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싱가포르-태국과 C조 편성…벤투호와 달리 약속된 플레이보다 자율성 부여에 초점
#3승 3무 2패, 분위기 반전한 대표팀
대표팀을 향한 시선은 그간 부정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지난 3월부터 첫 일정에 돌입한 클린스만호는 첫 5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대부분 홈에서 평가전이 열렸고 엘살바도르, 웨일스 등 비교적 강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였다.
5경기 동안 경기당 1골에 못 미치는 빈곤한 득점력도 문제로 지적됐다. 부진한 경기력과 결과를 보이자 경기장 밖의 문제도 불거졌다. 부임 초기 '국내 거주'라는 계약 조건이 전해졌으나 지속되는 감독의 '외도'에 비판이 잇달았다.
지난 9월 A매치 기간, 두 번째 경기였던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야 클린스만 감독은 첫 승리를 신고했다. 전반 조규성의 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다. 이후 약 1개월 만에 열린 A매치에서 대표팀은 튀니지, 베트남을 상대로 2승을 추가하며 3연승을 내달렸다. 이강인의 A매치 데뷔골이 터지는 등 각각 4-0, 6-0 스코어가 나오는 다득점 경기를 펼쳤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상윤 MBC 스포츠해설위원은 최근 대표팀 행보에 대해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비판이 강해지고 있는 시점에 연승을 하면서 한숨 돌렸다"면서도 "연승에 대해서 무조건 좋은 평가만 내릴 수는 없다. 튀니지는 긴 이동 시간, 시차 등으로 컨디션이 떨어진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에 우리 득점이 몰렸다. 베트남은 몇 수 아래 상대"라고 짚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승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는 점이 중요하며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싱가포르, 태국 만나는 월드컵 예선
2026년 개최가 예정된 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48국 체제로 본선이 진행된다. 아시아 대륙에 배정된 본선 티켓은 기존 4.5장에서 8.5장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1, 2, 3차로 예선이 나뉘어 치러지고 아시아 강국인 한국은 2차부터 참가하는 형태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과 싱가포르, 태국을 만난 2차 예선에서는 2위 내에 들면 3차 예선으로 진출할 수 있다.
대표팀은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어왔다. 3차 예선에서는 종종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약소국과 만나는 2차 예선은 비교적 손쉽게 통과해왔다. 3차 예선 막판 경질됐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도 2차 예선은 8경기 8승 무실점으로 통과한 바 있다. 이번 예선 또한 무난하게 치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오랜 기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가 주도의 축구 진흥책을 펼쳤으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 중국 유일의 유럽 빅리거였던 우레이는 결국 롱런하지 못하고 중국 무대로 복귀 이후 두 번째 시즌을 치르는 중이다. 한때 대표팀 엔트리를 채웠던 귀화 선수들은 거액의 급여를 챙겨 줄 소속 구단이 무너지자 대표팀에서 빠졌다. 최근 1~2년 사이 자국 선수 위주로 분위기를 다지려 하고 있지만 시리아,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에서 패하는 등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의 월드컵 본선 티켓 숫자가 늘어났음에도 중국의 목표달성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베트남에 밀렸던 태국은 다시 동남아 최강국 지위를 되찾고 있다. 최근 두 번의 동남아 선수권(미쓰비시컵)에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누르고 연속 우승을 차지해 구겨졌던 자존심을 폈다. 그러나 태국이 동남아 밖의 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이들은 지난 9월 떠난 유럽 원정에서 약체 조지아와 에스토니아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다. 특히 조지아전에서는 0-8 대패를 당하며 높은 벽을 실감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도 축구 변방으로 간주된다. 피파랭킹 155위로 아시아 내 31위다. 2차 예선부터 합류한 한국, 중국, 태국과 달리 싱가포르는 1차 예선을 치렀다. 세계 최약체 괌(피파랭킹 202위)을 상대로 1, 2차전 합계 3-1 승리를 거뒀다. 전력 면에서 우리 대표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22승 3무 2패로 대표팀이 압도적 전적을 기록 중이고 1975년 이후로는 9연승을 달리고 있다.
원정 거리가 길어 까다로운 중동 국가를 조추첨에서 피했다는 점도 대표팀엔 긍정적이다. 비록 쉬운 상대를 만났지만 신중하게 대할 필요는 있다. 11월 싱가포르전과 중국전을 치르고 이어지는 대표팀의 일정은 2024년 1월 아시안컵이다. 우승을 노리는 대표팀으로선 11월 월드컵 예선 일정에서 최근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
#클린스만 체제 8개월, 대표팀은 무엇이 달라졌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표팀은 12년 만의 월드컵 원정 16강이라는 성과를 갖고 돌아왔다. 16강이라는 결과를 넘어 조별리그에서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오히려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이는 등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월드컵 직후 사령탑이 교체됐고 짧은 기간이지만 대표팀 구성과 전술 색채에도 일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손흥민의 포지션 이동이다. 공격수 출신 클린스만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공격 축구를 선호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주로 왼쪽 측면에 배치됐던 손흥민은 최근 지속적으로 중앙 공격수 자리에 배치되고 있다. 이전에 비해 더욱 직접적으로 골을 노릴 수 있는 위치다. 공교롭게도 새 사령탑이 부임한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에서도 손흥민은 중앙에 기용돼 골감각을 이어가고 있다.
손흥민과 호흡을 맞출 또 다른 중앙 공격수로는 조규성이 중용되고 있다. 조규성은 월드컵 첫 두 경기,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등 백업 자원으로 분류됐으나 당시 조별리그 가나전 멀티골을 기점으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클린스만 감독이 첫 승을 거둔 사우디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기대에 부응했다.
이강인도 클린스만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다. 월드컵 이후 첫 경기와 부상을 당해 소집되지 않은 기간을 제외하면 모든 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최근 2경기에선 A매치 데뷔골 포함, 3골을 기록하며 신바람을 내고 있다. 이외에도 벤투 감독 시절 기회가 적었던 설영우, 이기제, 홍현석 등이 클린스만 감독의 선택을 받고 있다.
떠오른 선수가 있다면 지는 선수도 있다. 월드컵 당시 핵심 자원으로서 팀 내 최고참 격이었던 김영권과 정우영은 입지를 잃었다. 대표팀에 선발은 되지만 벤치에 앉는 시간이 길어진 김영권과 달리 정우영은 첫 소집 이후 클린스만 감독의 부름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감독의 세대교체 의도로 해석된다. 이들의 자리에는 정승현과 박용우가 중용을 받는다.
선수 기용이 달라진 만큼 대표팀의 경기 스타일에도 변화가 있었다. 점유율을 높이는 축구를 원했던 벤투 감독은 경기장 내 약속된 플레이에 집중했다. 현재 대표팀은 선수들이 비교적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선수시절 감각적 플레이를 선보였던 클린스만 감독의 색채로 해석된다.
'공격축구'에 대한 뜻을 취임 초기부터 전했던 그는 손흥민의 전진 배치, 공격수 숫자 확대 등으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튀니지전에서 이강인의 요청으로 포지션 변경이 있었다고 하는데, 선수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며 "지금 대표팀 선수들은 내부 분위기나 상황에 만족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선수들이 좋은 기량을 갖고 있고 컨디션도 좋다. 지금 대표팀을 '황금세대'라 부르고 싶다. 선배들이 못 이룬 꿈을 이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