례가 발견되면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부지급하거나 일부만 지급한다. 고지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보험계약자지만 고지의무 절차와 구체적인 범위를 안내받지 못해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9월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에서 받은 ‘고지의무위반 사유로 인한 보험금 부지급건’ 자료에 따르면 메리츠화재의 부지급 건수가 2016년 1200건에서 2021년 4016건으로 3배 이상 늘었고, 삼성화재는 같은 기간 752건에서 2037건으로, 현대해상은 719건에서 2248건으로 증가했다. 생명보험사의 부지급 건수는 삼성생명이 같은 기간 560건에서 1548건으로 늘었다.
금융‧소비자 단체들은 보험 가입자들이 보험금 부지급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금융당국에서 보험 관련 교육 등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보험사에서는 약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부당하게 보험금을 부지급한 보험사에 대해서는 처벌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며 “보험금 부지급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도 소비자 보호를 우선 원칙으로 삼아 보험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보험은 전 국민이 다 가입하다시피 했는데 보험 약관이나 가입시 주의사항 등에 대해 국민들을 대상으로 금융당국에서 교육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꼭 알아야 하는 것이지만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따로 배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보험 관련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용 교수는 “보험사들에 부과하는 과태료나 과징금을 강화해야 될 것 같고, 나이드신 분들에 대해서는 보험 가입 이후에 보험약관이나 주요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서비스 제공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금융감독원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가 보험금 부지급 문제로 적발되면 금감원 검사 기간 동안 적발된 건에 대해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보험금 부지급 관련된 과징금을 수입 보험료 기준으로 하는 것보다 부당하게 지급되지 않았던 보험금을 기준으로 잡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지적이 나와서 해당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