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폭행 의혹 눈덩이…“소변 보며 걷고 굶주림에 약탈까지”
문제의 인물은 바로 한국소년탐험대 총대장 강 아무개 씨(55). 그는 그동안 자신이 주관해온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추행 및 간접적 가혹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수차례 받아왔다. 그랬던 강 씨가 최근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몇몇 청소년을 대상으로 또 다시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동해해양경찰서는 지난 7월 28일 강 씨가 울릉도행 여객선에서 이 아무개(15), 정 아무개(14), 오 아무개 양(17) 등의 가슴을 수차례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비롯해 이 양과 남학생 3명에게 전치 3주의 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 조치했다고 29일 밝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해당 경찰서 및 국토대장정 피해자 모임 커뮤니티에는 ‘자신도 강 씨에게 당했다’는 내용의 제보들이 봇물처럼 올라오고 있다. 이 중에는 10년 전 강 씨에게 추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 ‘국토대장정 파문’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번에 발각된 강 씨의 ‘몹쓸’ 행각은 폭행 당사자인 아이들이 당시 여객선 선장에게 구조요청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런데 취재 결과 강 씨는 이미 이와 비슷한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것도 한두 건이 아니었다. 그동안 강 씨가 주관해온 이 행사는 10대 소년소녀들에겐 국토대장정이 아니라 구타와 추행이 난무하는 ‘생존 서바이벌’이었던 것이다.
“엄마. 강 대장 한 대 때려줘. 때려주고 가자.”
‘국토대장정에 보냈던 아이가 강 씨에게 폭행당했고 현재 경찰 보호 아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한 걸음에 동해로 달려온 주부 양 아무개 씨(44)는 피해자모임 게시판을 통해 “어린 것이 얼마나 분노가 컸으면 조사를 마치고 서울로 발길을 돌리려는 나를 잡고 저런 말을 할까 싶었다”며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며 울분을 토했다. 양 씨의 딸의 종아리에는 아직도 시퍼런 멍이 남아있다. 양 씨의 딸 이외에도 강 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피해아동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현재 경찰을 보고 있다.
유년시절 추억을 만들라는 의도에서 금쪽같은 자녀를 국토대장정에 보냈더니 추억은커녕 악몽 같은 가혹행위를 당하고 왔을 때 부모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 씨는 조사과정 내내 뻔뻔한 모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일부 피해자녀의 부모들이 강 씨에게 ‘어린 아이에게 성추행을 왜 했느냐’며 캐묻자 강 씨는 도리어 “나는 손도 안 댔다. 그 여자애는 원래 남자얘 사타구니에 머리를 베고, 살을 부벼대는 애”라며 피해아동의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현재 강 씨는 관련 혐의를 일체 부인하고 있는 것을 알려진다. 한국 어린이벗회 회장까지 지냈으며 국내 최초로 국토대장정을 도입한 것으로 언론에 유명세를 타기도 한 강 씨. 그의 결백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1998년 겨울 강 씨의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박 아무개 씨(여·28)는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과거 그 날을 생각하면 몸서리 쳐진다고 한다.
박 씨는 “중학생 시절 남동생과 함께 강 씨의 국토대장정에 참여했다. 아직도 그날의 악몽이 떠오른다”며 “한겨울이었는데도 매일 오전 6시에서 밤 10~11시까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설탕물 한 컵, 생라면 반 개, 위생상태가 최악인 주먹밥이 하루에 제공된 식사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당시 박 씨는 무리한 행군으로 인해 허벅지 안쪽에 물집이 생겼다. 박 씨는 총대장이었던 강 씨에게 약품을 달라고 했지만 도리어 ‘상처를 확인해야 약을 줄 수 있다. 바지부터 벗으라’는 협박을 당했다고 한다. 이에 수치심을 느낀 박 씨가 거부하자 강 씨는 ‘너는 애 낳을 때도 바지 안 벗을 거냐. 된장이나 처바르면 낫는 건데 왜 오버하냐’며 윽박질렀다는 것이다.
