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배달앱 통해 개인정보 불법 수집, 초상권·사생활 침해도…“관리·감독 법제화 필요” 목소리
#‘사이다 불륜’ 폭로? 불법 촬영 가능성 높아
SNS로 흥신소를 검색하면 상당수가 의뢰받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영상을 업체 홍보용으로 사용 중이다.
팔로어 2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A 흥신소는 2월부터 꾸준히 불륜 미행 영상을 올리고 있다. ‘#스토킹’을 태그하면 ‘24시간 미행 가능, 불륜 증거자료 수집’이라는 홍보 문구도 적어 놨다. 다른 흥신소 인스타그램 계정 역시 비슷한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반응은 뜨겁다.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은 602만 회 이상 재생됐으며 댓글도 2000개가 넘어간 상황이다. 이외에도 ‘대낮부터 모텔을 간다고?’ ‘불륜의 메카 골프장’ 등의 제목이 달린 영상들이 수십 개가 넘는다. 누리꾼들은 “저것들이랑 결혼한 사람 불쌍하다” “역대급 추잡스러움이다” 등 영상 속 인물들에 대한 비난 댓글을 달고 있다.
당사자들의 얼굴은 자막 등으로 가려져 있지만, 옷이나 가방 등 차림새와 식당 간판 등 주변 풍경은 고스란히 노출돼 지인은 충분히 당사자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나 초상권 침해 등 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는 대목이다.
흥신소가 의뢰인 배우자나 애인 등의 불륜, 외도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미행해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다면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 흥신소에 증거 수집을 의뢰한 이들도 교사범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의뢰인 중에는 살인범도 있었다
흥신소를 찾는 고객은 다양하다. 불륜 남녀 뒷조사부터 짝사랑하는 사람의 개인정보, 학교폭력 증거 수집, 심지어는 좋아하는 가수의 위치 추적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비용을 지불하면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영업 방식은 범죄로 이어졌다.
한때 교제했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자 앙심을 품고 흥신소를 통해 집 주소를 알아낸 뒤 2021년 12월 피해자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27) 사건이 대표적이다. 주소를 제공한 흥신소업자 윤 아무개 씨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스토킹과 예비 살인을 도운 사례도 있다. 지난 7월 30대 남성 B 씨는 흥신소에 “수년 동안 좋아하던 여성의 주소와 연락처 등을 알아봐 달라”고 의뢰했다. 의뢰를 받은 흥신소는 해당 여성을 미행하고 사진을 찍어 B 씨에게 전송했다. 사실 B 씨는 채팅방에 살해 계획을 올린 뒤 흉기 등 범행도구까지 구매한 상태였다. 흥신소가 예비 살인자에게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건넨 셈이다. B 씨의 의뢰를 받은 흥신소업자는 구속 기소됐다.
초등학생도 흥신소의 고객이 된다.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폭력 증거를 수집해 달라거나 등하굣길 경호를 의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면 수업이 늘어난 시점부터 ‘학폭 전문’ 흥신소에 상담 요청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설 업소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미행하거나 친하게 지내라고 강요하는 것 자체로 위법 소지가 있다.
연예인 사생팬도 흥신소를 이용했다. 특정 남자 가수의 열성 팬이던 30대 여성 C 씨는 해당 가수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흥신소업자에게 뒷조사를 의뢰했다. 9월 22일 C 씨는 흥신소업자로부터 가수의 위치정보를 수집하고 차량정보를 제공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걸 어떻게 알지?’ 개인정보 수집의 비밀
그렇다면 흥신소는 어떻게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일까. 기자가 직접 A 흥신소에 연락해봤다. 사전에 ‘전 여자친구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고 싶다’는 의뢰 내용을 설정했다.
A 흥신소 김 아무개 상담실장은 “이름과 생년월일만 알면 주소와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요시간은 빠르면 당일 늦으면 다음 날까지였고, 비용은 총 170만 원을 제시했다. 세부 비용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조회 비용 50만 원, 전화번호 60만 원, 주소 60만 원 등이다.
