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부진 속 중국발 물량 공세, 실적 기대치 밑돌아…롯데 “하이엔드 동박 수익성 대폭 개선 전망”
#고객사 증설 지연
10월 7일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는 110억 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52% 감소한 실적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올해 2분기에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4%가량 감소한 15억 원을 기록해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1분기 역시 전년 동기 대비 72% 감소한 6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증권사들 추정치의 절반도 벌어들이지 못했다. 롯데그룹 화학군이 배터리 소재 사업 확장을 본격화하기 위해 2조 7000억 원을 투입해 인수했는데 성적표가 신통치 못한 셈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만 부진한 것은 아니다. 증권업계 관측에 따르면 글로벌 1위 동박업체인 SKC의 2차전지 소재 사업의 영업이익 역시 74억 원으로 전년(322억 원) 동기 대비 77%가량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솔루스첨단소재는 1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국내 동박업체들 실적이 부진한 이유로는 중국발 물량 공세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과잉 생산된 중국산 동박이 시장에 풀리면서 국내 기업들도 덩달아 판가를 낮춰야 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에 따르면 신규 공장 증설 대비 고객사 증설이 2~3년간 지연되면서 고정비 부담이 늘어난 것도 실적 부진의 주된 이유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본격적으로 공장 증설에 나선 반면, 올해 경기 악화로 금리가 인상되면서 브리티시볼트 등 유럽의 신생 배터리 업체들이 파산하고 전기차 공장들도 증설을 미루거나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관계자는 “고객사 수요 감소로 저희가 납품하는 속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어 계획되어 있던 매출을 채우지 못했고 고정비 부담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판가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인 중 하나는 핵심 원재료인 구리 가격이다. 동박업체들이 구리 가격이랑 동박 가격이 연동되도록 연동제로 계약을 맺기 때문에 구리 가격이 오르면 동박 가격을 올려서 매출 규모를 키울 수 있다. 반면 구리 가격이 낮아지면 동박 가격도 덩달아 낮춰야 한다. 올해 중국의 거시경제 환경이 악화하면서 가전, 자동차 등의 수요가 줄어 구리 가격 역시 가파르게 떨어졌다.
런던비철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가격은 연초만 해도 중국의 경제 재개 기대에 톤(t)당 9550달러까지 올랐으나 지난 10월 3일 t당 7921달러를 기록하며 가파른 하락세를 그렸다. 동박 제조원가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전력비 역시 적자가 쌓인 한국전력이 올해 국내 산업용 전기료를 크게 인상한 까닭에 직격탄을 맞았다.
다만 전력비와 관련해서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동박 업체 중에서도 향후 유리할 고지를 점할 전망이다. 롯데가 올해 가동을 본격화한 연산 4만t 말레이시아 공장의 경우 수력발전에 기대고 있어 전기료가 반값 수준인 데다 RE100(재생에너지 100%) 달성이 가능하다. 현재 생산량 확대를 위해 5·6공장을 증설하고 있으며 2024년 초 본격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스페인에 추진하는 연산 3만t 규모의 스마트 팩토리 역시 재정 지원을 받고 솔라팜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엇갈리는 전망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전신인 일진머티리얼즈는 국내 최초로 동박의 국산화에 성공한 소재 전문 기업이다. 동박은 두께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 안팎의 얇은 구리막으로, 전기차 2차전지 내에서 음극의 집전체 역할을 한다. 두께가 얇을수록 2차전지의 경량화·고용량화에 유리한데 롯데가 내세우는 하이엔드 동박의 두께는 6μm 이하 수준으로 시장에 통용되는 중국산 범용 동박 대비 우수한 수준이다. 2022년 기준 글로벌 동박 시장 점유율은 SK넥실리스(22%)가 1위고 중국 왓슨(19%), 대만 창춘(18%),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13%)가 뒤를 따르고 있다.
동박업계 한 관계자는 “동박은 호흡이 느린 업종이다. 분명히 유럽이든 미국이든 무조건 다 전기차로 전환을 해야 해서 성장 전망성은 큰데 롯데 같은 경우 이제 막 말레이시아 공장을 증설한 까닭에 고정비용 부담이 늘어 실적이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체들이 앞다퉈 증설에 나서며 향후 경쟁은 치열해질 전망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뿐만 아니라 SK넥실리스는 폴란드(연 5만t), 말레이시아(연 5만 7000t)에 솔루스첨단소재는 룩셈부르크(연 1만 5000t), 헝가리(연 3만 8000t), 캐나다(연 2만 5000t)에 공장을 준공하며 증설에 나서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중국발 공급 과잉이 극심한 상태고 국내 업체들끼리도 여기저기 계속 증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며 “전기차 시장이 계속 성장은 하니까 중장기적으로는 괜찮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전기차 시장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는 국면인 점도 감안해서 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과 비교해 롯데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의 동박 품질이 우위에 있어 수익성이 내년부터는 회복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배터리의 다른 소재들과도 조화를 이뤄야 전반적으로 잘 작동하는데 중국산으로는 아직 쉽지 않다”며 “국내산이 원래부터 프리미엄 모델에 쓰이던 레퍼런스가 있고, 차세대 배터리에 한국 동박을 쓰려는 움직임도 있었기 때문에 기초체력 측면에서 중국이 한국의 기존 공급선을 앗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박도 만만치 않다. 앞서의 한 증권사 연구원은 “중국이 못 따라온다고 보는 건 난센스”라며 “우리가 하이엔드 동박 기술을 선점하긴 했지만 중국 역시 LFP 말고도 삼원계에 들어가는 고효율 배터리에 중국산 하이엔드 동박들을 쓰고 있기 때문에 기술 격차는 금세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산 전기차용 동박에 대한 제재 여부가 변수로 꼽힌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이 불투명한 시점이라 IRA 자체도 워낙 불확실해졌고 소재사들이 경영 계획을 짜기가 쉽지 않다”며 “중국 전기차용 동박에 대한 제재 여부가 불투명하고 최근 새롭게 전쟁이 나면서 금리 인상 기조와 전기차 수요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부담 요소”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관계자는 “중국산 동박 업체들의 물량 공세와 고객사 수요 하락으로 실적이 다소 감소했으나 향후 중국산 범용 동박이 아닌 고성능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국내산 하이엔드 동박의 수요가 상승해 수익성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