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신드롬 이어 선보인 첫 누아르…조직 보스 연기로 ‘남성 로망’까지 정조준
‘남자의 장르’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지는 모양새다. 작품 공개 전후로 가장 달라진 점을 꼽으라는 말에 갑자기 늘어난 남성 팬 이야기가 먼저 나온 것을 보면. 실제로도 주변 남성 지인들로부터도 이전엔 없었던 매회 감상을 받았다는 배우 위하준(32)은 그의 인생 첫 누아르 작품,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에서 얻은 설렘과 흥분을 종영 후인 지금까지도 놓지 못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처음 접한 누아르다 보니 너무 설레더라고요(웃음). 물론 부담도 있었는데, 제가 맡은 정기철이 조직을 이끄는 보스의 역할이지만 실제 현장에선 제가 제일 막내였거든요(웃음). 또 제가 ‘작은 아씨들’을 막 끝내고 촬영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 짧은 시간에 증량을 해야 했어요. 엄청 먹었죠(웃음). 평소 체중에서 5kg을 불려서 75kg 정도로 늘렸고 피부 톤도 화면에서 보시는 것보다 훨씬 어둡게, 주근깨 같은 특수 분장도 넣어서 조직 보스로서 중압감 그런 걸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화면엔 덜 보인 것 같아서 좀 아쉽더라고요(웃음).”
‘최악의 악’에서 위하준은 한국, 중국, 일본의 트라이앵글 마약 카르텔을 이끄는 폭력조직 강남연합의 보스 정기철 역으로 분했다. 고등학생 시절, 가정폭력범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의 사건에 휘말린 뒤 밑바닥부터 아득바득 기어 올라온 기철은 10여 년 만에 같은 고등학교 출신 동료들과 함께 강남 일대를 주름잡는 조직의 보스가 된다. 그런 그의 인생에 있어 몇 안 되는 회한이 있다면 자신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게 된 절친 권태호(정재광 분)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이 가장 순수했던 시간을 함께 보냈던 첫사랑 누나 유의정(임세미 분)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 두 약점을 노린 경찰 박준모(지창욱 분)는 강남연합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권태호의 사촌동생 권승호로 가장해 조직에 잠입하고, 남편인 준모를 돕기 위해 이혼녀를 가장한 기철의 첫사랑이자 또 다른 경찰 의정도 그의 애정을 이용해 접근한다. 결국 삼각 아닌 삼각관계에 놓인 기철은 준모를 깊이 신뢰하고 의정에게 빠져들게 되면서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기철이도 처음엔 준모를 100% 다 신뢰하지 못했지만 죽은 태호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크다 보니 받아주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물론 준모의 전략으로 만들어진 상황이긴 해도 계속 위기를 겪을 때마다 준모가 구해주는 일이 반복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신뢰를 안 할 수가 없게 된 거죠. 그런데 심지어 그 관계에 의정이까지 포함된 거예요. 의정이가 ‘승호한테 잘 해줘’라고 하는데 좋아하는 여자가 그렇게 한마디 해 주면 왠지 괜히 한 번 더 보게 되잖아요. ‘이리 와 봐!’ 하고 불러놓고는 ‘의정이 누나랑 친했어?’하면서 어깨도 한 번 툭툭 쳐주고(웃음).”
기철이 준모와 의정에게 의지할수록 이제까지 그를 지지해 왔던 강남연합의 식구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 서운함과 억울함이 폭발하면서 조직은 내부에서부터 와해하게 된다. 특히 기철의 오른팔이자 가장 먼저 준모와 의정의 수상함을 눈치챘던 정배(임성재 분)가 기철과 대립하며 분노를 터뜨리는 신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스토리를 알면서도 정배의 편을 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도 했다. 기철을 연기한 위하준 역시 “저도 그 장면을 볼 땐 ‘정배 말이 맞다’하면서 봤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연기할 땐 오로지 기철이의 눈으로만 보고 연기했지만 시청자 입장으로 봤을 땐 저도 기철이가 너무 답답한 거예요. 오히려 정배가 다 맞는 말만 하고 있고(웃음). 다만 기철이 입장에선 그동안 우리 식구들, 동생들을 어떻게 해서든 먹여 살려 보겠다고 혼자 부딪치고 키워왔는데 동생들의 배신으로 엄청난 상처를 입고 굉장히 크게 무너진 거죠. 저는 기철이가 의정이든 준모든 누굴 만나기 전에도 이 마약 사업을 정리하려고 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사람이 가장 크게 변화하려면 사랑이 가장 큰 이유가 됐을 테죠. 다만 기철이가 사랑을 선택해서 그냥 의리없이 동료들을 내치려는 게 아니고요(웃음), 물론 그들은 범죄자고 나쁜 놈들이지만 그들의 남은 인생도 사랑으로 변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싶어요.”
