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피 탈출하고 5000선 가려면 비상식적 기업 지배구조부터 개선해야”
4월 17일 ‘소액주주 혁명’이란 책을 펴낸 김용남 전 의원의 말이다. 서울중앙지검에서 경제 수사를 전문으로 하다가 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 전 의원은 최근 한국 금융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금융이란 날개가 꼭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후진적인 시장을 개혁할 입법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투자자산운용사 자격까지 취득했다는 김 전 의원은 최근 ‘세이브 코스피’ 등 소액주주 운동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국내 1400만 소액주주가 자신의 권리를 깨닫고, 뭉쳐서 권력을 갖게 되면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일요신문은 서초동 소재 김 전 의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한국 주식시장 개선 방안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소액주주 혁명’이란 책을 냈다. 주식시장 관심은 언제부터 생겼나.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검사 시절부터니 20년이 넘었고 가장 최근에는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이 기폭제가 됐다. 한국은 경제 순위로는 10위권이지만, 지배구조(거버넌스)는 어느 나라에 비할 데 없이 후진적이다. 국내 소액투자자(개미)는 한국 주식에 투자했다 실패한 원인을 실력 없음이나 운이 없음에서 찾는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주식시장은 박스권이거나 하락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기업 지배구조가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실질적인 이유다. 또한 금융은 한국 경제가 다음 먹거리로 삼아야 할 산업이다. 지금까지 반도체, 최근 이차전지 등이 주목 받았다면, 금융도 경제가 도약하는 데 꼭 필요한 산업이다. 금융은 지금과 같은 주식시장을 두고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도 고려했다. 우리가 나이 들면 받아야 할 국민연금도 국내 주식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그런 점을 생각해서라도 이 점을 꼭 고쳐야 한다고 봤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지정학적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남북 대치 등 지정학적 이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중국과 갈등이 있는 대만이나 중동 한복판에 있는 이스라엘보다 코스피가 PBR(주가순자산비율) 기준으로 더 싸게 거래된다. 한국은 지배구조 이슈가 있기 때문에 싸게 거래되는 게 본질이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 어떤 나라도 한국과 같은 지배구조가 아니다. 이 점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 지배구조의 문제는 뭔가.
“뭘 먼저 지적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일단 지난 몇 년 동안 큰 문제가 됐던 물적분할과 동시에 상장해버리는 행태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물적분할은 IMF 위기에서 문제 있는 사업부를 떼어내서 매각이나 청산을 하라고 만든 제도다. 그런데 이게 거꾸로 가고 있다. 가장 유망한 사업부를 떼어내서 동시에 상장한다. 주식시장에 문제 있는 상장사가 너무 많다. LG에너지솔루션을 떼어낸 LG화학이나 한국조선해양 등 문제투성이다. 2022년 9월 DB하이텍은 물적분할을 추진하다 소액주주의 분노가 커지고 오너 일가가 국회 국감 증인 출석 분위기까지 나오자 ‘물적분할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6개월 만에 다시 재추진해 결국 물적분할을 해버렸다. 최근에는 비난이 커지니까 물적분할 후 동시 상장이 잠시 주춤한 상태인데, 입법으로 막아야 한다. 입법 전이라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물적분할 안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고 보나.
“양날의 칼이라고 본다. 국내 규모 있는 기업 중 국민연금이 1대 주주나 2대 주주인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이 악용되면 정치권이 사기업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객관적으로 봐서 주주와 회사를 위한 경영을 하고 있느냐고 판단해 옳은 편에 서야 한다. 다 떠나서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 자금인데 기업 오너 일가만을 위해 내놓은 물적분할에 찬성하는 게 수익성에 도움이 되는 행동인가.”
―금융당국에서도 몇 가지 대책이 나오고 있다. 일단 금융위원회에서 물적분할 후 5년 내 상장을 막겠다고 했다.
“물적분할 후 동시 상장 같은 극단적 사례는 막을 수 있지만 미흡한 대책이다. 5년은 너무 짧다. 보통 투자자는 사모펀드에 약정하고 투자하는 기간이 5년 내지 7년이다. 오너 일가가 돈을 빌렸다가 나중에 상장해서 돈을 돌려줄 수도 있는 기간이다. 아니면 물적분할해놓고 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비상장사로 상장사의 이익을 빼돌리는 ‘터널링’을 통해 기업을 키워 상장시키면 된다. 물적분할하면 소액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겠다는 대책도 있지만 불합리하다고 본다. 물적분할을 발표하기 전부터 그 같은 소문만으로 주가는 폭락한다. 그런 헐값에 사달라고 하는 건 소액주주에게 큰 손해다.”
