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자금력으로 국내 시장 침투…“정부가 단계별로 시장 통제해야”
우리나라는 풍력발전 사업을 하기에는 바람이 약해 정격 출력이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풍력 발전기의 진보로 풍력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량을 좌우하는 날개 길이가 길어져 풍속이 낮아도 정격 출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풍력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발전사업 허가를 받기 전 1년 이상 풍황 자원 조사 등을 통해 사업 타당성 검사를 한다. 일별, 주별, 월별, 연도별 통계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풍속이 12~16m/s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풍속은 7~9m/s 수준”이라면서도 “발전기 날개 길이가 길어지면서 우리나라도 풍력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이미 사업을 하고 싶어서 발전 사업 허가를 받으려는 업체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전기위원회에 따르면 허가일 기준 지난해에만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풍력 사업자는 176곳이다. 풍력 사업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가 신속한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허가 기준 장벽까지 낮추면서 풍력 사업에 뛰어드는 업체는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 실제로 사업에 성공하는 사업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주민 수용성과 복잡한 인·허가 체계로 사업이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한 해에 사업을 시작하는 업체는 10곳 미만이다. ([대한민국 풍력 사업 현주소①] 에너지 정책 역풍에 ‘달팽이걸음’, [대한민국 풍력 사업 현주소②] 전기요금보다 높은 ‘단가’ 절감이 숙제)
사업이 끝을 모르고 지연되면서 업체들은 자금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본전이라도 찾고자 사업권 매각을 시도하는 업체도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깨끗하지 못한 일도 생겨났다. 지난해 한 전북대 교수가 풍력 사업권을 팔아 7000배가 넘는 수익을 챙기려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장을 향한 불신은 짙어졌다. 해당 교수는 자본금 1000만 원인 회사로 따낸 새만금 해상 풍력발전 사업권을 태국계 회사에 넘기면서 약 720억 원의 수익을 벌어들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교수가 허위 서류를 제출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지난 8월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주민 수용성 확보와 인·허가 문제로 해상풍력 단지 건설 완료까지 유럽 대비 2년 이상 더 필요해 투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풍력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부분 업체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투자금 조달을 시도한다. 이때 투자사들이 주민 수용성과 환경영향평가 해결 여부를 가장 유심히 살핀다. 둘 중 하나라도 해결이 안 되면 투자 진행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틈을 이용한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노르웨이 국영 종합에너지기업인 에퀴노르는 제주도 추자도에서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추진 중인 업체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이 지역은 단일 해역에 조성되는 해상풍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에퀴노르는 추자도 외에도 울산에서 ‘반딧불이’, ‘동해1’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에퀴노르가 추진하는 세 곳의 발전 규모는 2.5GW에 달한다.
세계 최대 그린에너지 투자운용사인 ‘코펜하겐 인프라스트럭쳐 파트너스’(CIP)는 국내 풍력발전사업에 45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글로벌 해상풍력 전문기업 오스테드도 1.6GW 규모의 인천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종합에너지기업 bp는 해상풍력발전 기업인 딥윈드오프쇼어(Deep Wind Offshore)와 국내 해상풍력 사업 개발을 위해 합작 회사를 설립하고, 딥윈드오프쇼어가 추진 중인 국내 4개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잠재 발전용량은 최대 6GW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의 관계자는 “사업은 투자금 회수 기간이 20~30년이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부동산 PF보다 더 길고 위험한 PF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글로벌 기업보다 경험이 적은 국내 기업이 수천억 원을 투자할 리 없다. 결국 사업권은 자금력이 탄탄한 글로벌 기업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너지전환포럼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의 참전이 국내 풍력 사업 발전의 긍정적인 요소가 되려면 정부가 단계별로 시장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가령 해외 굵직한 에너지기업이 먼저 국내 시장을 조성하게 만든 후 국내에 산업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기업들의 참여를 높이고, 마지막으로 잘 조성된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도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 단계적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글로벌 기업들은 철저하게 경제성에 따라 움직일 공산이 크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