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위해 용도 변경, 환경영향평가 피해 편법 지적…당시 새만금위원장 ‘이낙연 책임론’ 불똥
#걷기조차 힘든 땅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이 새만금 전격 철수를 결정한 8월 7일 잼버리 델타구역은 대체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한편에서 멕시코 대원들이 자기 나라의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흥을 돋워 잠깐 웃음꽃도 폈으나, 일대를 걸을 때마다 "So hot(너무 덥다)"이라는 성토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이날도 잼버리 현장은 낮 최고 기온이 36℃에 달할 만큼 푹푹 쪘다. 그나마 바로 옆 부안 바닷가를 스쳐오는 바람 덕분에 서울 등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덥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미친 듯' 고온다습한 날씨 앞에서는 제 아무리 강인한 세계의 스카우트 대원일지라도 몸이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고통인데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찾아오는 불편도 컸다. 찜통 스트레스 속 무자비하게 깔린 자갈들로 발목이 비틀리고, 곳곳이 마치 함정처럼 움푹 파이거나 불쑥 튀어나와 걷기도 짜증을 불렀다. 잼버리가 원래 이런 걸까. 스웨덴과 일본 등 이전 개최국의 사진 및 영상에서는 찾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번 잼버리는 개최 첫날부터 야영지 바닥에 물이 고여 논란을 일으켰다. 행사 직전까지 덮친 장마가 엉망진창인 배수로의 실태까지 보여줬다. 결국 창궐한 물웅덩이로 모기들이 모여들고 대원들을 쏘아 댔다.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벌레물림' 피해자만 이날 기준 368명으로 추산했다. 현장 진료소를 찾은 환자 중 최다 수치다.
#농지기금 쓰려고 용도변경
이런 새만금이 잼버리 개최지로 결정된 데 대해 지역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의문을 제기해왔다. 당초 전북 무주의 태권도원과 구천동 야영장이 오히려 적합하다는 요구가 따랐으나 비중 있게 고려되지는 않았다. 새만금 개발 및 홍보 등을 이유로 뒷전으로 밀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2017년 전북도의회 제348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이도영 전북도의원이 '새만금 잼버리의 유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자, 전북도 관계자는 "새만금을 속도감 있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의원은 "새만금 인프라 예산을 빼오기 위한 명분 아니겠나"라며 "대단히 잘했다고 본다"고 동조했다.
문제는 중앙정부마저 이에 맞장구를 치며 무리한 개발에 나섰다는 점이다. 전북 시민사회에서는 이 사안으로 2020년 9월 농어촌공사와 새만금위원회를 고발하기도 했다. 그해 1월 국무총리에서 물러나 새만금위원장을 맡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고발 대상에 명시하며 책임을 촉구했다.
고발 내용은 이 전 총리가 잼버리 부지 편법 개발을 주도했다는 게 뼈대다. 농어촌공사는 '새만금잼버리 부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며 매립 등에 투입되는 비용을 '농지관리기금'으로 충당했다. 새만금위원회의 결정 때문이었다. 2017년 12월 6일 이 전 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새만금위원회 결과에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이 전 총리는 "잼버리 대회를 치르는 데 차질이 없을 정도로 용지가 매립되고 부지가 정리돼야 한다"며 "농식품부 장관이 여기 나와 계십니다만, 농지기금을 써서 부지를 매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려면 행정 절차가 필요한데 땅 용도를 변경해야 한다"면서 "농지가 돼야 농지기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당부했다.
이게 편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잼버리 개최 확정 후 만들어진 2017년 '새만금 기본계획'에서 잼버리 부지는 관광·레저 용도로 명시됐다. 새만금위원회는 사업비 조달 문제를 농지기금으로 해결하고자 용도만 농지로 바꾼 셈이다. 결국 새만금기본계획은 '잼버리 이후 새만금개발청 등이 정한 자에게 양도하기 전까지 농지로 관리한다'고 변경됐다.
잼버리 개최를 위해 개발하는 땅인데도 지목만 농지로 바뀐 상황. 이로 인해 관광·레저 용지라면 받아야 할 환경영향평가도 피해갔다. 이 지점에서도 꼼수 논란은 불가피하다. 만약 환경영향평가를 받았다면 각종 인·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면 사업 기간이 길어진다. 결국 공기 단축 등을 위해서라도 용도를 변경했다는 의혹이다.