―기업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해야 한다. 자사주 소각은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다. 그런데 국내 기업은 자사주를 취득하고 소각하지 않는다. 소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외국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자사주 취득은 자사주 소각을 의미할 정도로 취득 후 바로 소각한다. 한국에서는 기업이 자사주 취득 후 경영권 방어에 쓰거나 인적 분할 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 과거에는 자사주는 소각 목적으로만 취득할 수 있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란 말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사실 외국인에게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다. 대주주가 갖고 있는 30~40% 지분과 소액주주가 갖고 있는 몇 주가 왜 다르게 거래돼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외국에서는 경영권을 넘길 때 다른 주주도 같은 가격에 사줘야 한다. 의무 공개 매수 제도가 IMF를 기점으로 사라졌는데 복구해야 한다. 현재 경영권 변경 시 50%+1주 의무 매수 제도로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글로벌 스탠더드처럼 100%를 원칙으로 하는 게 맞다. 최근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지분 약 40%를 공개매수했다. 이때 소액주주가 들고 있는 지분 중 채 절반이 안되는 양만 공개매수됐다. 공개매수를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50%+1주도 미흡하다.”
―책에서는 자본시장 관련 소송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집단소송 제도는 기업의 잘못된 결정에 피해를 본 단 한 사람이라도 소송을 걸어 승소하면 동일한 피해를 본 모든 소비자(주주)에게 동일한 피해 배상이 이뤄지도록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소송 허가부터 최종 판결까지 사실상 6심 재판을 받아야 한다. 집단 소송 요건이 맞는지 3심을 거치고, 맞는다면 다시 3심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10년 정도 걸린다. 한국에서는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가 없다. 만약 회사 이사회에서 잘못된 판단이 있다고 소송을 제기하려고 해도, 이사회 회의록을 받아볼 수가 없는데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나. 증거개시제도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마치 검사와 같은 자격을 갖고 증거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게 꼭 필요하다. 이런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소송 기간도 오래 걸리고 소송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최근 쉰들러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경영진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손해를 입혔다며 제기한 소송을 두고 약 9년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 돈을 쉰들러가 직접 받지도 않는다. 현 회장 등이 현대엘리베이터에 납부하는 돈이다. 쉰들러가 소송 비용만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을 썼을 텐데, 일반 주주들은 이걸 감당할 수 없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보수정당 출신이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기업 친화적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어 보인다.
“정반대다. 지금 내가 얘기한 것들이 기업 친화적이고 시장주의적인 얘기다. 기업 가치를 높이고 우리나라 금융시장 발전을 가져오자는 거다. 현재는 지배주주와 소액주주가 불평등한 게임을 하고 있다. 이걸 평등한 게임으로 바꾸자는 얘기다. 다만 대주주가 이 같은 터널링을 계속하는 이유는 결국 상속 문제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최고 상속세율이 60%로 지나치게 높다. 지배구조 개선과 상속세 개편을 맞물려 개선하면서 정치권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면 코스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리라 보나.
“코스피는 PBR 1.0 정도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PBR 1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잦다. 기업을 다 청산해서 나눠 가지는 게 이득 수준이라는 것이다. 주주 친화적인 미국은 PBR 4.0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한국이 주주 친화적인 시장으로 어느 정도만 개선해도 PBR 2.0 정도 기준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코스피 5000이다. 수십 년 넘게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를 해결할 방법은 지배구조 문제 해결이다.”
―‘소액주주 혁명’이라는 책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됐나.
“한국 주식시장에서 소액주주는 푸대접 받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자신들 권리가 어떤 게 있고, 그들이 뭉치면 힘이 얼마나 센지 알게 되면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소액주주가 뭉치면 오너 일가보다 지분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지금은 소액주주가 주총에 참가하지 않아 표가 모이기 어렵다. 그런데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해 참여를 쉽게 하면, 이들이 권력을 잡게 되고 계급적 변화가 오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과거 왕족이나 귀족 계급이 지배하다 시민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된 것처럼 혁명과 같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1400만 소액주주가 이런 상황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 짓게 됐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