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형 200m 동메달 따며 아시안게임 전망 밝혀…동반 결승행 이호준은 6위
지난 25일 열린 남자 자유형 200m 결선 경기가 상징적이었다. 황선우(강원특별자치도청)와 이호준(대구광역시청)이 나란히 결선에 올라 함께 물살을 갈랐다. 세계선수권 경영 개인 종목에서 한국 선수 두 명이 결선에 동반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결선행 티켓은 출전 선수 72명 중 8명에게만 주어지는데, 그 안에 한국 선수가 둘이나 포함됐다.
결과도 좋았다. 황선우는 한국 신기록(1분44초42)으로 동메달을 수확해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2회 연속 메달을 따냈다. 이호준은 개인 첫 세계선수권 결선 무대에서 1분46초04로 역영해 6위에 이름을 올렸다. 흰 수영모에 나란히 태극기를 새긴 둘은 경기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옹하며 남다른 감회를 나눴다. 이호준은 "세계선수권 개인전 결선에 두 명이 올라가는 건 수영 강국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그 목표를 이뤄 뿌듯하다. 후배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황선우를 향한 기대
황선우는 명실상부한 한국 수영의 에이스다. 지난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자유형 200m에서 1분44초47의 한국신기록으로 다비드 포포비치(루마니아·1분 43초 21)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가 세계선수권 경영 종목에서 시상대에 오른 건 2011년 남자 자유형 400m의 박태환 이후 11년 만이었다. 그 후 1년이 지난 올해 세계선수권이 다시 열리자 황선우의 2회 연속 메달 획득 여부는 한국 수영의 가장 큰 목표이자 관심사가 됐다.
세계선수권 2회 연속 입상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도 해내지 못한 위업이다. 박태환은 2007년 호주 멜버른 대회에서 자유형 400m 금메달과 200m 동메달을 땄지만, 2009년 이탈리아 로마 대회에서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 후 2011년 상하이 대회에서 다시 자유형 400m 정상에 올라 명예를 회복했다. 황선우는 그 후 10년여 만에 처음으로 한국 수영이 배출한 '월드 클래스급' 선수였다.
조짐도 좋았다. 황선우는 지난 6월 광주에서 열린 전국수영선수권 자유형 200m에서 1분44초61에 터치패드를 찍어 올해 세계 랭킹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냈다. 미국 수영 전문매체 ‘스윔스왬(SwimSwam)’은 "황선우는 후쿠오카에서 메달을 목에 걸 가능성이 큰 선수 중 한 명"이라며 "포포비치에 이어 황선우가 2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황선우 역시 "자유형 200m에서는 무조건 시상대에 올라야 한다"며 남다른 각오와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황선우와 중국의 '신성' 판잔러의 첫 진검승부도 관심을 모으는 요소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황선우는 아시아에서 적수가 없는 자유형 단거리의 일인자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1년 미뤄진 사이 한 살 어린 판잔러가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다. 판잔러는 지난 5월 중국선수권 200m에서 1분44초65를 기록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황선우의 올해 최고 기록에 불과 0.04초 모자랐다. 둘은 아시안게임 두 달 전 열리는 이 대회에서 금메달의 주인을 가늠할 전초전을 예고했다.
물론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따로 있었다. 지난 대회 우승자인 포포비치였다. 그는 지난해 유럽선수권 자유형 200m에서 1분42초97로 세계 주니어 신기록을 세웠다. 전신 수영복 착용이 금지된 이후 1분 43초의 장벽을 넘은 선수는 포포비치가 유일하다. 올해 최고 기록은 1분45초49로 세계 7위에 그쳤지만, 스윔스왬은 "포포비치를 자극할 만한 대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선수권에서 황선우, 판잔러 등 호적수들과 레이스를 펼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였다.
