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 폭로에 김 위원장 장남 반박, 법정싸움 번질 전망…민주당 혁신위 대변인 “민·형사상 조치 준비”
김 위원장은 8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부족한 말로 불편하게 한 점에 대해 정중히 사과한다”며 “(혁신안은) 치열하게 논의하고 논쟁하고 만들어 낸 피땀의 결과인데 여러 가지 일로 가려질까 두렵다”고 밝혔다. 노인 비하 발언, 시누이 폭로 진실 공방 등 김 위원장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혁신위 조기 종료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불씨'는 노인 비하 발언
김은경 위원장이 궁지로 몰린 계기는 노인 비하 발언이었다. 7월 30일 김 위원장은 청년 유권자 좌담회에서 “(둘째 아이가) ‘왜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청년) 미래를 막 결정해’라고 말했다. 자기(둘째 아이)가 생각할 때는 평균연령을 얼마라고 봤을 때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엄마 나이로부터 여명까지로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되게 합리적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화근이 됐다.
비판이 거세지자 김 위원장은 사과를 위해 8월 3일 대한노인회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남편 사별 후 시부모를 18년간 모셨고 작년에 선산에 묻어 드렸다. 그래서 어르신에 대해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산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해명은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8월 5일 자신을 김 위원장 시누이라고 밝힌 김지나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카오 브런치에 ‘김은경 위원장의 노인 폄하는 그녀에겐 일상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씨는 '어르신에 대해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산적은 없다'는 김 위원장 말을 반박했다.
김 씨는 “김 위원장이 자신의 새어머니를 모시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씨에 따르면 김 위원장 새어머니는 헌신적으로 김 위원장 아버지 병간호를 했고, 김 위원장을 비롯한 세 아이의 뒷바라지를 착실하게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망한 다음 김 위원장과 두 남동생은 새어머니에게 상속 포기 각서를 쓰게 했다. 김 씨는 “새어머니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생활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어 김 씨는 “김 위원장이 시부모나 남편인 A 씨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를 포함해 단 한 차례도 시부모를 모시고 산 적이 없고, 공경심은커녕 18년 동안 김은경 위원장에 온갖 악담과 협박을 받았고, 돌아가시면서도 쉬이 눈을 감지 못했다”고 적었다. 또한 “김 위원장이 귀국 후 학교 일을 이유로 시댁 일을 등한시했고, 말끝마다 60세가 되면 이혼할 거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시부모를 18년간 모셨다는 김 위원장의 말은 거짓이라는 주장이었다.
김 씨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김 씨 오빠 A 씨와 1992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대에서 만나 결혼했다. 김 위원장이 독일 유학을 떠나자, 김 위원장 시부모가 부부의 아이를 맡아 키웠다. 김 씨는 “김 위원장은 독일 만하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대학교 강사 기회를 얻고 교수라는 명함을 얻게 됐다. 당시 부부는 A 씨의 재력과 양육 도움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고 자랑삼아 얘기했다”고 했다.
2006년 1월 A 씨는 아내인 김 위원장과 아이들이 함께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김 씨는 A 씨 죽음에 대한 김 위원장과 조카의 정황 설명이 엇갈린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A 씨가 제 무릎을 베고 누워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침이 무릎에 흐를 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들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지만, 당시 서너 살이던 김 위원장 둘째 아이는 “엄마랑 아빠가 막 싸웠어. 그래서 아빠가 화가 나서 뛰어내렸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 김 씨는 장례식장에 온 A 씨 친구들도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친구도 많은 사람이 자살한다는 것에 의문을 표했다고 전했다. 또한 김 씨는 김 씨 가족은 A 씨의 부검을 원했지만 김 위원장이 강하게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A 씨 사망 직후 김 위원장이 자기 부모님이 운영하던 사업체 명의를 가로챘다는 주장도 펼쳤다. 자기 부모님이 아들의 사망으로 괴로워할 때 김 위원장이 사업체 명의를 두 명의 동생 이름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김 씨는 “사업체는 A 씨가 죽기 직전 아버지 이름에서 A 씨 이름으로 전환돼 있었고, A 씨가 죽고 나니 곧바로 김 위원장 친동생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며 “아버지는 즉시 시정을 요구하고 법에 호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손을 써 볼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김 씨 아버지는 소화전용 화재발신기와 비상조명등 거치대 같은 소방 관련 특허를 출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1997년에서 2004년 사이 13개의 특허가 특허청에 등록됐다. 김 씨의 아버지가 등록한 특허는 등록료 불납 등을 이유로 대부분 특허권이 소멸한 상태였다. 회사 소유권 이전 등과 관련해선 확인이 어려웠다.
김 씨는 아들과 사업체를 잃은 충격으로 쓰러진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갔고, 아버지는 기력이 다해 시골로 터전을 옮겼다고 했다. 김 씨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부모님은 김 위원장 아이들에게 통장으로 용돈을 넣어줬지만, 김 위원장은 남편인 A 씨 제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렵게 18년을 살다가 2년 전 어머니를 먼저 보냈다. 아버지는 지난해 겨울,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이 너무나 그리워 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셨다”고 밝혔다.
“시부모의 장례를 치렀고, 선산에 모셨다”는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해서는 “사별한 남편의 시아버지 장례식장에 며느리 노릇을 한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라며 “금감원 부원장이라는 타이틀로 온 부의금을 챙겨가는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했다”고 썼다.
