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광풍 가라앉고 미 신용등급 강등되면서 조정 국면…시장 소외주 주목 변수는 ‘실적’
S&P500 지수의 향후 12개월 주당순이익(EPS) 전망치 기준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9.5배다. 5년 평균 18.6배와 10년 평균 17.4배보다 높다. 특히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메타 플랫폼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의 PER은 30배 이상이다.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5.5%까지 올린 상황의 PER이 저금리 시대 평균보다 높은 것은 정상이라 보기 어렵다. PER 값은 금리에 반비례한다. 주식의 기대수익률은 PER의 역수로 표현된다. 19.5배면 5.13%다. 현재 미국의 1년 만기 국채 이자율이 5.4%를 넘는다. 채권에만 투자해도 연 5% 이상을 번다. 원금손실 위험을 안고 주식에 투자하려면 이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거둘 확률이 있어야 한다. 연말 S&P500 지수 전망치는 높아야 4900으로 현재 4500선 대비 기대 상승률이 9%가 안된다.
코스피 역시 마찬가지다. 증권사들의 8월 코스피 전망치는 높아야 2700이다. 지난 8월 3일 종가가 2600이니 거의 오르지 못할 것이란 뜻이다. 7월 코스피와 코스닥을 연중 최고치까지 견인했던 2차전지 테마가 차익실현 국면에 접어든 점도 부담이다. 국내도 주춤하던 시중금리가 다시 상승하며 3년 만기 국고채 이자율이 다시 3.7% 선을 넘어섰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한 조치는 증시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격’이 됐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미상환 위험이 높아진 대가로 채권 발행금리가 오른다. 연준의 긴축에 따라 연 1%대 이자율로 발행하던 미국 10년 국채는 이제 연 4%가 넘는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미국 정부의 재정부담이 그만큼 더 커진 셈이다. 재정부담이 커진 미 정부는 경기를 부양할 힘이 약해지게 되고 이는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미국 수출 비중이 큰 우리 주력산업 입장에서는 악재다. 금리가 오르면 주식의 상대적 매력은 더 낮아진다.
8월의 조정으로 증시가 본격적인 하락 국면으로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조정을 활용해 유망한 종목과 업종을 싸게 살 기회라는 뜻이다. 한국과 미국 모두 2차전지와 인공지능(AI) 관련주 폭등으로 ‘FOMO(Fear of Missing Out·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익을 얻을 기회를 자신만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증상)’를 피하려는 매매가 급증했다. 일부 테마주에만 수급이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시장 관심에서 멀어졌던 종목들이 다시 주목 받으려면 중요한 것은 실적이다. 현재 애널리스트들은 S&P500 기업들의 올해 2분기 EPS가 전년 동기 대비 7%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EPS가 증가세로 돌아서 올해 전체적으로는 전년 대비 1%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에는 EPS 성장률이 12%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낮아진 만큼 한미 증시의 상관관계는 더 높아졌다. 미국 기업들의 EPS 증가는 우리 수출 기업들의 실적 개선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코스피는 반도체 경기 회복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피치발 충격도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경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달러는 글로벌 기축통화다. 미국 달러 국채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대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1년 8월 국제 신용평가사 가운데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가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에서 끌어 내렸지만 당시 주가(S&P500)는 한 달 사이 5.6% 하락하는 데에 그쳤다. 같은 기간 10년 국채 금리는 전월 2.79%에서 2.23%로 오히려 하락했다. 당시 미국의 제로금리 통화정책이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이자율 상승 압력을 상쇄시킨 결과다.
2011년 하반기 글로벌 증시 폭락은 미국보다 유럽이 원인이었다. 미국 신용등급이 떨어진 그해 8월 유로스톡50 주가는 무려 14% 급락했다. 현재 미국 국채 금리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10년 만기 기준으로 독일(AAA)보다 1.5% 이상 높다. 연준이 긴축을 종료한다면 피치발 금리 상승분을 단숨에 지워버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편 기후도 변수다. 전세계적인 폭염으로 식량난이 심각하다. 9월 태풍과 허리케인 등의 피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식량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재상승은 미국과 유럽의 긴축 종료 시점을 늦추게 할 수도 있는 요인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