박 씨는 당시 참혹했던 국토대장정 실상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화장실을 제공해주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기 시작했다. 여자애들의 경우 수치심에 남자들처럼 길가에서 차마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지에 소변을 보는 일이 잦았다. 어떤 여고생 언니는 생리가 시작됐는데도 바지에 피를 묻힌 채 3일을 걸어야 했다. 현장은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강 씨에게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한 아이들도 상당수였다는 게 박 씨의 주장이다. 박 씨는 “강 씨가 가슴을 만졌다며 우는 여자애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내 남동생은 강 씨에게 주먹으로 맞았다. 밥도 제대로 안 주고 길에서만 재운다고 항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항의를 하는 족족 아이들을 때렸다”는 충격적인 발언도 덧붙였다.
종국에는 오랜 굶주림에 시달린 아이들 사이에서 전쟁터와 같은 상황도 벌어졌다. 먹을 것을 찾아 다른 친구의 배낭을 약탈하는 일은 다반사였고, 초코바 하나를 걸고 강 씨에 눈을 피해 숨겨놓은 돈으로 경매를 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가 200원 초코바는 5000원까지 값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만큼 먹을 것이 귀했다.
박 씨는 국토대장정 후 영양실조, 악성빈혈판정을 받아 그 후 5년 동안 병원을 다니며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는 “14년간 단 한 번도 그때의 아비규환을 잊은 적이 없다. 강 씨가 제대로 처벌을 받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때 국토대장정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던 김 아무개 씨(남·25)는 ‘예전 삼청교육대의 축소판이 강 씨의 국토대장정과 흡사했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김 씨에 따르면 강 씨는 ‘입소’ 첫날 아이들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비상금을 편취했다. 100여 명이 넘는 아이들한테 뺏은 비상금만 합쳐도 200만~30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이어 그는 “강 씨는 단체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다. 촬영 시 아이들이 웃지 않으면 화를 내며 강제로 웃게 했다”고 전했다. 강 씨가 단체사진 촬영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경찰 관계자는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조사과정에서 강 씨는 아이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찍힌 단체 사진을 경찰관계자들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봐라. 내가 가혹행위를 했을 리가 없지 않느냐’며 하소연했다”고 말했다.
진실이야 어떻든 간에 강 씨의 국토대장정은 영화 <실미도>에서나 볼법한 강행군으로 이뤄졌다는 게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보름 내내 10㎏이 넘는 군장을 지고 걷는 아이들은 점점 독기를 품었다. 대부분 13~16세 학생들이었다. 하루에 주어진 식량은 생라면 반 개, 위생상태가 엉망인 주먹밥 한 개, 소금물 한 잔이 전부였다. 그 결과 서로의 비상식량을 훔치는 사단까지 벌어졌지만 기본적인 통제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배고픔에 눈이 멀어 집단 내에서 아이들 간에 은밀한 구타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 씨는 이런 극한의 상황을 견디지 못한 일부 아이들 수십 명이 히치하이킹을 해서 중도 이탈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강 씨는 도중에 없어진 아이들을 찾아볼 생각도 안하더라. 든든한 ‘빽’이 있는 건지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지난해에는 산세가 험해 산행이 금지된 가리왕산에서 아이들을 무단으로 노숙을 시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야밤인데도 손전등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낭떠러지가 많아 성인도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강 씨는 그렇게 10대 아이들을 방치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강 씨는 취침 자리 근처에 벌집이 있어도 ‘7초만 움직이지 않으면 (벌이) 쏘지 않는다’며 위험천만한 곳에 아이들을 재웠다고 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아이들은 매일 부모님께 엽서를 써서 보내는데 강 씨가 이 엽서들을 직접 검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1998년도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박 씨와 지난 7월에 참여한 이 아무개 양(10)에 따르면 강 씨는 엽서들을 일일이 검열하며 혹여나 엽서에 ‘밥이 개밥 같다’, ‘강대장이 자꾸 때려서 힘들다’ 등 부정적인 문구들이 발견되면 공개적으로 엽서를 찢어버리고 쓴 아이에게 벌을 줬다고 한다.
게다가 한창 사춘기인 10대 아이들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혼숙까지 했다. 부상자가 날마다 발생했지만 전문 의료진은 현장에 없었다. 천식이 지병인 한 중학생이 행군에서 뒤처졌단 이유로 강 씨에게 매를 맞은 일화는 이미 일부 피해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동해해양서 이재훈 경사는 “과거 강 씨가 벌인 여러 혐의들을 추적 중이다. 10일 강 씨가 검찰에 송치되기 전까지 수사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