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스릴러 연기 도전 결과는 ‘합격’ 그 이상…“평상시에 귀여운 ‘그놈’ 배우, 촬영 땐 제일 무서워”
“왜 이제야 스릴러에 도전하게 됐냐고요? 저한테 이제까지 스릴러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었거든요(웃음). 아무래도 로코물을 주로 해오다 보니 공포나 스릴러 같은 다른 장르물에 대한 욕심이 많이 있었어요. 특히 스릴러물은 나중에 정말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었는데, 마침 그때 딱 ‘타겟’의 제안이 들어왔던 거죠.”
소원풀이를 했다며 웃음을 터뜨린 신혜선은 ‘타겟’에서 중고거래 앱을 통해 만난 사기꾼에게 복수했다가 살인범으로 정체를 드러낸 그의 새로운 범죄 타겟이 된 수현 역을 맡았다. 중고거래를 미끼로 희생자를 물색한 뒤 살해하고 그의 물건을 훔쳐 판매하는 ‘그놈’과 우연히 거래를 하게 된 수현은 고장 난 물건을 받고 나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아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수현은 직접 사기꾼을 응징하기로 마음먹고 ‘그놈’을 찾아내 사기꾼임을 공개적으로 알린 뒤 ‘그놈’과 온라인 상에서 설전까지 벌이며 당찬 복수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살인범의 모습을 드러낸 ‘그놈’의 역습에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까지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게 되면서 수현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 극의 초반에 보여줬던 우리가 잘 아는 신혜선의 얼굴이 시간에 따라 공포에 잠식된 수현의 얼굴로 변해가는 변화는 ‘타겟’에서 관객들로부터 가장 큰 호평을 받은 부분 중 하나이기도 했다. 수현이 느낀 공포를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신혜선의 열연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수현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이제까지 연기해 본 캐릭터 중에 가장 무색무취에 가까운 캐릭터였기 때문이에요.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선 좀 어려운 캐릭터이기도 하죠. 사실 강력한 캐릭터성이 부여되면 그 사람의 성격에 맞춰 연기를 선택할 수 있지만 이렇게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캐릭터는 제가 계속 만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더 어려웠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론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며 수현이의 감정이 바뀌어 나가고, 공포심이 점점 쌓여나가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눠서 연기의 중점을 각각 뒀어요. 괴롭힘으로 인한 괴로움이 얼마나 커졌는지 생각했죠.”
그런 무색무취의 수현에게 조금씩 자신을 덧입혀갔다는 신혜선이 느끼기에 캐릭터와 자신은 얼마나 닮아있을까. 공통점을 꼽는다면 “저와 수현이가 둘 다 ‘여자 사람’이라는 것밖에 없다”며 웃음을 터뜨린 신혜선은 아마 수현이 자신이 연기했던 모든 캐릭터 가운데 가장 자신과의 차이점이 뚜렷하게 부각된다고 분석했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전 수현이와 달리 진짜 겁쟁이라는 거예요. 수현인 저보다 훨씬 용기 있고 자기 목소리를 더 크게 내는 사람인 것 같거든요. 피해의 경중을 떠나 자기가 피해를 입었을 때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도 되게 용감한 일이잖아요. 저는 수현이가 사기 친 ‘그놈’을 찾아내서 막 채팅으로 욕하고 그럴 때 ‘얘가, 얘가 큰일 나려고!’ 그랬어요(웃음). 사실 수현이가 잘못한 행동은 절대 아닌데 저라면 정말 무서워서 못했을 행동이거든요. 저는 대가족과 같이 사는데도 겁이 정말 많아요. 혼자 있는데 택배가 왔다거나 경비 아저씨가 호출하시는 벨 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니까요. 촬영 때문에 숙소를 혼자 쓸 때 전 진짜 너무 무서워요. 그래서 계속 TV를 틀어놓고 있죠(웃음).”
이렇게 겁이 많은 신혜선이 촬영하면서 가장 공포를 느낀 순간은 언제였을까. 이 질문에 그는 ‘그놈’의 눈빛을 장착한 상대 배우를 현장에서 맞닥뜨렸을 때를 꼽았다. 극의 중반에 이르러서야 정체가 드러나는 ‘그놈’을 맡은 배우는 연기의 스위치가 들어갔을 때와 꺼졌을 때의 차이가 같은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게 신혜선의 이야기다. 배우 본체의 다정하고 상냥한 성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도 연기로 마주치게 되면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는 촬영 뒷이야기를 전했다.
“저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그놈’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거든요. 스포일러니까 그분이 누구신지 여기서는 밝힐 수 없지만(웃음), 현장에서 정말 제게 도움을 많이 주셨던 분이에요. 촬영을 안 할 땐 서로 농담도 많이 주고 받았고 많이 친해졌는데 촬영에 들어갈 때면 제게 정말 미안해 하셨죠(웃음). ‘그놈’ 배우님은 평상시엔 엄청 귀여우세요. 제가 늘 그 배우님께 성격이 좋단 말을 했었는데 촬영에 들어갈 때가 되면 눈빛이 확 돌변하죠. ‘그놈’ 캐릭터로 변했을 땐 눈이 너무 무서워서 저희끼리 촬영 영상을 보며 ‘멧돼지 같아, 산짐승 같아’ 그러면서 떨었어요(웃음). 제가 배우님하고 촬영 끝나고 나서 그랬다니까요. ‘너무 무서워, 눈빛 뭐야’(웃음).”
배우들의 소름 끼치는 호연과는 별개로 작품의 소재가 현실과 맞닿아있다 보니 ‘리얼한 현실밀착형 공포’를 느꼈다는 관객 평도 있었다. 혐오스럽고 불쾌한 공포라기보단 언제고 내게도 닥칠지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현실적인 공포를 느꼈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정말 무서워했다는 이야기에 “그 정도일지는 몰랐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신혜선은 “보시는 내내 계속 ‘이건 영화다’라고 생각하면서 봐주시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시지 않을까요?”라며 진지하게 해결책을 내놨다.
“아무래도 저희 영화가 현실에서 많이 볼 법한 소재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너무 현실적인 공포라서 보기 불편하단 말씀을 듣고 있지만 그런 부분은 장르적인 재미로 생각하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사실 장르적으로 평이하게 갈 수 있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니까요. 너무 현실적이라 공포스럽고 무섭다는 느낌이 들 때면, 이게 영화적인 내용이고 스릴러라는 장르의 이야기란 걸 생각하며 봐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그 러닝타임 안에서 놀이기구를 타듯이 그때만 잠깐 공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반대로 이처럼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수현이 느꼈을 공포를 실감 나게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배우가 뛰어난 열연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된다. 첫 스릴러로서 충분한 합격점을 받아낸 만큼 앞으로 그가 선보일 또 다른 장르물에는 당연한 기대가 모일 것이다. 스스로에겐 만족할 만큼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며 엄격한 잣대를 내세운 신혜선은 대중들 앞에 내세울 차기작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내가 연기하되, 내가 아닌 것”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원래 야박한 사람이라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말을 해주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타겟’을 보고 나서는 ‘그래도 첫 스릴러 도전이었으니까 열심히 해봤다!’는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요즘도 제가 나왔던 작품들을 가끔 보는데, 이제까지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자기복제가 나오게 되더라고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에겐 다 저의 모습이 묻어있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새로운 작품을 고를 때 또 캐릭터의 결이 이전 것과 너무 비슷해질 것 같으면 제가 연기한 그 비슷한 캐릭터를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차이점을 두려고 해요. 그게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있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