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직협 회장, 내부망에 박 경위 겨냥 글 잇따라 게재…삭제요청하자 “고소하라”, 개별 연락 시도까지
서울의 한 경찰서의 직장협의회(직협) 회장인 현직 경찰관이 내부망에 '을질' 등을 언급하는 글을 쓰고 피해 여경에게 '고소할 테면 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 비판이 거세다. 이 직협 회장은 피해 여경에게 수차례 개별적인 연락을 시도하고, 선배 지위를 내세워 되레 피해자를 압박하기도 했다. 특히 피해자 가족한테도 고소를 예고했다. 와중에 소수의 경찰관들이 이런 직협 회장을 옹호하며 조직 전반의 성인지 감수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요구가 따른다.
#논란의 발단
이번 논란의 발단은 7월 7일로 돌아간다. 서울 성동경찰서 금호파출소 소속 박인아 경위는 경찰 내부망 '현장활력소'에서 "파출소장 강요로 80대 회장으로 불리는 노인을 근무 시간에 접대해야 했다"며 "회장 사무실에서 억지로 사진을 찍고 과일을 깎았다"는 등의 피해를 폭로했다(관련기사 ‘여경에 80대남 접대 강요’ 파출소장 갑질·이상한 감찰 논란 전말).
박 경위 요구로 파출소장 감찰에 돌입한 서울경찰청은 직권경고로 사안을 마무리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지도 않는 가벼운 처분이다. 분리 조치도 한참 뒤에야 이뤄졌는데 그마저 파출소장의 '치안지도관' 발령이었다. 박 경위가 일하는 파출소 등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이다.
해당 사안이 언론 보도로 공론화하자 경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경찰청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서울경찰청과 성동경찰서를 대상으로 감찰에 착수했다.
문제가 된 파출소장은 서울동부지검의 사건 접수 이후 강동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직권남용과 강제추행 및 특가법상 보복협박 등의 혐의다.
#"을질…머슴끼리 싸워"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일부 경찰관들의 박 경위를 향한 2차 가해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박 경위를 도와야 한다는 경찰 안팎의 뜻을 놓고 서울 소재의 한 경찰서 소속 직협의 A 회장(경위)이 공개된 장소에서 '피해자가 을질에 나섰다'는 듯 묘사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피해자가 약자 신분을 내세워 윗선을 압박했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A 회장은 7월 16일 경찰 내부망인 현장활력소에 '민관기 전국 직협 위원장(박인아 경위) 1인 시위를 멈춰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전국 직협 운영 전반에 불만을 성토하는 내용이 요지다. 다만 글 중간에 박 경위를 끌어들여 논란을 촉발했다. 전국 직협은 박 경위 사안을 놓고 경찰청에 문제를 제기하며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A 회장은 글에서 "박 경위는 우리 경찰서에서도 아는 직원이 많다"며 "도와야 한다는 주변 요구가 있어 논의했지만 결과는 부정적이었다"고 게재했다.
이를 본 대부분의 경찰관들은 '직협 얘기에 박 경위 이름이 돌연 왜 들어가냐'는 식의 댓글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일부는 "A 회장을 응원한다"는 등의 옹호론을 폈다.
박 경위와 A 회장은 함께 근무해 본 적도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이에 박 경위는 "전국 직협과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제 이름이 거론될 일은 아닌 듯하다"며 관련 내용을 빼달라고 댓글로 요청했다.
하지만 거부당했다. 결국 A 회장과 전화까지 나눴지만 거듭된 부탁에도 소용은 없었다.
문제는 A 회장의 이해하기 힘든 태도였다. 그는 박 경위와 통화에서 "글은 못 내리겠으니 소송하면 법률 대응하겠다"고 압박했다. 박 경위가 여러 차례 "제 이름만이라도 빼달라'고 요청했음에도, A 회장은 "경찰내부망은 이미 2만 명 이상이 읽고, '박인아 경위'도 이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가 됐으니 못 지우겠다"고 버텼다.
전화를 끊은 뒤 A 회장은 더욱 강경한 태도였다. 박 경위에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 "허락받고 글 썼냐는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경찰 생활하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고 제가 경찰 선배인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역으로 경고를 던졌다.