#김 위원장 큰아들의 반박
김 씨 폭로 글이 나온 지 하루 뒤인 8월 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반박 글이 올라왔다. 김 위원장 큰아들이라고 밝힌 B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거짓말로 공격해서 참담한 마음”이라며 “밝히고 싶지 않았던 가족사를 괴롭지만 담담하게 말씀드리려 한다”고 적었다.
B 씨는 아버지 A 씨가 투신했던 날 부부싸움은 없었다고 했다. B 씨는 “저는 아버지(A 씨)의 다리를 주물러드렸고, 어머니(김은경 위원장)는 무릎 베게 하며 힘들어하시던 아버지를 응원했다”며 “이후 아버지는 먼저 혼자 안방에 들어갔다. 이후 큰 소리가 났다. 불안해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먼저 내려가서 아버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만 세 살의 어린 동생(김 위원장 둘째 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너무 두려워 옆집에 즉각 격리했다”며 “아버지의 죽음은 동생이 9살 때까지 숨겼다”고 밝혔다. 이후 학교의 권유로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가셨다고 말했고, 이번 논란이 발생하자 진상을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당시 서너 살 된 둘째가 엄마랑 아빠가 막 싸웠어. 그래서 아빠가 화가 나서 뛰어내렸어”라고 밝힌 김지나 씨의 주장과 엇갈리는 대목이다. B 씨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김 위원장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사망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김 위원장이 시부모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B 씨는 “할아버지가 외아들인 아버지를 예뻐했다. 그리고 장손인 저도 많이 예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할아버지는 고향에 갔고, 저는 수시로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고향에 찾아갔다. 어머니는 제가 할아버지에게 무심해질 때도 먼저 할아버지께 전화 드리고 내려가라고 독려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B 씨는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에게 연락하라고 권유한 내용이 담긴 SNS(소셜미디어) 대화방을 캡처한 사진과 1996년 6월 할아버지가 김 위원장의 안부를 묻는 손 편지를 공개했다.
B 씨는 고모인 김 씨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B 씨는 “각자의 생업이 있고, 오고 가기 어려운 상황이라 오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서도 “고모는 장례식 비용을 전혀 보태지 않았고, 어머니와 제가 전부 부담하는 것을 보고 고모에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2022년 12월 나온 김 위원장 시아버지 부고 기사에 따르면 유족으로는 김 위원장 이름만 나와 있었다. 김 씨와 다른 유족의 이름은 없었다. 보통 부고 기사에는 부모상을 당한 자녀의 이름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이름만 부고 기사에 등장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아버지의 사업체를 김 위원장이 가로챘다는 김 씨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 회사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였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우리 집이 회사를 이끌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부양하기를 원하셨다”고 주장했다.
B 씨는 “고모들은 부양책임은 지지 않더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상속을 받아 가셨겠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상속을 포기했다”고 했다. B 씨는 그 근거로 전주지방법원에서 발급한 서류 사진을 올렸다.
#법정에서 진실 가려질까
김 위원장 측과 김지나 씨 간 공방이 오갔지만,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과 김 씨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검증되지 않은 발언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 남편 A 씨 매제라고 밝힌 최 아무개 씨는 8월 6일 ‘아시아앤’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 장남의 글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최 씨는 “평소에도 김 위원장은 남편을 무시하는 말을 자주 해 가족 모임에서도 매우 껄끄러운 분위기가 된 적이 많았다”며 “장인은 경찰 출신으로 퇴직 후 소방 장비 회사를 차려 1남 4녀 자녀 모두 대학까지 보내는 등 가족 사랑이 극진했다”고 했다. 최 씨는 김지나 씨 언니의 남편으로 1989년 결혼해 1999년 이혼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의 카카오 브런치에는 김 위원장 새어머니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댓글도 달렸다. 글쓴이는 “(김지나 씨가) 글을 올리신 것을 (김 위원장 새어머니에게) 알렸더니 감사해 했다”고 썼다. 일요신문은 댓글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글쓴이의 답변은 없었다.
김지나 씨는 8월 7일 TV조선에 “글에 쓴 내용은 전부 사실”이라며 “김 위원장 측에서 반박한다면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직 반박 글을 게시하지 않았다. 김 씨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입장을 문의했지만 답장은 없었다.
일요신문은 8월 8일과 9일, 김 위원장과 그의 자녀들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다. 김 위원장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서초구 반포동 한 빌라, 김 위원장 소유의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 등을 찾았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와 상인들, 주민들 모두 김 위원장과 그의 자녀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 상인은 김 위원장 소식을 뉴스로만 들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과 그의 자녀들은 직접 만날 수 없었다.
김은경 위원장 시부모 봉양 진실 공방은 법정 다툼으로 번질 전망이다. 8월 10일 혁신안 발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남희 혁신위 대변인은 “위원장 개인사에 대한 질문은 답변하지 않겠다”며 “문제 되는 글은 사실과 다르고 추후 민사와 형사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8월 10일과 11일 두 차례 김남희 대변인에게 추후 법적 조치 여부에 대해 질문했다. 김 대변인은 11일 문자로 “위원장님은 개인적으로 민·형사상 조치를 준비하고 계시는데, 제가 관여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답변했다.
8월 11일 김 위원장에게 문자로 같은 내용의 질문을 했지만 답을 들을 순 없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