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R2M’ 출시 웹젠에 저작권 소송 승소…‘아키에이지 워’ ‘오딘’ 등 리니지 유사 게임 비상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1부는 지난 8월 18일 NC가 웹젠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중지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에게 10억 원을 지급하고, R2M 이름으로 제공되는 게임을 일반 사용자들에게 사용하게 하거나 선전·광고·복제·배포·전송·번안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결정한 보상액 10억 원은 그렇게까지 큰 금액이 아니라는 평가다. 문제는 R2M 서비스 종료에 있다. R2M의 지난해 매출은 330억 원으로 웹젠 전체 매출의 13.6%에 달한다. 웹젠은 즉각 항소와 함께 영업 정지에 대한 강제집행정지도 신청했다. 하지만 R2M의 수명은 사실상 끝났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항소를 통해 게임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게임을 즐기면서 결제까지 할 사용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R2M은 웹젠이 2020년 8월 출시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다. R2M은 출시 당시부터 리니지 아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NC는 2021년 6월 R2M이 ‘리니지M’을 모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게임업계에서는 NC가 경고성 신호를 보냈을 뿐 합의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국내 게임업계에는 R2M 외에도 리니지의 시스템을 참고한 게임이 많았고, 게임의 비즈니스모델(BM)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은 사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다른 관계자는 “작품 표절이 아닌 BM에 대한 저작권을 내세운 전례가 없었기에 NC가 승소까지 할 것이라는 전망은 드물었다”며 “BM에 대한 저작권이 인정된다면 현재 게임업계의 주 수익원인 ‘뽑기’를 처음 만든 넥슨이 왜 가만있냐는 말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R2M이 리니지의 저작권이 아닌 성과물을 침해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R2M이 모방한 리니지의 게임 시스템에 대해 NC가 거액을 투자해 발달시킨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1000억 원 이상의 개발비용을 들여 만들어낸 리니지M의 명성과 매출, 고객흡인력 등이 ‘창작성’에 기반하지는 않았더라도 ‘성과’는 있고, 이는 부정경쟁방지법상 보호받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NC 게임과 매우 유사한 방식의 웹젠 게임이 출시되면서 NC가 경제적 이익을 침해당하고 있다"며 “피고(웹젠)의 행위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게임업계에서 굳이 힘들여서 새로운 규칙의 조합 등을 고안할 이유가 없어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NC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는 판결이다. 리니지 아류작들은 리니지의 성장·경쟁 방식을 따라할 뿐 아니라 BM까지 이름만 바꿔 적용하고 있다. 법원은 NC가 발전시킨 ‘가혹한 경쟁을 통한 현금 결제 유도’라는 촘촘한 설계의 ‘규칙과 조합’을 베낀 것에 대한 성과를 인정했고, 규제의 필요성까지 명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웹젠은 홈페이지를 통해 “법원의 판결은 존중하지만 자사의 입장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R2M의 게임 서비스가 실제로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한 법적 대응을 마련하고 있다”며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항소심의 법원 판단이 마무리될 때까지 R2M의 서비스가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XL게임즈)다. 앞서 NC는 XL게임즈가 제작해 카카오게임즈가 유통하는 ‘아키에이지 워’에도 비슷한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NC는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을 베꼈다고 주장한다. 게임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R2M은 흔한 ‘리니지 라이크’ 게임이었으나 아키에이지 워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리니지2M과 모든 게 똑같아 ‘리니지3M’이라는 말까지 돌았다”며 “R2M이 패소했다면 아키에이지 워의 패소는 불 보듯 빤하다”고 전망했다.
줄소송도 예상된다. NC는 카카오게임즈가 유통하는 ‘오딘’에 대한 소송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의 ‘V4’와 ‘히트2’, 위메이드의 ‘미르의 전설’ 시리즈 등도 대표적인 리니지 라이크 게임으로 거론된다. 이와 관련, NC 관계자는 “기업의 핵심 자산인 지식재산권(IP) 보호를 위해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NC는 이번 판결로 인해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NC는 그간 리니지 아류 게임에 시달려왔지만 이제는 해당 게임들의 운영 정지 가능성이 생겼다. NC의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1조 4196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9190억 원으로 35.26% 줄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672억 원에서 1169억 원으로 68.16% 감소했다.
NC는 모바일 리니지 시리즈로 국내 구글플레이 매출 1·2위를 독점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리니지 유사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NC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다. 시장 기대감을 반영하듯 NC의 승소 소식이 전해진 후 첫 거래일인 8월 21일 NC의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2.60% 상승했다.
다만 게이머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NC는 그간 과도한 과금 유도로 비판을 받아왔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NC가 새로운 시도로 인정을 받는 대신 경쟁 업체 죽이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NC가 최근 테스트 중인 ‘쓰론 오브 리버티(TL)’ 등 신작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점도 게이머들이 차가운 반응을 내놓는 원인으로 지목받는다.
한편으로는 그간 리니지 성공 공식만을 따라가던 게임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앞의 게임업계 관계자는 “리니지 시리즈가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자 게임성을 높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리니지가 만들어낸 매출을 뽑아내는 BM을 베껴오는 데 급급했고 기존 리니지 게이머들을 흡수하는 데 주력했던 게 사실”이라며 “현 구조가 잘못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차에 법원이 확실한 경고를 줬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