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사고뭉치 외아들 ‘노는 오빠’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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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이는 미국 유학 당시 하라는 경영공부는 안하고 버클리 음대에 입학해 ‘딴따라’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제공=YG |
# 강남 8학군 출신 유학파
어찌 보면 ‘강남스타일’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잘 사는 집 자제로 외제 승용차 타고 다니며 돈푼깨나 쓰는 남자, 해외 유학파로 영어 좀 되고 해외 명품 브랜드를 잘 소화하는 남자, 잘 놀고 쿨해서 이성과의 만남에도 개방적인 남자 등등 특권 계층의 이미지가 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강남스타일의 남성은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철없고 능력도 없는데 부모의 재력으로 커버하는 강남 남성 캐릭터가 실력으로 어려운 가정 환경을 극복한 남자 주인공을 괴롭히는 소재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 중 하나다. 어찌 보면 싸이 역시 이런 전형적인 ‘부잣집 사고뭉치 외동아들’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집안이 부유하다. 싸이의 할아버지는 지난 1955년 과학기자재 수입 판매업을 하는 오퍼상으로 출발해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 등에 각종 반도체 장비를 제조·공급하는 반도체 종합장비업체로 성장한 ‘디아이’의 창업주인 고 박기억 회장이다. 현재는 부친 박원호 회장이 디아이의 최대주주다. 싸이는 수천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이 중견 기업체 집안의 외동아들이다. 게다가 초중고를 모두 강남 8학군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서울 반포에서 나왔다.
대학 진학 역시 국내 대학이 아닌 해외 유학을 선택했다. 당시 싸이의 부친과 조부는 그가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하길 원했다. 이에 싸이는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선 해외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설득해 보스턴대학교 국제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싸이는 곧바로 휴학한 뒤 집에서 보내준 등록금을 소위 노는 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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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링캠프> 출연 모습. 사진제공=SBS |
최근 SBS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싸이는 이를 “가무에 투자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당시 싸이는 주로 ‘가무’를 하며 놀았다는 얘기가 된다. 노래하고 춤추면서 젊은 날의 에너지를 발산한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음악에 다가갔고 랩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싸이는 좀 더 깊이 있는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를 위해 작곡 공부에 돌입한 싸이는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 집에선 그가 보스턴대학교에서 경영을 공부하는 줄 알고 학비를 보내줬었다.
여기까진 드라마나 영화 속 강남스타일 남성들과 비슷하다. 공부를 핑계로 해외 유학을 떠나 노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나 집에서 반대하는 ‘딴따라’의 길에 매료되는 모습 등이 그렇다. 부정적 이미지의 강남스타일 남성들은 이 고비를 극복하지 못한다. 실력을 키우기보단 노는 데 더 집중하고 힘들면 집안의 재산에 기대려 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들이 욕을 먹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싸이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한계를 극복했다. 버클리 음대에 다닌다는 사실이 부모에게 발각되면서 학비 지원이 끊겼음에도 싸이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 음악 공부에 매진했다. 그렇게 5년여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싸이는 ‘박재상’이라는 본명 대신 싸이라는 이름으로 1집 앨범을 발표했고 그 앨범은 대박이 났다. 놀던 강남스타일 오빠가 가요계의 신성으로 거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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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스타일’ 스틸사진. 사진제공=YG |
가요계에 진출한 싸이의 앞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수 데뷔 이후 싸이는 두 개의 큰 고비를 겪게 된다. 하나는 대마초이고, 또 하나는 병역이다. 안타깝게도 마약류 복용과 병역 기피는 강남스타일 남성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해주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유학 시절에 접한 마약류를 몰래 들여와 클럽 등에서 즐기고, 부모의 재력과 권력에 힘입어 불법적인 방식으로 병역을 면제받는 부유층 자제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싸이 역시 이 두 사건에 모두 연루되면서 강남스타일의 원조다운 행보를 보였다. 그렇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싸이다웠다. 대마초 흡연으로 물의를 빚으며 연예계 활동을 중단한 싸이는 2002년 변리사 시험에 지원해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가요계를 떠나 다른 길을 걸어가려 했던 싸이는 결국 무대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다시 가요계로 돌아왔다.
어찌 보면 싸이에게 대마초 흡연 적발은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는지도 모른다. 그는 오랜 유학 생활 후유증과 가수 데뷔와 동시에 오른 스타 의식에 따른 부담 등으로 대마초 흡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싸이는 어려운 상황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변리사 시험 도전’과 같은 인생에 대한 개척 및 도전 정신으로 자신이 처한 최대의 위기상황에 맞선 것 역시 싸이만의 방법이었다. 고비 때마다 무너져 집안의 재력 뒤에 숨으려 드는 부잣집 외동아들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싸이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방위산업체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을 대체했지만 부실 복무 논란에 휘말리며 2007년에 다시 현역 입대했다. 방위산업체에서의 대체 복무 35개월에 현역 20개월, 유부남에 아빠가 된 싸이는 그렇게 무려 55개월 동안 군복무를 했다.
