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한 가족애 다뤄 할리우드 히어로물과 차별화…최종회 시즌2 암시, 가능성 충분
‘무빙’은 강풀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초능력을 지닌 부모와 그 능력을 물려받은 자녀들이 정체를 감추고 살아가다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부모는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대사가 이 작품을 상징한다. 초능력이라는 판타지 설정을 내세우지만 이야기의 근간은 ‘가족애’에 두면서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물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른바 ‘한국형 히어로물’이라는 평가도 따른다.
#국내서 주춤하던 디즈니+, ‘무빙’으로 기사회생
‘무빙’은 한때 국내 철수설이 돌던 OTT 플랫폼 디즈니+에 새로운 활로를 찾게 해준 결정적인 작품이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숱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OTT 플랫폼이지만 국내서는 오리지널 K콘텐츠의 잇단 부진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다른 플랫폼과 비교해 차별화한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 혹은 축소한다는 이야기가 관련 업계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무빙’은 총 제작비가 500억 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다. 총 20부작인 만큼 제작비 액수가 늘어났지만 어쨌든 국내 드라마로는 최대 제작비를 쏟아 부은 탓에 ‘무빙’의 흥행 결과에 따라 디즈니+의 상황도 달라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무빙’은 한동안 주춤했던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했고, 동시에 디즈니+의 ‘기사회생’을 도왔다. 성공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8월 디즈니+ 평균 일일 이용자 수(DAU)는 36만 6142명으로 전달보다 48.2%포인트(p) 상승했다. 특히 디즈니+는 9월 6일을 제외하고 ‘무빙’의 새로운 회차 공개일마다 DAU가 평균 26.6%p 상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마지막회 공개에 맞춰 DAU는 100만 명에 이르렀다. 국내서 서비스 중인 OTT 플랫폼 가운데 DAU 100만 명대를 넘은 OTT는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 네 곳뿐이다.
‘무빙’의 성공세는 세계 시장에서도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한국, 일본, 홍콩, 대만, 동남아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에서 공개 첫 주 최다 시청 시간 1위를 달성했다. 미국 OTT 훌루에서도 ‘무빙’이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가운데 공개 첫 주 시청 시간이 가장 많은 작품에 등극했다.
전 세계 OTT 콘텐츠 종합 인기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 집계 역시 다르지 않다. ‘무빙’은 디즈니+ TV쇼 부문 월드와이드 1위를 차지했다. 국내 OTT 종합 인기 순위를 확인할 수 있는 키노라이츠에서도 5주 연속 통합 랭킹 1위를 지켰다.
#‘한국형 히어로물’의 시작, 할리우드와 차별화
‘무빙’은 초능력자들이 주인공인 히어로물이지만 그동안 숱하게 봐 왔던 영웅 서사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하늘을 날고, 무한한 재생능력을 갖추고, 뛰어난 오감 능력을 지니고, 괴력을 가진 능력자들은 그 힘을 오직 ‘자식’을 지키는 데 쓴다. 초능력자인 부모 세대와 그들로부터 같은 능력을 물려받은 자녀들의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결국 ‘가족’이다.
이는 할리우드 히어로 시리즈들이 대부분 지구를 구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데 집중하는 것과 다르다. 자식을 위해 초능력을 감추고 살아가는 부모들의 희생, 그런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물려받은 능력을 숨기려고 하는 자녀들의 이야기가 매회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무빙’은 ‘한국형 히어로물’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원작이자 시리즈의 극본까지 쓴 강풀 작가의 힘이다. 강풀 작가는 동명 웹툰의 원작자인 동시에 이번 시리즈를 20부작으로 기획해 극본도 직접 집필했다. 제작진의 집필 의뢰를 받고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에서 극본을 썼다고 밝혔다.
강풀 작가는 ‘무빙’을 내놓으면서 “성선설을 믿는다”고도 말했다. 가령 유모차가 차도로 굴러가는 상황에서 누군가 한 명은 꼭 나서서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 “그런 작은 선의가 모여 큰 선을 이루게 된다”고 여기는 강풀 작가는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저는 제가 보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의 이런 가치관은 ‘무빙’ 안에 빼곡하게 담겼다.
#과연 시즌 2 가능할까? 디즈니+의 확고한 의지
이제 관심은 ‘무빙’의 시즌 2 제작 여부에 쏠린다. 이제 막 시리즈가 막을 내린 탓에 강풀 작가 등 제작진 누구도 구체적인 시즌 2 언급은 피하고 있다. 다만 OTT 콘텐츠로 이렇게 성공한 작품은 후속 시리즈로 이어지는 게 ‘수순’인 만큼 가능성은 높다. 앞서 ‘오징어 게임’ 역시 공개 직후부터 시즌 2에 대한 기대가 모아졌는데도 그때마다 “시즌 2는 계획하지 않았다”고 말을 아끼다가 2년여가 지나서야 시즌 2 제작을 공표하고 최근 촬영에 돌입했다. 현재 글로벌 콘텐츠 업계는 넷플릭스 사상 최대 흥행작을 후속편 없이 단일 시리즈로만 놔둘 수 없는 시장이다.
‘무빙’ 최종회에서도 시즌 2에 대한 암시가 있다. 남한의 초능력자들을 암살하려다가 사망한 프랭크(류승범 분)가 다시 등장하고, 국정원의 새로운 팀장으로 마상구(박병은 분)가 임명되는 장면 등이 나왔다. ‘무빙’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시리즈의 성과가 축적된다면 시즌 2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
이와 관련해 김소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대표는 9월 22일 간담회를 통해 “‘무빙’은 디즈니+ 론칭 이후 모든 콘텐츠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고 비즈니스 면에서도 우리한테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며 “강풀 작가의 세계관이 넓고 작품의 잠재력이 워낙 커서 당연히 시즌 2를 검토하고 있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