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비 증가와 업황 부진 등이 영향 미친 듯…태광산업 “계획은 있지만 시점 보고 있어”
#핵심사업 육성 기대했지만…
태광산업은 2021년 10월 LG화학과 합작법인 티엘케미칼을 설립했다. 태광산업은 728억 원에 티엘케미칼 지분 60%, LG화학은 485억 원에 나머지 지분 40%를 각각 인수했다. 티엘케미칼은 아크릴로니트릴(AN)을 생산해 태광산업과 LG화학에 공급할 예정이었다. AN은 프로필렌과 암모니아를 원료로 하는 단위체로 아크릴섬유, 에이비에스(ABS) 합성수지, 니트릴부타디엔라텍스(NBL)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법인 설립 당시 AN을 사용하는 가전·자동차·친환경 분야의 제품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였다. 티엘케미칼은 태광산업 창사 이래 첫 합작법인이다. 티엘케미칼에 대한 태광산업의 기대감도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관련기사 LG화학과 합작사 설립 ‘M&A 명수’ 태광그룹 터닝포인트 되나).
태광산업과 LG화학 양사는 티엘케미칼 설립 당시 “합작을 통해 대규모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분담하면서 핵심사업의 경쟁력 제고, 시장지배력 확대를 꾀할 수 있다”며 “안정적 수요처 확보를 통한 증설로 규모의 경제 실현, 핵심사업 육성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티엘케미칼은 2022년 3월 울산광역시에 생산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밝히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했다. 티엘케미칼은 당시 울산시와 ‘AN 생산시설 증설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티엘케미칼은 2025년까지 울산시 미포산업단지 부지에 연 26만 톤(t) 규모의 AN 생산 시설을 갖출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후 티엘케미칼은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울산공장은 아직 착공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태광산업은 반기보고서를 통해 “티엘케미칼의 신규공장 설립은 과도한 투자비 증가와 시황 악화로 대주주 간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방향으로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태광산업은 티엘케미칼에 수백억 원을 출자한 만큼 당장 사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티엘케미칼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시기를 조정하거나 투자 규모를 줄인다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안다”며 “울산시에서도 티엘케미칼에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태광산업 관계자는 “업황이 안 좋아지고 금리도 상승하며 글로벌 수요도 침체가 돼서 시장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10조 원 투자 계획'은요?
앞서 태광산업은 지난 6월 방적 사업에서도 철수했다. 방적 사업 철수와 티엘케미칼 투자 계획 재검토 등 태광산업의 일련의 움직임을 지난해 발표한 10조 원 규모의 투자와 연관 짓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태광산업은 방적 사업 철수 이유에 대해 “사업 환경 및 사업 실적의 지속적인 악화로 방적 사업을 중단한 것”이라며 “잔여 사업 집중과 신규 사업 추진을 통해 수익성 및 재무구조를 개선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12월 향후 10년 동안 석유화학부문에 6조 원, 섬유부문에 4조 원, 총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시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지난 8·15 광복절 특별사면을 계기로 태광산업이 대규모 투자에 돌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태광산업은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투자 로드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 태광산업은 지난해 투자 계획을 발표할 당시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현실적 계획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호진 전 회장의 사면을 위한 선심성 투자 계획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도 태광산업이 당분간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석유화학 업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김기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석유화학은 중국의 증설 투자에 따른 수급 부담이 상당한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중국 경기 회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으로 범용 제품 중심으로 업황 부진이 좀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중국의 증설 물량과 자급률 개선을 고려하면 향후 업황이 회복돼도 실적 개선폭이 과거 평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태광산업의 실적이 하락세라 상황이 여의치도 않다. 올해 상반기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태광산업의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1조 4407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1조 1757억 원으로 18.39% 하락했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상반기 147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531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이와 관련, 앞서의 태광산업 관계자는 “다양한 투자 계획을 갖고 있으며 집행 방식이나 자금 조달 등에 대한 세팅도 해놨다”면서도 “시장 상황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점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