황선우도 경쟁자들의 실력과 상승세를 인정하면서 긴장의 고삐를 조였다. 그는 "포포비치는 자유형 100m(46초86)와 200m에서 엄청난 기록을 보유한 선수다. 지금은 내가 따라가는 입장"이라며 "내 기록을 조금씩 줄여가다 보면 포포비치와의 격차는 줄어들 수 있다. 판잔러 역시 좋은 기록을 내고 있어서 이번 대회에 더 집중하게 됐다"고 했다. 또 "남자 자유형 200m 선수 수준이 상향 평준화 돼 1분44초대 기록으로도 메달을 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잘 준비해서 나도 1분43초대에 진입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찔했던 예선과 판잔러의 탈락
그러나 황선우는 7월 24일 오전에 시작된 자유형 200m 예선에서 간담이 서늘한 경험을 했다. 자신의 올해 최고 기록보다 2초가량 늦은 1분46초69에 터치패드를 찍어 결선 진출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마지막 조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결국 16명이 겨루는 준결선에 공동 13위로 간신히 진출했다. 예선에서 황선우보다 기록이 안 좋은 선수는 16위 안토니오 디야코비치(스위스·1분46초70)밖에 없었다. 황선우는 예선이 끝난 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커트라인이 1분46초대 초반이 될 거라고 생각해 45초 후반대로 맞추려고 했다. 그런데 페이스 조절을 잘못해서 후반에 실수가 있었다"며 "기록이 너무 안 좋아 스릴이 넘쳤다. 몸 상태에는 문제가 없으니 준결선에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황선우는 같은 날 오후 열린 준결선에서 그 각오를 실행에 옮겼다. 50m 지점을 23초93, 100m 지점을 50초28, 150m 지점을 1분17초75에 통과하면서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 50m에선 힘을 안배하면서 목표로 했던 1분45초대 초반의 기록(1분45초07)으로 레이스를 마쳤다. 준결선 성적은 전체 3위. 무난하게 결선 진출을 확정했다. 황선우는 "예선 때 불안하게 준결선에 올랐기 때문에 결승에선 안전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초반부터 선두로 나서는 레이스를 펼쳤다"며 "막판엔 힘을 조금 남겨 뒀는데도 좋은 기록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예선에서의 부진 탓에 준결선 1조 1레인에서 경기를 펼쳐야 했지만, 황선우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경기장의 양쪽 끝인 1번과 8번 레인은 다른 선수들의 물살이 벽에 부딪힌 뒤 해당 레인 선수에게 되돌아오는 구조라 물의 저항을 가장 많이 받는 구역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가운데 레인(3~5번)은 자신이 일으킨 물살을 다른 선수들에게 보낼 수 있어 레이스에 한결 유리하다. 예선 기록이 가장 좋은 선수가 결선에서 4번 레인을 배정 받는 이유다. 그러나 황선우는 "여러 번 레이스를 해본 결과, 나는 중간 레인보다 1번과 8번 레인에서 더 마음 편하게 경기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선수들의 페이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레이스 구상과 작전에만 집중하기엔 외곽 레인이 더 낫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절친한 선배 이호준의 동반 결선행은 가장 큰 기쁜 소식이었다. 황선우는 "대한민국에서 두 명의 선수가 결선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정말 기분이 좋다. 결선에서도 둘이 시너지 효과를 내서 좋은 레이스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판잔러의 결선행 실패는 황선우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이변'이다. 포포비치는 1분44초70을 기록해 전체 1위로 결선에 안착했지만, 판잔러는 1분46초30으로 10위에 그쳐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9월 아시안게임에 앞서 마지막 탐색전을 펼치려 했던 황선우와 판잔러의 진검승부도 아쉽게 무산됐다. 황선우는 취재진에게 판잔러의 탈락 소식을 전해들은 뒤 "판잔러는 정말 수영을 잘하고, 정이 많이 가는 착한 친구다. 경기장에서 서로 인사도 반갑게 나누고, 격려하던 사이"라며 "결선에서 만나지 못하게 돼 안타깝다"고 했다.
#두 마리 토끼 잡은 황선우
마침내 운명의 밤이 찾아왔다. 황선우는 7월 25일 결선 3번 레인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4번 레인에는 지난 대회 우승자 포포비치, 2번 레인에는 영국의 '신성' 매슈 리처즈가 자리를 잡았다. 둘 중 황선우의 1순위 경계 대상은 포포비치.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고, 준결선을 1위로 통과하면서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황선우는 50m 지점을 2위, 100m 지점을 3위로 통과한 뒤 150m 지점에서 다시 2위로 올라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포포비치는 황선우보다 1초 가까이 빠른 선두를 유지했다. 황선우는 마지막 50m를 남겨 두고 오른쪽 레인에서 질주하는 포포비치를 따라잡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포포비치가 서서히 뒤로 처지는 사이 간격을 조금씩 좁혀나갔다. 결국 골인 지점을 10m가량 남기고 포포비치를 앞지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포포비치의 레이스를 신경 쓰느라 왼쪽에 있던 리처즈의 스퍼트를 눈치채지 못했다. 황선우도 마지막 50m 지점에서 26초80으로 역영했지만, 리처즈는 26초53으로 속도를 높여 황선우보다 0.12초 빠른 1분44초30에 터치패드를 찍었다. 6번 레인에 있던 톰 딘(영국) 역시 황선우와 포포비치가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 최종 50m 구간을 26초42로 통과하면서 간발의 차로 황선우보다 먼저 들어왔다. 황선우의 기록은 1분44초42, 톰 딘의 기록은 황선우보다 0.1초 빠른 1분44초32였다. 오히려 포포비치가 황선우에 0.48초 뒤진 1분44초90을 기록해 4위로 밀렸다. 