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눈감은 채 게임 ‘삼매경’
지난 6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PC방에서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임에도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이 눈에 띄었다. 각각 온라인 댄스게임과 슈팅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날 무렵 겨우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친자매지간이었다. 언니 A 씨는 “둘 다 결혼은 해서 각자 살고 있지만 가까운 거리라 시간을 정해놓고 PC방에서 만난다. 낮에는 집안일에 아이들 돌보느라 바빠 주로 이 시간에 게임을 한다. 원래는 집에서 게임을 했는데 성능이 좋지 않아 2년 전부터 PC방을 찾기 시작했다. 요즘엔 일주일에 3~4번은 오는 것 같다”는 말만 남기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자녀는 없느냐는 물음에 A 씨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아이들(6세, 4세)은 남편이랑 함께 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생 B 씨는 야간에 일하는 남편 때문에 3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PC방을 찾는다고 했다.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나름의 ‘배려’ 때문이었다. 담배 연기로 힘들어할까봐 카운터 옆에 마련된 조그마한 공간에서 재우고 있었던 것.
인천 부평구의 한 PC방에서 일했던 강 아무개 씨(25). 자정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거의 매일 걷지도 못하는 아기와 함께 PC방을 찾았던 20대 여성을 떠올렸다.
강 씨는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담배를 피우며 온라인 현금 고스톱 삼매경에 빠진 여성이 있었다. 회원카드를 보니 20대 중반이었는데 하루는 사장이 아기한테 좋지 않으니 집에 가라고 정중히 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되레 ‘꺼지라’며 큰소리를 쳐 그 뒤로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고 했다.
이러한 ‘아줌마 PC방족’은 아르바이트생뿐 아니라 PC방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목격했을 것이다. 임신한 상태로 흡연석에서 게임을 하던 여성부터 아기 기저귀, 분유, 장난감까지 챙겨와 살림을 차린 엄마들까지 행태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평일 낮, 자녀를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함께 PC방을 찾는 무개념 엄마도 있었다.
한때 PC방 게임 폐인이었던 박 아무개 씨(23)는 “제대 후 밤낮 가리지 않고 PC방을 찾던 시절이 있었다. 거기서 한 아줌마를 만났는데 오전 10시쯤이면 늘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두 사람은 같은 게임을 했는데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애가 키운 캐릭터나 아이템을 엄마한테 보내주는 것 같더라. 가끔가다 애가 실수를 했는지 욕을 하며 머리를 쥐어박기까지 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