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배후 유상원이 “20억 걸려있다” 대가 언급한 듯…간접적인 지시도 위증교사 성립 가능
강남 납치 살해 사건은 코인에서 비롯돼 강력 범죄까지 일으켜 충격을 준 사건이다. 이경우, 황대한, 연지호는 2023년 3월 29일 서울 강남 역삼동에서 피해자 A 씨를 납치한 뒤 이튿날 오전 살해하고 대전 대청댐 인근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로 5월에 구속기소 됐다. 수사 결과 이경우는 대학 친구인 황대한과 그의 배달대행업체 직원 연지호와 역할을 나눠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과 함께 구속기소 된 유상원, 황은희 부부는 가상자산(코인) 투자에 실패한 후 A 씨와 갈등을 빚어 왔다. 이들은 이경우에게 범행 자금 7000만 원을 건네 A 씨를 납치해 코인을 빼앗고 살해하기로 했다. 결국 이경우, 황대한, 연지호 3인조는 3월 29일 자정 직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A 씨를 차로 납치한 뒤 다음 날 오전 살해하고 대전 대청댐 인근 야산에 암매장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경우는 재판에서 “강도 범행은 인정하지만, 살인을 모의하지 않았고, 살인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었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황대한, 연지호도 ‘이경우 지시에 따라 피해자를 납치하고 마취제를 주사했을 뿐, 처음부터 살해할 생각이 아니었다’고 주장 중이다.
검찰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 사건 후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등 강력범죄가 창궐하면서 이 사건이 강력범죄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은 “강도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으로 피고인들에게 선처의 여지가 전혀 없고 자신들의 극악무도한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강남 납치 살해 사건의 1심 재판은 법원의 판결만 앞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최근 이 사건을 잘 아는 관계자 B 씨는 ‘이 사건을 두고 추가 기소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B 씨는 최근 재판에 방청 갔는데 검찰이 이경우를 증인으로 세웠고, 이 와중에 중요한 내용이 나왔다고 얘기했다. 유상원이 이경우에게 위증을 제안했다는 내용이다.
이런 주장은 9월 25일 재판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이경우에게 ‘증인은 지난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했다고 주장하는데 왜 거짓으로 증언했는지 말해보라’고 말했다. 지난 공판에서 이경우는 ‘황은희가 범행을 지시한 게 아니다.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등의 얘기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이경우는 ‘6월 첫 심리부터 황은희 등이 사건과 관계없다고 진술하진 않았는데, 준비기일 이후 유상원, 황은희 측과 완벽한 소통은 아니지만 서로 소통하게 됐다’고 말했다.
검찰 측이 ‘어떤 내용의 소통이냐’고 묻자, 이경우는 ‘유상원이 황은희는 무조건 빼야 된다. 그래야 나가서 일을 볼 수 있다. 일을 본다는 의미는 황은희가 나가면 나도 구해줄 수 있고, 금전적으로도 지원해 준다는 얘기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경우는 ‘내가 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20억 원이 걸려 있다’고 했다. 이어 ‘20억이 걸려 있다 말의 의미는 부부에 대한 혐의를 감출 수 있는 증언을 하면 금전적인 대가를 주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증언했다.
검찰 측은 ‘공범끼리는 버스 안에서도 거리를 떨어트리고, 대화하면 교도관 등이 제지하는데 어떻게 소통했냐’고 묻자, 이경우는 ‘완벽한 소통은 아니지만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버스에서 손가락을 크게 피면서 얘기하기도 했다. 교도관이 제지해도 잠깐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다. 특히 출정 대기실에 들어가면서 이동하기 전 짧은 시간에 얘기할 수 있었다”면서 “유상원이 ‘나야 어쩔 수 없겠지만, 황 대표는 빠져나가야 한다. 그럼, 가족이든 뭐든 다 책임져 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재판 진행 과정에 밝은 C 씨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C 씨는 “교도관이 제지하기 때문에 공범끼리 대화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험 보는데 감독관 있다고 커닝이 불가능한 게 아닌 것처럼, 한마디씩 던지고 가거나 잠시 교도관이 눈을 뗐을 때 짧게나마 대화 나누는 게 가능하다”면서 “또한 이 방법 외에도 수감기관에서 소지(수감기관 내 잡무를 보는 수형자)가 대화를 전달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유상원이 황은희에 대해 어떻게 진술할지 구체적으로 지시까지 해줬냐’고 묻자, 이경우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알려주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 경우가 갑작스레 이런 고백을 하게 된 배경으로 C 씨는 ‘누가 주범인지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C 씨는 “만약 위 얘기가 사실이어서 위증을 통해 황은희가 빠져나갈 경우 이경우가 주범이 돼 가장 큰 형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에 위증교사가 인정돼 위증죄를 받더라도 증언을 뒤집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강용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이경우 말이 사실이라면) 위증교사로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우리 법원은 장물업자가 상습절도자에게 드라이버와 자금을 건네면서 ‘도망다니려면 돈도 필요할 텐데 열심히 일을 하라’고 말을 했다면 특수절도 교사가 성립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면서 “위증할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거나 위증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증 교사 성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 변호사는 “검찰은 이 사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보고 있다. 언론 주목을 받고 있는 사안이며, 유상원이 아직까지도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으므로 위증교사까지 추가로 수사하여 기소할 것으로 본다. 위증 교사가 처벌받기 위해서는 위증죄가 먼저 처벌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경우 수사가 먼저 이뤄질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다만 살인 교사죄가 사형으로 선고된다면 사형 이상 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 기소의 실익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