황선우는 경기 후 마지막 50m 구간을 복기하면서 "150m 지점부터는 '포포비치만 잡자'는 생각으로 레이스에 임했다. 마지막 터치 순간엔 포포비치를 추월했다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 그런데 나중에야 영국의 두 선수가 무섭게 스퍼트를 올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게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황선우는 곧 밝게 웃었다. 동메달을 목에 걸면서 한국 선수 최초로 2회 연속 세계선수권 시상대에 오르는 새 역사를 썼고,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 기록도 0.05초 단축했기 때문이다. "꼭 메달을 따겠다"던 다짐과 '개인 기록 단축'이라는 목표를 모두 이뤘다. 특히 1년간 고착 상태에 빠졌던 200m 기록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황선우는 "레이스 내용에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다. 내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동메달이라는 '없었던 메달'을 얻게 돼 기분 좋다"며 "요즘 들어 '200m 기록을 줄이기 힘든 단계에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 기록을 경신할 기회가 메이저 대회밖에 없는데, 이번에 0.05초를 줄일 수 있어서 정말 뿌듯하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다. 주 종목인 남자 자유형 200m의 '상향 평준화'를 실감하고 다시 고삐를 조이는 계기도 됐다. 황선우는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힘든 종목이 아니었고, 1분44초대에 들면 메달 획득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이젠 1분44초대 선수가 너무 많아 누구든 우승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다"며 "나도 내년 파리 올림픽까지 방심하지 않고 내 기록을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다.
#0.02초 차로 100m 결선행 불발
황선우는 이튿날인 7월 26일 오전 마지막 개인 종목인 남자 자유형 100m 예선 경기에 나섰다. 숨 돌릴 틈 없는 강행군이었다. 앞선 이틀간 전력을 쏟아 세 번의 자유형 200m 레이스(예선·준결선·결선)를 치렀고, 특히 전날(25일)엔 시상식과 인터뷰를 소화하고 도핑 검사까지 받았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30분, 다시 경기장으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오른 시간은 다음 날 오전 8시 30분이었다. 그 후 다시 100분의 1초 차로 순위가 갈리는 100m 경기를 아침저녁으로 두 번 뛰어야 했다.
예선까지는 문제 없었다. 115명 중 공동 12위로 무난하게 통과했다. 다만 오후 8시 열린 준결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48초08로 9위에 올라 상위 8명에게 주어지는 결선행 티켓을 놓쳤다. 8위(48초06)로 결승행 막차를 탄 잭 알렉시(미국)와의 격차가 0.02초에 불과해 더 아쉬운 결과였다. 그는 "올 시즌 베스트(47초79)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록이 나왔다. 체력 관리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 부진한 것 같다"며 "손에 잡히는 '물감(感)'은 괜찮았는데, 몸에 피로가 누적된 게 느껴졌다. 웜업 때까지만 해도 의식적으로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경기 때는 역시 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1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과다. 황선우는 지난 대회 100m에서 예선을 공동 17위로 마쳐 탈락했다가 케일럽 드레슬(미국)이 경기 두 시간을 앞두고 기권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준결선에 올랐다. 결국 두 시간 동안 급하게 준비하고 나선 준결선 레이스에서 전체 11위에 머물렀다. 반면 이번 대회에선 결선 진출 커트라인에 가장 근접한 기록으로 준결선을 마쳤다. 7개월 뒤 열리는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100m 결선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웠다. 황선우는 "올해 남은 아시안게임부터 내년 파리 올림픽까지, 체력 문제로 100m 경기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잘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올해 내 최고 기록 정도를 낸다면 충분히 결선에 갈 수 있다. 다음 대회에선 더 세심하게 신경쓰겠다"고 다짐했다.
황선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내년 2월 도하 세계선수권, 7월 파리 올림픽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밀려 있던 국제대회가 잇달아 재개된 탓에 향후 1년간 고난의 '올림픽 레이스'를 소화해야 한다. 황선우는 "20대 초반인 지금, 내 기록을 잘 만들어나가야 한다. 절대 뒤처져선 안 된다"며 "1년 동안 '죽었다'는 마음으로 수영에 집중해 메이저 대회마다 내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싶다. 얼마 안 남은 200m 아시아 기록도 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자유형 200m 아시아 기록은 쑨양(중국)이 2017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작성한 1분44초39다. 역대 자유형 200m 선수 중 11위(개인 최고 기록 기준)에 해당한다. 황선우는 후쿠오카 대회에서 이 기록과의 격차를 0.03초까지 좁히면서 아시아 2위이자 역대 1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쑨양의 아시아 기록과는 0.03초 차다.
후쿠오카=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