강남연합 식구들의 터지는 속을 뒤로하고 의정과 사랑을 키워가던 기철의 처절한 키스 신은 ‘최악의 악’에서 ‘최고로 도파민 터지는 신’이라는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이슈몰이를 하기도 했다. 여자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남자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서로의 동상이몽 속 이뤄진 입맞춤은 당사자인 위하준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생애 첫 키스 신이 또 하나의 ‘사약 로맨스(이뤄지지 않는 로맨스)’ 명장면을 만들었다며 씁쓸한 웃음도 뒤따랐다.
“거의 10년 동안 연기 생활하면서 정말 처음 해 보는 키스 신이었거든요. 언젠가 키스 신을 찍는다면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에서, 로맨틱하게 찍고 싶었는데 해선 안 된 일을 한 거잖아요(웃음). 아름답지 않고 불편한 키스 신인 거죠(웃음). 물론 기철이의 입장에선 아름답고 진실한 신이었겠지만요. 촬영할 때 많이 떨리긴 했는데 (임)세미 누나와 워낙 편한 사이여서 걱정한 것보다 훨씬 잘 나왔던 것 같아요. 오히려 키스 신 자체보단 그 앞의 대사와 감정이 더 중요해서 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나요.”
본의 아니게 아내를 뺏겨야 하는 남자가 된 박준모 역의 지창욱에겐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지창욱 역시 첫 누아르에 도전하며 위하준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는데 두 배우 모두 ‘처음’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친해지고 익숙해졌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역할 상 액션 신에서 대부분 준모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위하준은 직접 눈앞에서 본 지창욱의 액션에 대한 감상이 어떠냐는 질문에 단 한 마디, “기가 막혔다”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
“(지)창욱이 형이 의외로 격투기 액션을 너무 싫어하고, 반대로 귀엽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데 막상 액션 신에 들어가면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진짜로 매순간 기가 막혔어요. 보면서 계속 ‘어떻게 그렇게 잘하시지?’하면서 감탄했다니까요. 그리고 저를 많이 귀여워 해주셨는데, 저를 귀여워해주시는 형은 창욱이 형이 처음이었어요(웃음). 제가 자꾸 귀엽다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나중에 여쭤보고 싶어요, 제가 왜 귀여운지(웃음).”
위하준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기, 전 세계에서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해외에까지 제대로 그의 얼굴을 각인시켰다. 시즌2 출연도 확정되면서 ‘오징어게임’과 이번 ‘최악의 악’, 그리고 다시 ‘오징어게임 시즌2’까지 다시 한 번 OTT 대작으로 배우 입지의 쐐기 박기에 나선다. 누군가는 위하준에게 대작에 출연했으니 그 전후로 자신의 내면이든, 밖에서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든 어느 하나는 확연히 달라지지 않았냐는 다분히 악의가 섞인 질문을 던질 때도 있었다. 이에 대한 그의 명쾌한 대답은 “위하준은 여전히 그냥 위하준”이라는 것이었다.
“‘오징어게임’으로 해외에서도 저를 알아봐 주시고, 좋아해 주신다는 건 정말 엄청난 복인 것 같아요. 지금도 제가 어떻게 이런 작품을 할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웃음). 다만 ‘오징어게임’을 전후로 제가 뭔가 확 바뀌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뭔가 변한 게 있다면 너무 스스로에 자신이 없고 예민하게 완벽주의를 추구했던 것에서 조금씩 내려놓는 방법을 배웠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최악의 악’에서도 창욱이 형이나 다른 분들의 긍정적인 힘을 받으면서 더 많이 내려놓고, 더 나답게 현장에 임할 수 있었거든요. 현장에서 저는 늘 걱정이 많고 불안해해서 혼자 생각에 빠지는 일이 많았는데 창욱이 형은 ‘뭐 별 거 있어? 긍정적으로 밝게 해! 그냥 하면 되지!’라고 말해줘요. 그 에너지를 받아서 저도 조금씩 ‘그냥 해, 괜찮아, 쫄지 마!’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정도로 변할 수 있었고요. 작품마다 그런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나오면서 다음 작품에서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