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10명 투입 언론사·정치권 수사 확대 의지…“내년 총선 앞두고 정부·여당이 원하던 그림”
책 3권의 가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례적인 데다 둘 모두 ‘허위 인터뷰에 대한 대가’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 둘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시작으로 JTBC와 MBC, 또 이들과 협력한 대선 캠프 측 관계자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김만배·신학림 씨 둘 다 ‘계약서까지 쓴 문제없는 사항’이라는 입장이지만, 곽상도 전 국회의원 아들에게 주어진 50억 원의 퇴직금처럼 ‘비상식적’인 가격인 탓에 법원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없다’면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
김만배 씨는 구속기간 만료로 구치소를 나오는 자리에서 뉴스타파 보도 과정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녹음되는 줄 몰랐다. 신학림 씨가 저에게 사과해야 할 부분”이라며 보도의 핵심 근거가 된 녹취록 생성 과정에 대해 선을 그은 것.
만남의 배경에 대해서는 “대장동 사건으로 혼란스러울 때 기자 선배인 신학림 씨에게 전화가 와 15년에서 20년 만에 사적으로 만났다”고 밝혔고, 과도하게 책정된 책값에 대해서는 10%의 부과세 포함, 1억 6500만 원은 책값은 가치를 인정해 구입한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 책이 그분의 평생 업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예술적 작품으로 치면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해서 그 책을 산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학림 씨도 유사한 입장이다. 신 씨의 책은 우리나라 기득권들의 혼인으로 맺어진 인맥을 다룬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지도’로 모두 3권이다. 9월 1일 기자들과 만난 신학림 씨는 “2021년 9월 15일 김만배 씨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김 씨가 안부를 물어 이런 책을 갖고 있다고 하니 얼마냐고 해 ‘1억 원이 넘는다’고 대답하자 (김만배 씨가) ‘그럼 1억 5000만 원에 사겠다’고 했다”며 당시 판매 경위를 밝혔다.
신 씨는 이어 “부가세가 있어 그것도 (계약서에) 적어 책을 넘겼다”며 “책을 넘겨줄 때 계약금 300만 원을 현금으로 받고 추석 연휴 중 책이 마음에 든다며 나머지 잔금 1억 6200만 원을 송금해줬다”고 설명했다. “김 씨 입장에서는 (내 책이) 어마무시한 데이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래서 둘이 자연스럽게 책값을 정하게 된 것이고 김 씨에게 받은 돈으로 자신의 채무와 자녀들의 학자금을 갚는 데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거래 과정을 놓고도 ‘수상한 흔적’들이 나오고 있다. 일단 계약서 상 판매 계약일이다.
김만배 씨와 신 씨 사이에 인터뷰 및 녹취가 이뤄진 것은 2021년 9월 15일인데, 책값은 닷새 뒤 송금됐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작성한 책 매매 계약서에는 날짜가 6개월 전인 3월로 적혀 있다. 실제로 김 씨와 신 씨 모두 책 판매 계약일을 6개월 전으로 조작한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계약일을 2021년 3월로 한 과정을 자신은 모르겠다”며 상대방의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또 비정상적으로 많은 금액인 1억 6500만 원을 놓고 김만배 씨는 “(단순히 책 3권이 아니라) 신학림 전 위원장의 책 판권을 구입했다”는 입장이고, 신 씨는 “책 3권의 가격”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확신’ 가지고 영장 청구 준비
두 사람 모두 2021년 상반기부터 보도 시점까지 연락을 주고 받았다면서도 허위 인터뷰 기사 작성 및 포털 사이트 노출 과정에 대해서는 ‘공모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이들이 혐의를 부인하는 만큼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혐의를 부인할 경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는데, 이들은 1억 원이 넘는 대가성 자금을 계약서를 통해 숨기려고 했다고 볼 여지가 있지 않냐”며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중대범죄’라고 지적하는 등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검찰은 대통령실의 중대범죄 비판이 나오자 곧바로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10명의 검사들이 투입됐는데 ‘특별수사팀’을 꾸린 것 자체가 검찰의 수사의지를 보여주고 이렇게 수사를 밀어붙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1억 6500만 원에 달하는 책값이 한몫했다는 평이 나온다.
영장전담 재판부 경험이 있는 한 판사도 “이례적인 책값의 가격이나, 이를 놓고 계약서까지 쓰면서 시점을 앞당긴 점, 관련해 녹취파일 관련 기사가 노출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며 “녹취파일 자체도 살펴봐야 하겠지만 1억 원이 넘는 고액의 책값과 계약서 부분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흐름이 예상된다”고 조심스레 설명했다.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 중인 검찰은 신학림 씨를 9월 7일 배임수재 및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러 조사했다. 신학림 씨는 이후 두 번째인 11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자리에서 “피의사실 유포죄로 검찰을 고소할 것을 지금 계획하고,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검찰은 아랑곳 않고 있다.
이미 검찰 안팎에서는 두 핵심 당사자(김만배, 신학림)의 구속이 성공하면 언론사(MBC, JTBC, KBS 등)와 정치권(이재명 당시 대선캠프)으로 수사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중 두 핵심 인물의 신병이 확보되면 10~11월까지는 검찰 수사 내용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뉴스타파 보도를 필두로 이를 인용보도한 언론사들의 보도 과정 수사가 본격화되고 동시에 정치권에서 이를 사주한 의혹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인 것이다. 특별수사팀은 뉴스타파 보도가 이뤄진 2022년 3월 6일 전후로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전 정무조정실장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과 김 씨를 비롯한 대장동 일당 간 통화기록과 문자메시지 등을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카드”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실과 가까운 한 변호사 역시 “이번 검찰 인사를 앞두고 대통령실에서 몇몇 지방검찰청의 수사 속도와 방향을 놓고 ‘왜 제대로 가지 않느냐’는 평가가 있었다고 하더라”며 “지금 이뤄지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는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여권이 가장 원하던 수사가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