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은 아들 위해 ‘박카스’ 챙기는 모정?
▲ 강신호 회장. | ||
동아쏘시오그룹의 간판 계열사인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의 차남인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가 7월 들어 동아제약 주식 15만 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여 그의 동아제약 지분을 3.72%로 올려놨다. 이는 부친인 강 회장(5.2%) 다음가는 2대 주주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 2004년 벌어졌던 부자 간 지분매입경쟁이 다시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강문석 대표는 지난 2003년 1월 당시 동아제약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동아쏘시오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받은 것처럼 보였다. 사장 취임 당시 1%대의 지분을 갖고 있던 강 대표는 사장 취임 이후 지분을 크게 늘려 2004년 7월에는 2.83%까지 높였다. 그러자 부친인 강 회장도 3.85%였던 자신의 지분을 7월부터 사들이기 시작해 그해 말 5.03%까지 올려놨다. 그리고 그해 12월 초 돌연 강문석 사장이 동아제약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명분은 부회장 승진. 그리고 전격적으로 강 회장의 넷째 아들인 강정석 전무가 영업본부장으로 전진배치됐다.
후계자로 여겨졌던 2세가 갑자기 실권이 없는 명예직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후계자가 떠오르자 재계에선 ‘부자 간의 갈등설’이 떠돌았다.
이는 강신호 회장의 복잡한 집안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강 회장은 슬하에 4남4녀가 있다. 이 중 큰아들, 둘째 아들과 딸 셋은 어머니가 같고 셋째 아들과 넷째 아들, 막내딸은 각각 어머니가 다르다. 큰아들 의석 씨는 미미한 지분 외에는 대외활동 흔적이 없다. 둘째 아들이 지분경쟁을 하고 있는 문석 씨이고 셋째가 광고대행사 선연 사장 우석 씨, 넷째가 정석 씨다.
동아 쪽 사람들에게 강 회장의 본부인 박 아무개 씨와 셋째-넷째 아들의 생모인 최 아무개 씨의 존재는 ‘알려진 비밀’이었다. 이들은 박 씨가 호적상 ‘본부인’ 위치를 지키고 있되 강 회장과의 ‘생활’은 최 씨가 함께하는 식으로 ‘공존’해왔다. 회사의 각종 행사에도 강 회장은 최 씨를 동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공존은 깨졌다. 지난해 5월 박 씨가 강 회장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낸 것이다. 이유는 ‘남편의 외도’. 강 회장보다 한 살 어린 박 씨도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박 씨의 황혼 이혼 소송 결심의 시기가 아들 강 대표가 동아제약 경영에서 ‘쫓겨난’ 직후라는 점에서 강 회장 집안의 ‘공존의 틀’이 깨진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 황혼 이혼 건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재산분할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로 알려져 있다.
이혼 소송 제기 직후인 지난해 6월 강문석 대표는 와인과 위스키를 수입해 파는 수석무역으로 어머니 박 씨와 경영일선에 롤백했다. 이어 올 들어 동아제약 지분매입에 속도를 내자 부자 간 경영권 대립설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박 씨는 지난해 6월 강 대표가 수석무역의 대표이사직에 오를 때 처음으로 등기부에 이름을 올렸다. 재미있는 점은 이 회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던 강신호 회장이 2005년 3월 수석무역 이사로 올랐다가 8개월 만인 그해 11월 이사직을 사임한 점이다.
왜 강 회장은 잠시나마 수석무역에 이름을 올렸던 것일까. 그리고 3개월 만에 본부인 박 씨가 아들을 대동하고 등기이사직에 이름을 올린 까닭은 무엇일까.
이런 변화가 꿈틀대던 2005년 3월은 강문석 대표가 동아제약 이사직에서 정식으로 쫓겨나던 시점이었다. 2004년 12월 동아제약 대표이사직에서 급작스럽게 물러난 강 대표는 2005년 3월 동아제약 등기이사직에서도 이름이 삭제됐다.
결국 2005년 6월 어머니 박 씨와 강문석 대표의 이사직-대표이사직 등재는 박 씨 쪽에서 수석무역의 경영권을 강신호 회장으로부터 넘겨받겠다는 의사표시였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는 그해 12월 강 회장의 등기이사직 사임으로 다시 한번 확인된다.
강 대표는 서울대 산업공학과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동년배의 전문경영인과 학벌을 비교했을 때도 결코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강 회장은 그를 ‘실적 부진’을 이유로 사실상 해임했고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막내아들인 정석 씨를 전진배치했다.
강 회장은 정석 씨의 친형인 셋째 아들 우석 씨도 동아제약의 경영 일선에 전진배치했었다. 98년 3월 등기이사직에 올랐던 그는 2000년 3월 물러났다. 당시 그는 동아제약의 중국 공장과 라미화장품 등의 경영책임을 맡았는데 성과가 좋지 않았다.
▲ 강문석 대표. 연합뉴스 | ||
하지만 지난해부터 ‘박 씨-강문석’ 쪽과 ‘강신호-강우석-강정석’ 쪽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상황은 양가의 총력전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평소 강 회장은 ‘능력이 없으면 자식에게도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강문석 대표를 회사 경영에서 제외시킬 때도 같은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때문에 아들 중 유일하게 동아제약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강정석 전무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강 회장이 그에게 맡긴 특명은 박카스를 살려내라는 것. 박카스는 슈퍼에서도 파는 비타500의 공세에 밀려 아슬아슬하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강 전무는 올 초 박카스 광고를 “제일 잘하는 곳에 맡기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친형인 강우석 사장의 선연에 무조건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국 박카스 광고는 외국계 광고대행사로 넘어갔다. 강 전무도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 배수진을 친 것이다.
현재 강정석 전무 측은 부친인 강신호 회장의 지분을 포함해 모두 12.9% 정도의 동아제약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문석 대표 측은 지난 3월 동아제약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유충식 부회장의 지분 2.6%를 포함해 7.3%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다.
동아제약 쪽에선 오너들의 자사주 매입이 지분 매입 경쟁이 아니라 주가가 너무 떨어져 주가안정 차원에 사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동아제약의 경영권을 강 회장이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강 대표의 지분매입에 대한 대응카드로 해석되고 있다.
동아제약 부자 간 지분매입 경쟁의 향방은 강정석 전무나 강우석 사장 형제가 직접 자신 명의의 지분을 늘리지 않는 한 박 씨가 열쇠를 쥐고 있다. 박 씨가 강 회장과의 이혼 소송에서 어느 정도의 위자료에 합의하느냐에 따라 강 회장의 재산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코스닥 벤처재벌 중에는 젊은 오너의 이혼에 따라 주식을 재산분할 받아 대주주로 등극한 30대 이혼녀들이 제법 있다. 거래소 시장에도 이혼녀 재벌이 등장할지 강신호 회장의 복심은 어디로 향할지 주목받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