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신규 가입 최고 효자 노릇, 흥행 이어갈 차기작이 문제…‘한강’ ‘최악의 악’ ‘비질란테’ 등 출격 대기
초능력을 숨기고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감춘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무빙’은 한국 1세대 웹툰 작가로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강풀 작가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8월 9일 1~7편을 먼저 공개한 뒤 매주 수요일 2편씩 순차적으로 공개 중인 ‘무빙’은 공개 직후 극장‧OTT 통합 랭킹 차트 ‘키노라이츠’ 주간 콘텐츠 랭킹 3주 연속 정상을 지킨 데 이어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TV드라마 18편과 OTT 오리지널 시리즈 8편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드라마 화제성 점유율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올 하반기 가장 주목받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뜨거운 인기는 곧 신규 가입자들의 유입으로 이어졌다. 데이터 분석 전문 기업인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무빙’이 공개된 지난 8월 국내 OTT 앱 신규 설치자가 가장 많은 플랫폼이 디즈니+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빙’의 공개 전후를 비교한다면 신규 가입자는 무려 139.9% 증가했다. 그 뒤를 이은 티빙이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2’ 공개 후 신규 가입자 수가 28.7% 증가한 것에 비교하더라도 압도적인 수치다. 모바일 마켓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무빙’ 공개 일주일 후 디즈니 플러스 신규 가입자 수는 하루 14만 명 이상이었다.
국내 진출한 해외 OTT 중 브랜드 가치에 비해 유독 힘을 쓰지 못했던 디즈니+였던 만큼 단 하나의 국산 콘텐츠로 이만한 약진을 이뤄낸 데에 업계 관계자들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2021년 11월 국내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 플러스는 초반 1년 동안 공개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대중들의 무관심에 묻혀 고전해 왔었다. 강다니엘의 주연작이자 디즈니+ 첫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너와 나의 경찰수업’부터 시작해 서강준‧김아중의 SF 추적 스릴러 ‘그리드’, 박형식‧한소희의 로맨스 뮤직 드라마 ‘사운드트랙#1’, 윤계상‧서지혜의 판타지 로맨스 ‘키스 식스 센스’, 정려원 주연의 법정 드라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까지 2022년 1년간 매달 한 편씩 공개돼 온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국내 시청자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조용히 방영이 종료됐다.
그나마 2022년 하반기엔 이성민 주연의 하드보일드 스릴러 액션 ‘형사록’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디즈니+의 K-콘텐츠에도 조금씩 관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고등학교 배경의 스릴러 추리 드라마 ‘3인칭 복수’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대만 등 국가에서 한국 디즈니+ TV쇼 부문 시청 1위에 오르는 등 해외 시청자들에게서 얻어낸 호평이 역으로 국내에 수입돼 한국 시청자들의 정주행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렇게 하반기에 쌓아 올린 시청 층을 발판 삼아 쐐기를 박을 다음 작품은 최민식의 주연의 ‘카지노’였다. 2022년 연말, OTT 오리지널 시리즈 작품 중 넷플릭스 ‘더 글로리’와 함께 양대 기대작으로 꼽혔던 ‘카지노’는 디즈니+에 상당히 고무적인 흥행 성적을 안겨줬다. 비록 시즌 2에선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는 혹평을 받긴 했지만 최민식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한 편의 누아르 영화를 보는 듯한 강윤성 감독의 연출력엔 이견 없는 호평이 쏟아졌다. 2022년 연말 디즈니+의 신규 가입자 수 증가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준 것 역시 ‘카지노’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2023년 상반기엔 다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2월 공개된 김영광‧이성경 주연의 로맨스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를 시작으로 이연희‧홍종현의 오피스 로맨스 ‘레이스’도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고, 9개월 만에 후속 시즌으로 돌아온 ‘형사록 시즌 2’는 수작으로 평가받지만 시즌 1만큼의 화제성을 갖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고전 속에서 구세주처럼 등장한 ‘무빙’을 통해 디즈니+는 “마블 영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한 OTT”에서 “잘 만들어진 한국 오리지널 작품들이 숨어있는 곳간”이라는 상반된 평을 시청자들로부터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런 ‘무빙’의 흥행 성공은 분명 호재지만, 디즈니+엔 이 인기와 화제성으로 끌어모은 시청자들을 유지할 만한 확실한 차기작이 필요한 상태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들이 ‘무빙’의 성공 이유 가운데 하나로 국내 OTT 플랫폼 1위를 수성 중인 넷플릭스의 화제작 부재를 지적했던 만큼, 반대로 넷플릭스의 화제작이 동시기에 공개될 경우 디즈니+의 차기작과 향후 신규 가입자 수 증감 여부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한 해 넷플릭스는 ‘퀸메이커’ ‘택배기사’ ‘사냥개들’ ‘셀러브리티’ 등을 공개했지만 지난해 ‘지금 우리 학교는’이나 ‘수리남’ ‘더 글로리’만큼의 화제성이나 파급력을 가진 작품을 내놓지는 못했다. 하반기 가장 기대받던 작품인 ‘D.P.2’도 시즌 1에 비해 서사가 빈약해졌다는 지적이 일었고,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리메이크한 ‘너의 시간 속으로’도 국내에선 다소 박한 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신인 배우 이한별과 나나, 고현정의 3인 1역을 앞세운 ‘마스크걸’이 ‘오리지널 콘텐츠 강국’ 넷플릭스의 체면을 살렸다. 여기에 올 연말까지 공개가 예정돼 있는 ‘도적: 칼의 소리’ ‘이두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위트홈 시즌 2’, ‘경성크리처’ 등의 기대작으로 다시 한 번 시청 층 결집을 이뤄낼 것으로 보인다.
방송가 한 관계자는 “‘무빙’이 공개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은 작품이긴 했지만 ‘왜 하필 디즈니+냐’는 말을 공개적으로 들을 만큼 플랫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다. 지금도 시청자들이나 심지어 언론에서조차 ‘넷플릭스에서 공개했으면 더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말에 공감이 계속 이어질 정도”라며 “디즈니+가 ‘무빙’의 인기와 화제성을 그대로 견인하기 위해서는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우선적으로 씻어 내고 차기작 홍보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한편 디즈니+는 9월 13일 ‘한강’을 시작으로 ‘최악의 악’ ‘비질란테’ 등 범죄 액션, 하드보일드 누아르, 수사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공개하며 ‘시청 층 굳히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