전북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새만금위원회가 농어촌공사에 위법을 교사 혹은 공모한 행위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농지조성에만 자금을 쓰도록 한 '농지관리기금법' 위반, 또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두 기관과 각 기관장들에 대한 수사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전주지검은 2021년 4월 증거불충분 등에 따른 불기소로 사건을 종결했다.
고발인으로는 당시 전북녹색연합 대표였던 한승우 전주시의원(정의당)과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대표가 나섰다. 한 의원은 한 차례 고발인 조사를 받았고, 이 대표는 고발인 조사도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은 증거자료 등을 제출하려는 의사도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당시 검찰의 수사 의지를 놓고 여전히 물음표가 나오고 있다.
한승우 의원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농지기금으로 사업비를 쓰겠다는 점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히긴 했어도, 그러려면 해당 부지를 영구적으로 농지로 써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면서 "기만적인 사업 방식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검찰이 수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후속조치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농지를 농지라 부르지 못하니…
잼버리 조직위원회 안에서도 무리한 매립 등을 꼬집는 지적은 있었다고 한다. 조직위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큰 우려가 잇따라 차라리 매립하지 말고 갯벌 등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진행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하지만 책임 있는 어느 인사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며 매립을 밀어붙였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농지도 관광·레저용도 아닌 상태가 돼버린 잼버리 부지의 활용 방안이 고민거리다. 2021년 새로 나온 새만금 기본계획은 투기 방지 등을 이유로 비공개 상태다. 다만 잼버리 부지의 난감한 매립 높이가 문제로 파악된다. 우선 농지는 배수 등을 고려해 매립고를 E.L(+) 1.15m 이하로 조성한다. 반면 도시용지는 +2.65m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잼버리 부지의 매립고는 약 35개 블록마다 +1.94~+3.25m로 최대 약 1.5배 차이가 날 만큼 천차만별이다. 농지로 쓸 만한 매립고보다는 높지만 도시용지로 쓰기에는 낮은 구역이 절반가량이다. 이는 농지기금으로 개발한 잼버리 부지가 실제 농지로 활용할 뜻이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매립을 했으면 1.5m 이상 성토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지만 준설한 바다 모래를 쌓아둔 형태로 돼 있다. 이에 비가 내리면 땅이 물기를 머금은 상태로 유지되고, 진흙 등 때문에 물이 잘 빠지지도 않은 효과를 낳는다. 식생이 자라기에도 부적합해 열기도 머금는다. 잼버리 현장에서 그대로 재현된 모습이었다.
새만금 일대에서 이처럼 앞뒤가 안 맞는 개발이 이뤄진 곳은 사실상 잼버리 부지뿐이다. 예컨대 도시용지인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의 경우 계획홍수위 +1.15m보다 1.5m 더 높게 여유를 두며 매립고를 최소 +2.65m로 잡았다. 또 명백한 농업용지인 7-1공구는 전부 +0.64~+1.56m로 돼 있다.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매립고는 강한 폭우에 따른 침수 등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확보하는데, 아직까지 새만금 일대는 심각할 정도의 침수는 일어난 적이 없다"면서 "향후 사업자가 나타나면 잼버리 부지를 관광·레저용으로 바꿀 수는 있으며, 사업자 비용으로 추가 매립 등을 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잼버리에서 드러났듯 이 땅을 과연 누가 어떻게 개발할지 의문"이라며 "농지로 쓰기에는 배수시설이 미흡하고, 개발을 하자니 매립고가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뜩이나 새만금 산업단지 분양가도 비싼 편이라 아마 골프장 정도로 쓰일지 모르겠으나 그마저 골치 아플 것"이라고 바라봤다.
일요신문은 이 전 총리에게 통화를 시도하고 메시지 등을 보내 '농지기금을 통한 잼버리 땅 개발의 적절성' 등 질문을 남겼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당시 민간 추천으로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이형규 현 전북자치경찰위원장한테도 질의를 던졌지만 그 역시 침묵을 지켰다.
부안=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