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소나기’ 피하려 침묵 모드?
▲ 이석채 회장이 KT 개인정보 유출 파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책임 회피 논란을 부르고 있다.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빠져나간 개인정보에는 휴대전화번호는 물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가입일이 포함돼 있었으며 쓰고 있는 휴대전화의 모델명과 기기변경일, 사용하고 있는 요금제와 기본요금, 월정액 합계 등 시시콜콜한 사항이 모두 들어 있었다는 것이 KT의 설명이다. 휴대전화 고객정보가 모조리 유출된 것이다. 타 이동통신사에서 단말기 변경에 대한 정보나 번호이동 혜택 등을 알리며 기기변경과 번호이동을 권유하는 전화가 걸려오는 까닭도 이런 데 연유한 것인 셈이다.
이 같은 개인정보가 5개월에 걸쳐 유출된 건수는 무려 870만 건. 이동통신사로는 최대 규모다. 비록 KT가 사과문을 게재하고 그간의 경과를 간략히 설명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지만 이것만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 피해 고객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곳곳에서 집단소송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수임료로 단돈 100원만 받고 소송을 하겠다는 법무법인도 등장했다. KT 측은 “집단소송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며 “보안을 강화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고객들은 ‘KT에 성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한 KT 가입자는 “이미 5개월 동안 벌어진 일인데 전량 회수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라며 “그것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가입자는 또 “자기들 말로 (7월) 13일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면서도 이틀 후인 15일까지 유출됐다는 것은 이틀 동안 방치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KT가 올레닷컴에 게재한 사과문에는 ‘지난 7월 13일 내부 모니터링을 통해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고 적혀 있다. 또 다른 KT 가입자는 “명색이 회장이라는 사람이 이번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며 이석채 회장의 침묵을 못마땅해 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통신시장의 환경과 통신회사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강하게 호소해왔다. 또 상대가 누구든 간에 비판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방통위에 대해서도 종종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2009년 방통위 조직을 문제삼는가하면 지난해 4월에는 “방통위의 통화품질 평가 기준 자체에 불공평한 측면이 있다”면서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 셈이다.
심지어 KT와 이석채 회장은 고객정보 유출에 그치지 않고 “스카이라이프, BC카드 등 자회사 직원들의 개인정보도 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더욱 곤란한 지경에 빠져버렸다. 지난 2일 투기자본감시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KT새노조 등은 KT 광화문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인정보 유출, 자회사 직원들의 개인정보 요구와 관련해 책임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이석채 회장의 처벌을 주장했다.
이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개인정보를 소홀히 다루고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KT의 기업문화에 원인이 있다”면서 “개인정보 중요성에 대한 몰지각, 개인정보 수집을 통한 수익 극대화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일으켰다”며 이석채 회장의 처벌을 주장했다. 그러나 KT 측은 이번 사건을 두고 이석채 회장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KT 관계자는 “회장님을 운운하는 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얘기일 뿐”이라며 “지금 중요한 건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고객의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이석채 회장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힘들어 보인다. 방통위도 “정보통신망법에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KT와 이석채 회장에게 별다른 책임을 묻거나 제재를 가하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수임료를 1인당 100원만 받고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법무법인 평강의 최득신 대표변호사는 “이석채 회장에게 직접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며 이번 소송은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소송”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를 본 가입자들이나 KT새노조, 시민단체들의 비판의 칼끝은 이석채 회장에게 향해 있다. 일각에서는 이석채 회장의 침묵을 지난해 4월 초유의 전산장애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에 빗대기도 한다. 당시 최 회장은 ‘비상근’이라는 이유로 책임에서 벗어나려 해 빈축을 샀다. 이 회장의 침묵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 그러나 이 회장은 비상근이 아니다. 더욱이 최 회장은 직접 나서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이석채 회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