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선 ‘40% 이상 투자 요건’ 완화 필요성 제기…안랩 “기술력 중심 액셀러레이팅 활동은 지속”
안랩은 최근 액셀러레이터 라이선스를 자진 반납했다. 안랩은 2019년 9월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액셀러레이터로 정식 등록됐다. 당시 안랩은 사업목적에 ‘액셀러레이터 활동(창업자 선발, 보육, 투자 등)’, ‘벤처기업이나 창업자에 대한 투자 또는 이에 투자하는 조합에 대한 출자’, ‘개인투자조합의 운용’ 등을 추가하며 액셀러레이터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안랩은 차세대 인증 분야 스타트업 와이키키소프트, 클라우드 정보보안 스타트업 스파이스웨어, AI(인공지능) 정보보안 스타트업 제이슨 등에 투자했다.
액셀러레이터는 초기 창업 기업을 선발해 투자와 전문보육을 제공하는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다. 액셀러레이터 제도는 벤처투자 시장에서 초기 창업 기업을 전문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2017년에 도입됐다. 액셀러레이터 등록을 위해서는 1억 원 이상의 자본금과 2명 이상의 상근 전문 인력, 보육 공간 확보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는 본계정(자기자본) 외에 개인투자조합이나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해 투자할 수 있다. 각종 세제 혜택도 있다. 투자금액에 대한 법인세액 공제는 물론 투자수익을 회수할 때 법인세와 증권거래세 비과세 적용을 받는다. 액셀러레이터 업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투자만 하는 것과 비교해 액셀러레이터는 창업 생태계에 들어와 성장 동력을 발굴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안랩이 액셀러레이터 지위를 포기한 것은 향후 초기 창업 기업에 일정 비율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데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 제26조에 따르면, 액셀러레이터는 초기 창업 기업에 전체 투자금액의 40% 이상을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초기 창업 기업은 사업을 개시한 지 3년 미만인 법인 또는 개인사업자인 중소기업을 말한다. 투자 요건을 지키지 않은 창업기획자는 등록 취소, 6개월 이내의 업무정지명령, 시정명령 또는 경고조치 혹은 3년간 벤처투자법에 따른 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 등록 3년이 지나면 중기부는 액셀러레이터가 의무 투자 비율을 충족하고 있는지 검사를 실시한다. 창업기획자 공시 사이트에 따르면 안랩은 별도의 법률 위반 처분을 받지는 않았다. 중기부 투자관리감독과 관계자는 “의무 투자 비율을 충족하지 않으면 (법률 위반) 처분 통보를 한다. 처분이 확정되면 공시 사이트에 표기된다. 의무 투자 비율을 지키지 않은 기업에 대해 1년 처분 유예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유예 기간을 주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안랩 관계자는 “초기 창업자 의무 투자 비율을 규정한 취지는 존중한다. 하지만 안랩의 향후 투자 방향성 등 제반 사정을 고려했을 때 초기 창업 기업에 대한 투자비율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내부 논의 끝에 자격을 자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며 “다만 정보보안 분야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기술력 중심의 액셀러레이팅 활동은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액셀러레이터 업계에서는 액셀러레이터들이 초기 창업 기업 의무 투자 비율을 충족하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액셀러레이터협회가 올해 1월 3일~13일까지 액셀러레이터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35개 액셀러레이터 중 75곳(56%)이 창업기획자 초기 창업 기업 의무투자 비율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액셀러레이터들은 창업기획자 의무투자 비율 완화를 희망하는 이유로 △안정적 투자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다양성 필요 △유망 기술 스타트업은 3년 이후 존재감을 나타냄 △법인 설립 3년이라는 연차의 기준이 큰 의미가 없음 등을 제시했다.
앞서의 액셀러레이터 업계 관계자는 “초기 창업 기업 의무 투자 비율을 설정해둔 건 액셀러레이터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여러 액셀러레이터가 의무투자 비율을 지키기 어려워한다. 액셀러레이터의 투자 회수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영향이 크다”라며 “투자비 회수를 못 하면 다른 기업에 투자가 어려워진다. 규모가 작아지면 정부 주도 스타트업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가 어려워져 인건비나 운영비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는 창업기획자 의무투자 비율 완화가 법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의 중기부 관계자는 “초기 창업 기업 의무 투자 비율을 맞추기 어렵다는 업계의 목소리는 알고 있다. 의무 투자 비율 완화와 관련해서 계속 검토는 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기획자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스타트업이 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