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대자동 위치, 봉분·석물 전혀 관리 안돼…고양시 “문화재 지정 안됐고 개인 소유 땅”
일요신문 취재 결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숙휘공주 부부 합장묘역이 을씨년스럽게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숙휘공주가 21살이던 1662년(현종 3년) 정제현은 세상을 등졌다. 1685년(숙종 11년) 아들 정태일도 세상을 떠났다. 숙휘공주는 쓸쓸한 말년을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숙휘공주는 아버지 효종과 오라버니 현종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효종은 청나라가 침략한 병자호란(1636년) 굴욕을 복수하기 위해 북벌(北伐)의 뜻을 품었으나 끝내 이루진 못했다.
효종은 숙휘공주의 시할아버지인 정유성 부탁에도 불구하고 숙휘공주 집을 매우 크고 화려하게 지어주었다. ‘조선현종개수실록 3권, 원년(元年) 5월’에 따르면, 오빠 현종은 숙휘공주 집에서 공사(役事)가 생기자 도방군(到防軍) 500명을 이틀 동안 투입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럼에도 숙휘공주 삶은 평탄치 않았다. 인터넷 ‘경기옛길 공식 카페’에 따르면, 숙휘공주는 흉년이 발생한 해에 집을 짓는다고 해서 탄핵을 받기도 했다. 서인(西人)과 남인(南人) 당쟁이 격화됐던 숙종 때는 남인들로부터 서인 편을 들던 언니 숙안공주, 숙명공주와 함께 살해될 뻔했다. 그러나 갑술환국 이후 서인이 정권을 다시 잡으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숙휘공주는 1696년(숙종 22년) 병이 깊어졌다. 조카인 숙종이 병문안을 청했으나 그해 10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55세. 숙종은 숙휘공주 집으로 조문을 가고 제수를 넉넉히 내리도록 명했다.

일요신문 취재진은 이 묘역을 지난 6월 초순과 7월 중순 두 차례 방문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누구의 묘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한눈에 봐도 검은 이끼가 낀 비석과 문인석 석등 등 석물이 있어 옛날 어느 고관대작 묘 같긴 했다. 확인 결과 이 묘의 주인공은 숙휘공주였다. 이 일대엔 안내문이나 표지판 등이 없어 숙휘공주 묘인지 알 수 없다.
인적도 드문 곳에 폐허처럼 방치돼 있다. 길도 없는 야산을 가로질러 수풀을 헤치며 비탈길을 올라가야 겨우 묘역에 다다를 수 있다. 묘역은 오래 전부터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무성한 수풀은 벌초되지 않은 채 봉분과 묘역을 뒤덮고 있다. 문인석과 석등 등 석물도 아무렇게 방치돼 있어 이곳이 과연 공주 묘역인지 의심케 한다.

또한 “나름 사정이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로 어려움도 있을 것이지만 관계기관에서 길도 내고 묘역도 정리하고 안내문도 설치해서 가끔이라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에 대해 고양시청 관계자는 8월 3일 "숙휘공주 묘역은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숙휘공주 문중에서 묘역을 관리해야 한다"면서 "문중에서 숙휘공주 묘역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숙휘공주 묘역이 개인 땅에 위치해 있어서 고양시청에서 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