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청 문건 시나리오대로 시행자 교체 의혹…심영섭 청장 “투자유치 차원” 중흥 “좋은 부지라 경매 참여”
2023년 5월 인천 미추홀구에서 대형 전세사기 사건이 터졌다. 정부가 직접 관심을 가질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전세사기 몸통으로 꼽힌 인물은 ‘인천 건축왕’으로 불렸던 남헌기 씨였다. 남 씨를 둘러싼 전세사기 사건에 나비효과가 발생한 지역은 강원도 동해였다. 남 씨가 운영하던 동해이씨티가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 핵심 요지로 분류되는 망상1지구 시행사업자였던 까닭이다.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은 전세사기 사건 이후 발 빠르게 동해이씨티와 ‘손절’ 절차에 돌입했다. 경자청은 2023년 8월 23일 동해이씨티의 망상1지구 사업시행자 지정을 취소했다. 망상1지구 토지 50% 이상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던 동해이씨티는 사업에서 배제됐다. 얼마 뒤엔 동해이씨티가 소유한 토지도 경매로 넘어갔다.
9월 4일 동해이씨티 소유 사업 토지에 대한 경매가 이뤄졌다. 7월 24일 1차 경매에서 유찰된 매물이었다. 토지를 낙찰 받은 건 대우건설 모회사인 중흥토건이었다. 중흥토건은 380억 9000만 원에 해당 토지를 낙찰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0월 12일 경자청은 “중흥토건이 토지 경매 낙찰가인 380억 9000만 원을 모두 법원에 납부해 토지 소유권을 넘겨받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경자청은 10월 19일 망상1지구 개발사업시행자 공모 공고를 게재했다. 공모지침서에 따르면 사업신청자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될 경우, 지정일로부터 30일 내에 우선협상대상 컨소시엄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한 뒤 자본금 167억 원을 납입해야 한다. 우선협상대상자가 SPC일 경우에도 조건은 동일하다.
그런데 동해 현지 업계에선 ‘특정업체 밀어주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현지 관계자는 “먼저 167억 원을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이후 마련할 수 있는 기업이 현재 경제 상황상 많지 않다”며 “167억 원을 마련할 수 있더라도 신용등급을 만족시키는 상장사의 경우 고시·공고 등 필수 절차를 거쳐 자금을 융통하려면 2~3개월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한 시나리오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된 뒤 나온 공모인 까닭에 현지에서도 많은 말이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지역 업계 관계자는 “경자청장을 중심으로 중흥토건을 망상1지구 사업시행자로 밀어주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중흥토건이 경매로 토지 소유권을 확보하고 일주일 뒤에 경자청이 공모 공고를 올렸는데, 이 기간 사이에 심영섭 경자청장이 동해시장에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을 소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10월 16일 오후 4시경 심영섭 경자청장이 동해시장에게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과 만남을 주선하려 했고, 동해시장이 공모절차 진행 중에 특정 업체를 만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거절 의사를 표명했다.
심영섭 경자청장은 3선 강릉시의원, 재선 강원도의원 등 이력을 지녔다. 20년 동안 지역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다. 2022년 지방선거에선 강릉시장 선거 출마 의지를 드러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대신 김진태 강원지사 선거 캠프에서 강릉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김 지사가 당선된 뒤 심 청장은 2급 공무원인 경자청장으로 임명됐다. 2022년 9월 심 청장은 “2022년 안에 망상1지구 사업자 교체를 통해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발표했다.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은 중흥그룹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2021년 중흥건설에 인수됐다. 중흥그룹은 최근 정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중흥토건을 중심으로 지주사 전환을 꾀하고 있다. 각종 ‘벌떼입찰’ 의혹 중심에 서면서도 연결지배구조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그러다 보니 정 회장의 그룹 지배권 강화 중심에 선 중흥토건이 망상1지구 토지 경매에 참여한 점은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지역 부동산업계에선 경자청이 토지 경매가 완료된 뒤 망상1지구 사업 공모를 한 것이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입찰 공모 기간이 비교적 짧은 2개월에 한정됐다는 점과 별도 사업설명회를 개최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에 무게를 더한다.
강원도 지역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토지를 우선 매입하고, 형식적인 공모절차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절차는 남헌기 씨의 동해이씨티가 망상1지구 사업에 뛰어들 때와 유사하다”며 “경자청이 비리의 재구성으로밖에 볼 수 없는 똑같은 구조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동해이씨티가 주도한 사업이 엎어진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서울 소재 부동산투자업계 관계자는 “정황들로만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는 많다”면서도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의혹을 증명하는 것 자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일요신문은 익명 제보자를 통해 경자청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망상1지구 개발사업 정상화 추진현황’이라는 문건엔 사업시행자 교체, 개발계획 변경, 사업자 지정기간 연장, 사업 추진 로드맵 등 핵심 사안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해당 문건은 동해이씨티 사업시행자 지정 취소 이전에 작성된 문건으로 추정된다.
