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은 9등급제→5등급제, 수능 주요 과목은 공통화…특목고·자사고 선호, 사교육 의존도 커질 전망
#고교학점제 무용지물되나
이번 대입제도 개편 시안은 내신과 수능 두 축을 중심으로 변화가 발생한다. 먼저 내신을 살펴보면 고교 내신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간소화된다. 절대평가(A·B·C·D·E)와 상대평가(1·2·3·4·5등급)을 병기하는 방식이다.
평가 기준의 주관성을 이유로 논란이 됐던 논·서술형 평가도 강화된다. 교사의 평가 역량을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지금의 5지선다형 체제에서도 시험 문제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데, 논술형 평가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고교 내신의 변화로 고교학점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고교학점제 평가 기준은 1학년은 상대평가, 2~3학년은 절대평가다. 하지만 이번 시안에서는 고등학교 전체 교육과정이 상대평가가 되면서 고교학점제의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는 평가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소장은 “내신 상대평가를 유지하면 학교에서 내신 교과목을 선택할 때 수능에 포함된 과목을 택하게 된다. 고교학점제의 취지인 진로와 적성에 맞는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해진다. 학생들이 대입 유·불리를 따져 인원수가 많은 과목, 상위권 학생들이 적게 분포한 과목에 몰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택과목 없어진 수능, ‘이과 우위’ 더 굳건해지나
교육부는 수능 선택과목에 따른 대입 유·불리 해소를 위해 ‘공통과목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수능 선택과목 폐지와 관련해 “단순히 높은 표준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정 과목을 선택하여 학습하는 것은 결코 교육적으로 올바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따라 수험생의 학습량이 과도하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어와 수학은 기존 2과목에서 3과목으로, 사회와 과학은 기존 각 영역 2과목 선택에서 통합사회·과학 과목을 다 공부해야 한다. 게다가 상위권 이과 수험생 중에서는 절대평가 과목인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을 추가로 공부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심화수학은 신설을 검토 중이다. 다만 교육부는 “현행 수능과 학습량은 동일하다”는 입장이다.
이과 성향 수험생의 유리함이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이과의 문과침공이 더 심화될 것이다”라면서 이렇게 전망했다.
“수학 영역 상위권은 압도적으로 이과 성향 수험생들이 휩쓸 것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이과 성향 수험생은 수학·과학에서 고득점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변별하는 것은 국어라고 볼 수도 있다. 문과 성향 수험생의 경우 수학이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학의 문과 합격선 자체가 더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문과 학과에 지원할 경우 수학 점수가 당락을 가를 것이다. 문과 성향 상위권의 경우 이과 학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 과학 공부를 얼마나 해 놓느냐가 문·이과 양쪽의 경쟁력을 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과 성향의 유리함은 더 커질 것이다.”
#대입만큼 중요해진 ‘고입’
내신 변별력이 떨어져 자립형사립고·특수목적고에 대한 선호도가 다시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내신 1등급 비율이 4%에서 10%로 바뀌면서 상위권 학생들의 1등급을 위한 경쟁이 약화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만약 내신의 중요성이 감소하면 자연스럽게 수능과 수시 면접 등의 중요성이 커진다. 일반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신 성적을 관리하기 어려운 대신 면학 분위기와 학생부 관리에 특화된 자사고·특목고에 대한 선호도가 다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임성호 대표는 “지금 중2 학생들부터는 고등학교 선택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면서 “고교학점제가 잘 운영되는 학교는 결국 자사고·특목고일 가능성이 높다는 기대 심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학군이 좋은 곳을 보내기 위해 이사를 고민하는 경향도 보인다”고 말했다.
고1, 중2 두 자녀를 둔 학부모 A 씨는 “이번 개편안을 보고 중학생을 둔 학부모 사이에서 공통된 의견이 있다. 자녀를 자사고 혹은 과학고에 보내든지 최소 명문 일반고에 보내겠다는 것”이라면서 “아는 분이 일반고에 다니는 자녀의 공개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다. 공개수업 도중인데도 3명 중 1명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 관리가 전혀 안 되는구나’ 생각했다더라”라고 말했다.
#‘지금도 학원비에 등골 휘는데…’
개편안 발표 이후 ‘윈터스쿨’ 프로그램도 성행하고 있다. ‘윈터스쿨’이란 겨울방학에 다음 학년 교과 과정을 선행 학습하는 사교육 프로그램이다. 앞서의 학부모 A 씨는 “첫 애를 중3 때 두 달 정도 윈터스쿨에 보냈다. 당시에도 조기 마감되며 열풍이 대단했다”라면서 “주변의 중2 학생 학부모들 상당수가 (윈터스쿨에 대한) 결심을 굳힌 것 같다. 대치동과 중계동 쪽 윈터스쿨 프로그램을 많이 등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공통과목으로 변할 사회와 과학 과목을 대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학부모 A 씨는 “문과 성향 아이들이 고1 1년으로 통합과학 대비가 되겠느냐. 벌써 학원가에는 방학 특강으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대비하는 과정이 생겨나고 있다.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을 믿지 못하겠다. 결국 엄마들이 학교보다 학원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호 대표는 “수능의 변별력이 커졌기 때문에 방학 동안 무(無)학년의 개념으로서 중2 때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선행학습할 필요성이 나타날 수 있다. 과목 별로 보면 사회와 과학은 어떻게 바뀔지 몰라서 미리 말씀드리기 애매하다. 하지만 수학의 경우 교과서가 바뀌어도 내용은 유지될 것이다. 다만 이과 쏠림이 나타나기 때문에 통합과학의 경우 ‘물화생지(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가 명확히 구분돼 미리 준비하려는 움직임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리 논술에 대비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3과 중3 자녀를 둔 학부모 B 씨는 “지금도 학원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개편안에 따르면 보내야 할 학원이 너무 많다. 수능에서 킬러문항이 배제됐다고 하는데 수리 논술에서 킬러문항이 나오더라. 최근 가톨릭대학교 수리 논술을 치른 아들이 말하길 한 문제는 너무 어려워 손도 못 댔다고 하더라.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라면서 “연세대 등 다른 대학도 킬러문항이 출제됐다고 하더라”라고 귀띔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