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호의 미소를 향해 달려가는 ‘징크스’ 같았던 인물…“‘또 봐’란 말처럼 다시 볼 수 있길”
떠난 자리가 유독 크고 깊게 남는 캐릭터들이 있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그가 없는 작품은 왠지 상상하기가 어려운, 시즌이 끝나고 작품이 마무리돼도 영영 보내기 싫은 그런 캐릭터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말이 영원히 적용되지 않았으면 했던 한호열을 끝내 보내며 작별인사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했던 팬들처럼, 그를 연기한 배우 구교환(40)도 ‘잘가’란 말 대신 다른 말을 던졌다. “고생했다. 다음엔 ‘병장 한호열’이 아닌 안준호의 후임 ‘구교환’으로 다시 보자(웃음). 또 봐.”
“터미널에서 준호와 호열이 이별하는 장면을 찍을 때가 생각나요. 제가 현장에서 연기할 때마다 자주 경험하는 일이기도 한데, 저는 제가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도 가져오지만 사적인 제 모습을 끌어와서 그 신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그 신에서 호열이가 말하는 ‘또 봐’라는 대사는 이 작품에 대한 저의 인사이기도 해요. 좀 더 궁상맞게 한 것 같긴 하지만요(웃음). 사실 시즌 2로 들어오면서는 한호열의 애드리브를 줄이자는 게 제 목적이었어요. 저는 애드리브가 극을 풍성하게 만드는 유머라고 생각해서 많이 해 왔는데 시즌 2에선 텍스트 그대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는데 ‘또 봐’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어요. (준호를) 또 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런 말이 나왔던 것 같아요.”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이탈체포조’ D.P.(디피)의 이야기를 다루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의 두 번째 시즌에서 구교환은 1계급 진급한 ‘한호열 병장’으로 등장한다. 그와 함께 D.P.조의 '콤비'로 일하는 일병 안준호(정해인 분)의 곁에서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지원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시즌 1과 달리 여기서의 그에겐 끝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병장인 한호열은 부대와 D.P., 그리고 안준호의 곁을 떠나야 하고 이 다음부터는 남겨진 안준호의 혼자만의 이야기가 펼쳐져야 한다. 구교환의 말대로 안준호의 인생에 어찌 보면 가장 크고 깊은 영향을 끼쳤을 그를 이대로 보낸다는 건 연기한 배우에게도,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한 시청자에게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는 한호열의 사건은 ‘안준호’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당장 준호의 주변에 있는 위기를 극복하려 하는 것도 호열의 역할이기도 했고요. 이 이야기는 준호가 마지막에 웃음을 짓도록 만들기 위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거든요. 호열이는 그 가운데 한 명의 인물이기도 하고, 호열이가 준호를 향한 이야기 그 자체인 것도 같아요. 다시 보시면 ‘D.P.’ 시작도 준호의 얼굴이고, 마지막도 준호의 얼굴인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지점이 그거예요. 두 얼굴을 비교해 보시면 달라져 있는데, 이 작품 속 모든 역할이 준호의 그 달라진 표정을 향해 달려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표정을 만드는 요소 중 한 명이 바로 호열이인 거죠. 호열이는, 준호에게 영향을 주고 싶었던 인물인 거예요.”
이별을 먼저 체감하고 있기 때문인지 시즌 2에서의 한호열은 시즌 1보다 훨씬 더 차분한 모습으로 안준호의 곁을 맴돈다. 전 시즌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 같은 ‘4차원 한호열’을 기대한 시청자들에겐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습마저 구교환이 설정한 것이란 뒷얘기를 듣고 나면 캐릭터가 다시 달리 보일 것이다. 구교환은 시즌 2의 한호열의 키워드에 대해 “보통 청년”이라고 답했다.
“시즌 2에 다가갈 때 제 목적은 ‘보통 청년인 한호열을 보여주자’였어요. 시즌 1에서의 호열이는 조금 판타지스러운 면모가 있었거든요. 그것에 시청자들이 쾌감을 느꼈을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 테고요. 하지만 저는 시즌 2 시나리오를 보고 ‘호열이가 애써 참은 게 터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그 모습으로 호열이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됐던 것 같아요. 호열이는 사실 위트 뒤에 진짜 모습을 숨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런 걸 통과해 내서 보여주는 게 보통 청년인 한호열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준호의 마지막 미소를 향한 달리기를 완주한 것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모두 ‘완료’했다고 생각하는 구교환은 이야기 속 얼핏 비치는 한호열의 배경이나 전사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캐릭터의 가족관계부터 MBTI까지 자잘한 정보마저 다 알고 싶어 하는 요즘 대중의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지만, 오히려 세세한 뒷이야기가 없을수록 한호열은 더욱 단단하게 완성될 수 있었다는 게 구교환의 이야기다.
“저는 호열이에 대한 어떤 전사나 혹은 제대 후의 미래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요. 그게 당연한 것 같고요. 호열이는 여백이 있을 때 호열이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한호열의 재산이 얼마고 집은 몇 평이고 이런 전사를 농담하면서 만들고 싶지만, 한호열의 끝에 있는 인물은 안준호니까요. 호열이가 처음 등장하는 것도 준호를 알아보면서 시작하고, 엔딩도 준호를 바라보면서 끝나는 것처럼요. 다만 그 큰 집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호열이의 모습을 보며 준호와 다른 환경에 있는 것은 맞다는 힌트를 얻긴 했어요. 그렇지만 호열의 전사에 깊게 들어가 생각해 본 적은 없죠. 제게 있어 호열이는 그냥 농담 같은 인물이고, 준호의 주변에서 돌고 있는 위성 같은 인물이거든요.”
그렇게 시청자와 배우가 함께 커다란 애정을 주고받았던 캐릭터 한호열을 애써 웃으며 보내주고, 구교환은 차근차근 공개될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2024년만 영화는 3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1편의 주연작 공개를 앞두고 있는 그는 배우로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감독 구교환’의 본분도 잊지 않은 상태임을 강조했다. 예정된 일정들이 모두 마무리된다면 배우 구교환에 ‘입덕’한 팬들을 새롭게 사로잡을 ‘감독 구교환’의 세계가 다시 열리지 않을까.
“‘감독 준비 중’ ‘장편영화 시나리오 넘쳐남’ ‘투자자 대모집’ 이 말 좀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실어주세요(웃음). 생각해 놓은 형태는 확실히 있거든요. 가장 큰 구성은 주인공이 저고, 연출도 저고(웃음). 이건 비밀인데요, 저 멜로 시나리오도 있어요. 거짓말이라고 할 거 같은데 이상하게 제 멜로는 제가 연출하고 싶더라고요. 작품을 아낀다기 보단 만일 제가 멜로 영화를 해야 한다면 제가 연출했으면 좋겠어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