해당 문건엔 ‘사업시행자 확보 현황’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제목 옆엔 ‘대외주의’라는 글자가 함께 인쇄돼 있었다. 경자청 내부 문건에 따르면 ‘사업참여 3개 기업 확보 및 참여방안 수시 협의 중’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 아래엔 기업 3곳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대우건설(회장 정원주), A 사(회장 신 아무개), B 사(회장 박 아무개)라고 적혀 있다. 문건엔 ‘관광 콘셉트로의 개발계획 변경은 시행자 교체 후 신속 이행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다음 항목은 ‘사업시행자 교체 추진 방안’이었다. 해당 항목엔 사업시행자를 교체하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언급돼 있었다. 1안은 앞서 언급된 ‘3개 기업 대상 동해이씨티 부지 협의 매수를 통한 시행자 교체’였다. 부동산 금융시장 악화로 400억~500억 원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2023년 하반기에나 가능하다는 점과 동해이씨티와 토지 매입가격 합의 및 채권·채무 해결이 어렵다는 세부 내용이 적혀 있다.
2안은 ‘2023년 하반기 경매 낙찰시 채권·채무 등 복잡한 토지 관련 문제가 해결되면 사업시행자를 즉시 교체하는 방안’이다. 속도감 있게 개발 계획 변경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3안은 ‘사업시행자 직권 취소 후 공모를 통한 사업시행자 교체’다. 이 경우 경매부지 확보가 불확실한 상황으로 (사업 참여기업) 공모 응시 불투명, 직권 취소에 따른 법적 분쟁 1심 승소 후에나 대체 사업시행자 공모지침 마련 및 시행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뒤따랐다.
이어 문건에는 종합적으로 ‘동해이씨티 대응 및 경매 진행 등 종합적 상황을 고려해 기 확보한 사업 참여 기업들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최적 방안으로 (사업시행자) 교체 진행’이라는 계획이 적혀 있었다.
그 다음으로 문서에 명시된 ‘추진 로드맵(안)’에 따르면 경매절차 진행 순서에 대해 ‘2023년 9월 매각 예정’, 개발사업시행자 변경은 경매 낙찰 후 변경절차 즉시 진행(~2023년 10월), 개발계획 변경은 변경신청(사업자-청, ~2024년 9월), 심의 승인 고시 (~2024년 12월 산업부)라고 명시돼 있다.
실제 개발사업시행자 변경까지 절차는 로드맵대로 이뤄지고 있는 양상이다. 아울러 중흥토건이 동해이씨티 토지를 경매로 낙찰 받은 뒤 경자청이 사업시행자 공모 공고를 띄운 점을 감안하면, 경자청이 염두에 뒀던 시나리오 2안이 현실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내용을 둘러싼 ‘밀어주기 의혹’과 관련해 경자청 측은 11월 3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경자청 존재 목적은 경제자유구역 내 성공적인 투자유치”라며 “동해이씨티가 사업이 불가능한 회사라는 건 전 국민이 다 알지 않느냐. 경자청은 대체사업자를 구해야 하니 사업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기업을 컨택해서 투자 의향이 일부 있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자청 측은 “2023년 초부터 경자청은 일관되게 사업자를 공개모집하겠다고 해왔다”고 덧붙였다.
심영섭 청장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특정기업 밀어주기 의혹과 관련해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게 중요한 것인데, 동해이씨티 관련됐던 이들이 흔들기를 하고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심 청장은 “투자 유치 차원에서 기업들을 접촉한 것이고, 다른 대기업들도 직접 찾아가서 투자 의향을 묻기도 했다”며 “사업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망상1지구가 성공적으로 개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원주 회장과 동해시장 만남을 주선하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심 청장은 “대우건설 쪽에서 토지를 매입하고 잔금을 치렀기 때문에 한번 인사를 오면 어떻겠느냐 문의했고, 그 부분을 동해시장에게 문의하니 시장이 ‘지금 공모 중에 만나는 건 시기가 아닌 것 같다’고 한 것”이라며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중흥건설 측은 동해이씨티 토지를 경매로 낙찰 받은 것과 관련해 “토지 가격 등을 고려해 개발되면 좋을 것 같은 부지여서 땅을 확보해놓는 차원으로 경매에 참여했다”며 “만약 기회가 된다면 개발사업시행자 공모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자연스럽게 그런 것(경자청 투자 유치 의사와 중흥건설 개발 의지)들이 맞물렸다”고 전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