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신분은 상속과 교육에 의해 정해졌다. 부자 핏줄을 타고나는 것은 운명이지만 교육은 달랐다. 고도 성장기의 우리 시대는 일류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 들어가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산업화된 대한민국의 새로운 계급을 형성했다. 그런 성공의 경험을 그대로 자식 세대에 이식하고 있다. 일류대학의 졸업장만이 상류계급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이라는 고정관념에 돈을 아끼지 않고 사교육에 투자한다.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대학에 대한 절규가 담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대학이 지성의 산실로 알았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알고 보니 끼리끼리 학연으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무서운 조직이더라는 것이다. 학연이 실적보다 앞서고 그 앞에서는 좌도 없고 우도 없더라는 것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대학은 지식의 전당이 아니라 출세의 사다리였다.
부자가 됐어도 일류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어떨까. 재벌 반열에까지 올랐던 IT 계통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있었다. 첨단기술을 개발한 그는 삼성이나 현대와 어깨를 겨루는 재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정·관계 언론계에 전방위로 돈을 뿌린 게이트 사건이 한동안 신문과 방송에서 들끓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런 한탄을 했다.
“우리 사회에 학연의 그물망이 정말 촘촘하게 짜여 있는 것 같아요. 돈을 아무리 많이 써도 그 그물망을 뚫기가 정말 힘들어요.”
대학 졸업장이 없는 그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일타강사 출신으로 학원 재벌이 된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대학 졸업장이 없지만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사기죄로 고소가 되어 재판을 받을 때였다. 나는 그를 사기로 보지 않았다. 법관 출신의 다른 변호사들도 같은 견해였다. 최고 명문대 출신의 재판장이 마지막에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피고인은 이카루스의 날개를 압니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 근처까지 높이 올랐다가 추락했다. 뜨거운 열기가 부실한 밀랍 날개를 녹이자 그는 한없이 밑으로 곤두박질했다. 재판장은 중형을 선고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상식적인 개념으로 이 사건은 사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라도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법적인 사기의 개념은 또 다른 것입니다.”
나는 재판장이 던진 ‘이카루스의 날개’라는 화두를 지금까지 되새기고 있다. 대학 졸업장은 없지만 그는 대통령이 되려고 했었다. 너무 높이 날아오르려고 했던 죄일까.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최고 미녀인 원로 탤런트를 언론이 대학 졸업장이 없는 걸 파헤쳐 망신 주는 걸 봤다. 신도 수십만의 정신세계를 이끄는 목사가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사유로 일류대학 출신의 박사들에게 공격받는 걸 보기도 했다. 대학도 다 같은 대학이 아니었다.
서울대 입시에서 실패하고 2차 대학에 간 친구가 있었다. 집념을 가진 그는 20대에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무섭게 일을 했다. 어느 날 담당국장은 그에게 외교관이 됐다고 누구나 대사가 되고 차관 장관이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해 줬다. 그는 고시에 합격해도 일류명문대학 출신들만의 리그인 그 판에 진입하기가 어려운 걸 알았다고 했다.
상고를 졸업한 노무현 대통령은 사법고시 출신이었다. 소수의 합격자만 뽑는 고시에서 합격한 그 자체로 능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나 일류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꼬리표는 대통령이 돼서까지 그를 따라다닌 것 같다. 그의 탄핵은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엘리트층의 감정에서 비롯된 면이 있었던 건 아닐까.
경제 성장기가 끝나고 인구절벽의 시대다. 일류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다. 서서히 사회의 프레임이 바뀌는 걸 느낀다. 일류대학에 대한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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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