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청장 보선·여당 혁신위 등 주요 일정에 밀려…파행 속에서도 김승희 비서관 학폭 폭로 등 성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21대 마지막 국감은 시작부터 정쟁에 휩싸였다. 첫날인 10월 10일 국방위원회에선 야당 의원들이 신원식 국방부 장관 임명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을 노트북에 내걸었다. 이에 반발한 여당 의원들이 국감장 입장을 거부하면서 회의는 파행했다.
10일 11일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감은 10분 만에 중단됐다. 야당 간사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업무 보고를 (먼저) 받고 하라”며 반대했다. 여야가 고성을 주고받으면서 감사는 멈췄다. 감사가 재개됐지만 여야 의원들은 감사위원 배석 문제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이날 국감에 참석한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은 질의를 받지 못했다.
10월 23일 충청남도 계룡대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 국감에서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두고 여야가 대립했다. 여당은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거론하며 흉상 이전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흉상을 둘러싼 이념 논쟁을 중단하고 원상복구해야 한다고 맞섰다.
기존에 제기된 문제들을 반복하며 정쟁으로 활용하는 일도 여전했다. 10월 23일 국토교통위원회 경기도 국감에선 여당 의원들이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새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 여당 의원들의 질문을 받은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증인·참고인 채택을 둘러싼 힘겨루기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감이 정쟁에 함몰됐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10월 24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에서 피켓, 야유, 고성 등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매년 말하지만, 국감에 대해 좋게 평가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국감 무용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며 “(국감에서)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매번 견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은 듯하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10월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감사의 성과가 있었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없었다’는 49%, ‘있었다’는 15%였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국감에서도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 여론은 20%를 밑돌았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한국갤럽은 국정감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나 기대 수준이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10월 24~26일 실시,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포인트).
#흙 속에도 진주는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호평을 받은 의원들이 있었다. 10월 10일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부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노선 경제성 비교 B/C(비용 대비 편익) 분석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질타, 눈길을 모았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2024년부터 보상에 들어가는 토지 소유주 가운데 김건희 여사 친척들이 포함돼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관련기사 ‘1타 강사’에서 ‘모르쇠’로 전략 수정? 양평 고속도로 국감 난타전 앞과 뒤).
10월 20일 국회 교육위원회 경기도교육청 감사에서는 김영호 민주당 의원이 김승희 전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를 폭로했다. 김 의원은 김 전 비서관의 초등학교 3학년생 자녀가 2학년 후배를 리코더와 주먹 등으로 폭행했고, 전치 9주의 상해를 입혔다고 밝혀 파문을 낳았다.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지점들이 드러났다. 김 의원에 따르면 학교 측은 사건이 터진 지 두 달이 지나서야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었다고 한다. 가해 학생에게는 학급교체 처분만 내려졌다. 김 전 비서관 아내가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릴 무렵 카카오톡 프로필을 윤 대통령과 찍은 사진으로 바꾼 것도 도마에 올랐다. 김 의원은 김 전 비서관 부부가 윤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해 자녀의 학폭 문제를 무마하려 했던 것은 아니냐고 주장했다.
10월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서는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연계사업’ 필요성에 대해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사업 내용을 보면 민·관은 중증장애인을 ‘동료지원가’로 채용한다. 동료지원가로 채용된 중증장애인은 다른 중증장애인의 취업을 연계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고용노동부는 예산 중복 등을 근거로 이 사업을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날 동료지원가인 중증장애인 문석영 씨가 참고인으로 나와 고용노동부의 사업 폐지 방침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의 말을 청취한 여야 의원들은 ‘상임위에서 사업을 살리겠다’고 입을 모았다.
#국감장보다는 지역구 앞으로
이번 국감이 유독 존재감을 갖지 못했던 이유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구성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들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코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 준비도 국감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배경으로 꼽힌다.
여야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오전에 국감장을 지켰다가 오후가 되면 지역구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보좌진 일부가 아예 지역구에 내려가 상주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민주당은 공천 평가 기준에 국감 실적을 배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현역 의원 평가 기간을 9월 30일까지로 확정했다. 10월 국감 실적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 셈이다. 이에 대해 ‘야당의 시간’이자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감을 민주당이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좌진들은 국감 준비 기간이 짧다고 토로했다. 10월에 국감이 잡혀 있어 8월 여름휴가가 끝난 다음인 9월 한 달 동안 준비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약 790개 피감기관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보좌진들은 촉박한 시간 때문에 날카로운 질의를 준비하기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의원들의 질문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국감장에서 의원이 질의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3분이다. 여기엔 증인과 참고인 답변 시간도 포함된다. 몇몇 의원들은 짧은 시간 안에 주목받기 위해 호통과 고성을 지르고 눈길을 끄는 자극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맹탕 국감이란 비판은 타당하다”며 “일부 의원실 보좌진들은 국감 기간에 지역구로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한 달 동안 수백 개의 피감기관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보좌진들 대부분 (9~10월에) 의원회관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번 국감에서는 유독 피감기관에서 자료 제출을 미루거나 잘못 주는 경우도 많았다”며 “상시국감이나 국감 시간을 다른 달로 앞당겨서 자료를 확보할 시간을 마련하는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율 교수는 “상시국감이나 국감 일정을 앞당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국회의원의 인적 구성이 바뀌는 것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회로 들어와서 다양한 피감기관에 대해 전문적인 감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