분명 비난받을 부분도 있고 억울한 부분도 있겠지만 싸이는 묵묵히 현역 복무에 전념했다. 이를 통해 군의 사기를 높이고 육군 홍보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육군 참모총장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전역했다. 싸이다운 정면 승부가 또 한 번 성공적인 결말을 도출해 낸 셈이다.
# 여전히 잘 노는 실력파 뮤지션
싸이는 여전히 잘 논다. 가수 싸이의 진가는 콘서트 무대에서 드러난다. 그만큼 무대를 즐기며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가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군 전역 이후 평소 절친했던 가수 김장훈과 함께 콘서트 위주로 활동했던 싸이는 YG엔터테인먼트(YG)로 소속사를 옮긴 뒤 본격적으로 이번 6집 앨범 준비에 돌입했다. 그렇게 마련된 6집 앨범 <싸이6甲(싸이육갑)>이 발표됐고, 타이틀곡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오고 있다.
이번 앨범 발매를 앞두고 YG의 수장 양현석 대표는 “싸이가 이번 여름 큰 사고를 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실제로 ‘강남스타일’의 전 세계적인 인기는 양 대표가 언급한 ‘큰 사고’의 범주를 뛰어 넘는 ‘초대형 사고’로 평가받고 있다.
어찌 보면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형상화 된 강남스타일 남성의 모습은 다소 편향되고 왜곡된 것인지도 모른다. 극히 일부 부유층 자제들의 어긋난 모습이 악역 캐릭터를 원하는 작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보편적인 강남스타일 남성들인 양 비친 것일 수도 있다. ‘개천에서 난 용’에 대한 판타지가 한국적인 ‘남성형 캔디’ 스토리를 양산하다 보니 그 반작용으로 만들어진 왜곡된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남다른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꿈을 향한 열정으로 실력을 쌓아 정상에 오른 진정한 강남스타일의 오빠들도 충분히 많다는 점을 싸이는 자신의 굴곡진 삶을 통해 입증시켰다. 그리고 이번 노래 ‘강남스타일’을 통해 그 정점을 찍었다. 노래 제목처럼 싸이는 진정한 ‘강남스타일’이 아닐까.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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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데는 팝스타들의 트윗 홍보와 세계 언론매체들의 보도도 한몫했다. CNN 보도 장면. |
소녀만 있나 케이팝의 ‘대반전’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중독된 건 음악 팬만이 아니다. 미국 방송사 CNN과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 <LA타임스>를 비롯해 시사 주간지 <타임>까지도 ‘강남스타일’ 열풍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이 매체들이 다루는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새로운 슈퍼스타의 탄생’에 주목하고 있다.
<타임>은 8월 16일(한국시간) 인터넷판을 통해 “‘강남스타일’은 중독성이 매우 강한 노래”라며 “싸이는 한국 밖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가수이지만 괴상하면서도 볼만한 뮤직비디오는 그의 공인된 히트작이 됐다”고 소개했다. 미국 ABC 방송은 싸이와 인터뷰를 갖고 “강남은 한국의 베벌리힐스를 의미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싸이의 외모와 춤, 뮤직비디오에서 그려진 상황은 전혀 베벌리힐스 같지 않다는 사실이 인기 포인트”라고 분석했다.
해외 언론이 먼저 주목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드롬은 유튜브에서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현재(8월 17일 기준)까지 3500만 건을 넘었다. CNN은 “유튜브에 오른 뮤직비디오가 한 달 만에 2000만 건을 넘어선 건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소개했다. 프랑스 민영방송 M6 TV도 “독특한 승마 춤으로 만든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며 싸이 신드롬을 전했다.
싸이의 ‘글로벌’ 인기는 여러 나라에서 이 뮤직비디오를 흉내 낸 다양한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속속 올라오고 있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보는 해외 팬들의 반응을 촬영한 ‘리액션 동영상’도 수천 개에 이른다. <타임>은 “케이팝 팬 외에도 미국의 스타들도 이 뮤직비디오를 주목해 봤다”고 전했다.
‘강남스타일’이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한층 뜨거워진 케이팝 인기가 밑바탕이 됐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아이돌 그룹들이 다져놓은 케이팝 문화를 기반으로 한국 음악을 향한 높은 관심 속에 새롭게 등장한 ‘강남스타일’이 일종의 ‘반전 재미’까지 더해 주고 있다는 평가다. 화려한 외모와 완벽한 춤 실력의 한국 아이돌에게 익숙했던 케이팝 팬들에게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말 타기’ 춤을 앞세운 싸이의 뮤직비디오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싸이를 두고 일어난 폭발적인 관심의 정도는 현지 음반시장 진출 제안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싸이는 지난 8월 15일 미국으로 출국해 현재 LA에 머물고 있다. 현지에서 싸이는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기획사와 공동 작업도 논의할 계획이다. 저스틴 비버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팝스타라는 점에서 싸이의 향후 미국 진출 가능성을 밝게 하고 있다.
싸이는 미국에 머물며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세련된 아이돌 그룹이 아닌, 촌스러운 복고 음악으로 세계 음악 시장에 도전하는 이색적인 한국 가수에게 전 세계 뮤지션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