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만족시킬 정책 없는데 자신의 욕구 충족시킬 답만 원해…감정에 치우치면 올바른 의사 결정 어려워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화가 잔뜩 나 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뭔가 모르게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세상 일이 내 맘대로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나만 제대로 대접 못 받고, 나만 손해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학 전문기자 출신의 홍혜걸 박사의 말처럼 많은 사람이 나만 억울하다는 ‘억울 증후군’에 갇혀 있는 듯하다. 그 억울함은 분노로 표출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 분노가 정치와 부동산에서 자주, 그리고 두드러지게 폭발한다는 것이다.
사실 부동산에 대해선 어떤 처지에 있든 다 열불이 난다. 계층 간 초양극화가 심해진 탓일까. 아니면 집을 투자자산으로 인식하는 주거 자산화의 후유증 때문일까. 너도나도 힘들고 억울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가령 무주택자는 임대료 부담이 무거워진 데다 내 집 마련도 갈수록 멀어져서 고달프다고, 1주택자는 집값이 너무 비싸 집을 팔아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 타기가 어렵다고, 다주택자는 세입자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데 기여분에 비해 너무 홀대당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령자들은 노후에 생활비라도 대려고 부동산에 투자하려는데, 정부가 건강보험료 등을 부과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짜증을 낸다. 젊은 층은 어떤가. 기성세대가 집값을 너무 올려놓아 주택시장 진입 자체가 어렵다고 울분을 토한다. 내 욕망을 앞당겨 이루고 싶은데, 이를 가로막는 제도와 상황에 역정을 낸다.
‘뜨거운 감자’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는 더욱 심한 시각차를 드러낸다. 조합원들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로 재건축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우니 당장 폐지를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강남구의 한 재건축 조합원은 “재초환을 일부 완화하는 수준으로는 조합원들이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며 “수억 원씩 부담금을 내는데 누가 재건축을 하겠느냐”라고 울상을 지었다. 같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인데 재개발은 개발 부담금은 물리지 않고 유독 재건축만 부과하느냐는 불만이다. 하지만 비강남권 사람들은 이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한 지방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건축의 경우 비용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대표적인 개발사례”라며 “일부라도 개발 이익 환수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물리적인 부동산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렌즈는 지극히 굴절되어 있다. 공익과 사익, 개인과 집단, 보수와 진보, 지역(수도권과 지방) 간 이해관계가 수시로 충돌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만능의 정책이 있을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이기적인 답만 원한다. 선택적 선호를 하면 사고나 행동이 한쪽에 치우치기 쉽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함몰된 시각에서 바라보면 어떤 것이든 마음에 차지 않고 쉽게 분노로 이어진다.
한쪽 논리가 횡행할수록 중심 잡기가 중요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위해서는 냉정해져야 하고, 감정조절도 필요하다. 마피아 세계의 흥망성쇠를 그린 영화 ‘대부 3’(1991)에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 감정에 치우치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현실은 암담하다. 균형을 잡고 싶지만, 주변에서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분노를 자극하는 편향되고 과장된 이야기들이 SNS에 넘쳐난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빠지게 만들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칫 분노를 팔아 돈을 버는 '분노 비즈니스'에 휘말려 들 수 있어서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이 그 분노 비즈니스의 희생양이 될 수 있으니 ‘마음의 방역’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보를 객관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 그리고 우격다짐보다 상호 인정과 대화, 설득을 통한 공존의 가치를 익혀야 대립을 최소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 쉽지는 않지만 부동산 갈등도 이런 마음가짐에서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