궁금했던 정보 수집 방법은 흥신소 측에서 대뜸 알려주기 시작했다. 김 실장은 “이름과 생년월일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조회한 뒤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 등 배달앱이나 택배를 이용한 내역을 통해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다”고 말했다. “요즘엔 안심번호를 많이 쓰지 않냐”라는 질문에는 “전산상으로 다 나오게 되어 있다”고 답했다. 집 주소는 휴대전화 번호를 통해 알아낸다고 밝혔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조회하는 것이 불법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실장은 “불법은 맞다. 개인정보 수집이 불법은 맞는데 고객님이 절대 흥신소 통해서 알아보셨다고 말씀 안 하시면 된다”고 답했다.
개인정보를 건네받는 루트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탐정사무소 통해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조회할 것이다. 주민등록번호 전체를 알면 앞서 말한 배달앱 이용내역 통해서 통신사와 휴대전화 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며 “공무원 중에도 아는 사람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외에도 흥신소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잠복과 미행을 사용한다. 스마트폰을 차량에 설치해두고 오랜 기간 의뢰 대상들을 쫓아다니며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민사소송법에서 증거 능력 인정이나 증거 채택은 법원의 재량에 속하는 만큼, 흥신소가 촬영한 사진과 영상도 증거로 활용될 수는 있다.
일명 ‘데이터 브로커’들로부터 개인정보를 구매하는 방법도 있다. 엄연한 불법으로 공공기관으로부터 정보를 건네받은 브로커들이 이를 흥신소에 다시 판매하는 것이다. 이석준 사건의 경우 3명의 브로커를 거쳐 피해자의 정보가 넘어갔다.
#관리감독 부재 속 표류하는 탐정법
2020년 8월 개정 신용정보법이 시행되면서 신용정보회사가 아니더라도 특정인의 소재나 연락처를 알아내는 일, 이른바 '탐정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민간조사사(PIA)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에 따르면 2023년 10월 19일 현재 민간조사사 자격 취득자는 9077명이다. 민간조사사 자격 없이 활동하는 탐정까지 합치면 1만 명을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탐정업을 관리하는 후속 법안은 없다. 누구나 탐정이 될 수 있지만 탐정의 업무 범위나 권한 등에 관한 규정은 없다. 흥신소는 사실 확인에 필요한 자료 요청이나 열람 권한이 없어 업무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이 때문에 일부는 무리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 불법을 저지르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관리·감독 부재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탐정업을 더 구체적으로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무관청을 둬 면허나 자격제도를 운용하고 불법행위를 단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탐정업을 제도권에 편입하려는 입법 시도는 17대 국회 때부터 꾸준히 있었다. 2023년 7월 4일 경찰 출신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인 탐정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은 ‘공인탐정’을 신설하고 시험제도를 도입해 탐정 희망자의 자질을 검증하고 결격사유를 따지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경찰 출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20년 대표발의한 ‘탐정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탐정업법은 2005년 17대 국회부터 2023년 21대 국회까지 벌써 18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OECD 국가들은 국가공인 탐정 제도를 운영 중이다.
여야의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탐정업법이 국회에 표류하는 원인으로는 경찰청과 법무부의 관할권 다툼이 있다. 서로 탐정업을 “우리 소관”이라며 다투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탐정연합회 정수상 회장은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경찰청이 탐정업 관할을 맡는다. 제도권 안의 탐정들은 변호사와 주로 협업하는데 법무부와 경찰청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경찰청이 주무부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법무부는 경찰관 출신이 많은 탐정업의 유착 가능성을 이유로 탐정업의 관할권을 주장한다. 경찰청과 법무부의 갈등과 탐정업법 표류로 피해를 보는 것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양심적인 탐정사무소들이다.
앞서의 정수상 회장은 “탐정업법 통과 없이는 흥신소의 불법 행위가 계속 횡행할 것이다. 양심적인 탐정들은 영업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탐정은 공권력 사각지대에서 역할을 하는데, 이를테면 스토킹처벌법과 같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사전 대응이 필요한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탐정업계는 시민들의 억울함과 답답함을 풀어주기 위해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의 변화를 담은 탐정업법이 조속히 처리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