A 회장은 그 후에도 박 경위에 최소 다섯 차례 이상 개인적인 통화를 시도했다. 박 경위는 큰 부담감에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받지 않았다.
그러자 A 회장의 다른 글들이 이어졌다. 그는 7월 18일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성동서 사건으로 경찰청 감찰에 신고됐다"면서 "이번 기회에 을질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썼다.
A 회장은 8월 3일에는 "이제 자중하겠다"고 썼다. 단 "머슴은 머슴끼리 싸운다"는 등 뜻을 알기 힘든 조롱의 표현을 남겼다.
'성동서 사건' '을질' 등의 표현에 비춰 박 경위를 겨냥한 내용이란 시각이 많았다. 특히 '감찰에 신고됐다'는 주장은 당시 A 회장을 박 경위가 신고한 듯한 인상을 남겼지만 일요신문 취재에서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 가족에 "고소할 테니 이름 대라"
박 경위는 A 회장이 계속 올리는 글과 잇단 전화 통화 시도로 극심한 정서 불안을 토로했다. 60대 노모 등 가족들이 A 회장이 근무하는 지구대에 찾아가 항의해야 할 만큼 심각했다. 그렇지만 박 경위 모친 등은 A 회장의 "근무지 침탈로 고소하겠다"는 경고를 듣고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일요신문이 당시 지구대에서 녹취된 음성 등을 보면 A 회장은 '박 경위와 알지도 못하면서 왜 전부 안다는 듯 계속 글을 쓰나?'라는 가족들 문제 제기에 "저와 같은 피진정인한테 함부로 오면 안 된다"며 "나도 변호사 있다"고 타일렀다. 그러면서 "변호사 통해 대화하고 양쪽에서 판사 놔두고 얘기하자"고 강조했다.
A 회장은 또 "제가 박 경위를 괴롭혔다면 증명해보라"며 "이렇게 근무지를 찾아와 항의한 부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어 "고소할 테니 각자들 이름을 말해보시라"며 "박 경위는 경찰 조직의 반론권도 보장하지 않은 채 언론에서 본인 주장을 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 회장은 박 경위가 경찰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발언을 이어 갔다. 그는 "박 경위가 상대 쪽 반론도 보장 않고 언론에 등장했다"며 "경찰 직협법에 따르면 박 경위는 경찰서 단위 직협에 우선 문제를 밝혔어야 했지만 전국 직협에 먼저 말을 했고 경찰 담당 기자들까지 나서게 했다"고 주장했다.
박 경위 가족은 이 과정에서 문이 걸어 잠긴 채 내쫓겼다고도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에 일요신문은 A 회장에 '을질의 의미'와 '가족을 쫓고 문을 잠갔는지' 및 '통화를 시도했던 목적', '2차 가해 지적' 등 여러 반론을 요구했으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A 회장은 "저에 대한 감찰과 수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변호인들과 법률 검토 후 언론 등의 알권리를 충족시켜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제 입장이 언론에 공개되면 반대 당사자의 인격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면서 수사 과정에서 해명을 통해 억울함을 풀겠다"고 했다.
박 경위는 일요신문 통화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철저한 제3자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제가 마치 행실이 나쁘다는 취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글을 게시했다"며 "심지어 제가 하지도 않은 진정을 했다는 등의 허위 게시글까지 남기는 등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범죄 피해자 상담을 전담하는 한 경찰관은 "80대 남성 접대 사건은 수사가 진행 중인데 제3자가 여러 글을 써서 개입하는 자체가 중대한 2차 가해"라며 "심각한 성인지 감수성 결여에 마음이 몹시 착잡할 뿐더러 책임이 따라야 할 행동"이라고 털어 놓았다.
이 관계자는 "현장활력소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 경찰의 발전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결코 2차 가해를 조장하거나 방치하는 공간이 될 수 없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조직이 공식적으로 활용하는 내부 게시판에서 2차 가해가 허용된다는 인식을 지우기 어려울 수밖에 없으므로 상당한 가혹함을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