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조 원대 대출 받아, 이자 부담 상당…주요 계열사 배당금 축소 전망에 고민 더 깊어질 듯
#상속세 납부, 대출에 의존
이재용 회장 일가가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약 12조 원이다. 이 회장 일가는 2021년 4월부터 2026년 4월까지 6회에 걸쳐 매년 2조 원씩 상속세를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 일가는 그간 금융권 대출에 상당 부분을 의존했다. 이 회장 일가는 상속세 첫 납부일인 2021년 4월 총 1조 7171억 원 규모의 대출을 받았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은 당시 삼성전자 지분 0.37%,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각각 삼성물산 지분 2.49%와 2.47%를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했다.
이재용 회장 일가는 이후로도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수차례 대출을 받았다. 추가 대출이 진행되면서 대출 규모가 커지고 있다. 현재 홍라희 전 관장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1.96% 중 1.01%가 금융권 대출 담보로 잡혀 있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도 각각 삼성전자 지분 0.38%, 0.16%가 담보로 잡혀 있다. 이들 세 모녀가 삼성전자 지분을 담보로 받은 대출잔액은 현재 3조 4158억 원이다.
삼성물산 지분도 상당수가 담보로 잡혀있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현재 삼성물산 지분 6.28%를 각각 보유 중이다. 이 중 이부진 사장은 2.51%를, 이서현 이사장은 2.39%를 금융권 대출 담보로 제공했다. 이부진·이서현 자매가 삼성물산 지분을 담보로 받은 대출잔액은 현재 6540억 원이다.
이재용 회장도 다른 오너 일가와 마찬가지로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눈에 띄는 점은 이 회장의 지분은 담보로 잡혀있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이 회장 대출과 관련한 상세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재용 회장 일가는 이미 수조 원대의 대출을 받은 만큼 추가 대출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때문인지 이 회장 일가는 최근 보유 중인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 일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 10월 31일 삼성전자 지분 0.04%, 삼성물산 지분 0.65%, 삼성SDS 지분 1.95%, 삼성생명 지분 1.16% 등을 매각하기 위한 신탁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0월 31일 종가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이부진 사장이 매각하는 지분의 가치는 총 6656억 원에 달한다.
홍라희 전 관장과 이서현 이사장도 각각 삼성전자 지분 0.32%, 0.14%를 매각하는 신탁 계약을 맺었다. 이 역시 10월 31일 종가로 단순 계산하면 매각 예정 지분의 가치는 각각 1조 2928억 원, 5421억 원이다. 이들은 지분 매각 이유에 대해 ‘상속세 납부용’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재계 한 관계자는 “대출도 어렵지만 매년 대출 이자로도 수천억 원이 나가고 있어서 당장 현금이 급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각 악순환' 이어질라
이재용 회장 일가의 주요 수익은 배당금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S,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1991억 원의 배당을 받았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932억 원, 620억 원의 배당금을 수령했다.
삼성전자는 2021년 주주환원을 위해 2021~2023년 연간 9조 8000억 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주주환원 정책이 끝나는 내년부터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내년부터 배당 규모를 축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삼성전자의 최근 실적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순이익은 지난해 1~3분기 31조 8126억 원에서 올해 1~3분기 9조 1324억 원으로 71.26% 감소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는 물론이고 2024년에도 예년 수준의 실적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순이익 규모를 감안했을 때 9조 8000억 원의 배당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주주환원정책이 올해로 종료 임박했지만 아직 신규 정책은 검토 중으로 추정된다”며 “현금 유출요인(배당)과 유입요인(수익성 회복)에 대한 내부 확신이 부족하고, 이제 현금을 지키는 정책으로 변모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배당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의 배당 축소는 삼성물산 배당에도 영향을 미친다. 삼성물산은 올해 초 2025년까지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을 배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약 6441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는데 이 중 4315억 원이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배당금이다. 삼성전자가 배당을 줄이면 삼성물산의 배당 수익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삼성물산은 현재 삼성전자 지분 5.01%를 갖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삼성물산 배당금으로만 779억 원을 받았다. 홍라희 전 관장의 지난해 삼성물산 배당금은 41억 5973만 원이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268억 원을 받았다.
물론 삼성물산이 호실적을 거두면 주주환원 차원에서 현 배당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삼성물산은 올해 상사부문이 부진했지만 건설부문이 약진하면서 실적 상승을 이끌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3분기 6340억 원에서 올해 1~3분기 8990억 원으로 41.80% 증가했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삼성물산 전체 순이익도 1조 8788억 원에서 2조 1478억 원으로 14.32% 늘었다.
그러나 최근 건설부문 실적이 하락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삼성물산의 향후 실적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3분기만 놓고 따지면 삼성물산 건설부문 영업이익은 3030억 원으로 지난해 3분기 3240억 원보다 감소했다. 더구나 건설업계에서는 불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배당이 감소하고, 실적마저 악화하면 삼성물산의 배당 축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백광제 교보증권 수석연구원은 “(건설업계는) 2024년에도 여전히 비우호적인 시장 환경 지속으로 전반적인 이익 악화가 전망된다”며 “건설업계 총 매출액 규모도 2023년을 피크로 감소가 시작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배당과 관련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이재용 회장이 지분 9.20%를 갖고 있는 삼성SDS의 배당 축소 가능성도 나온다. 삼성SDS는 매년 주당 2400원을 배당하다가 지난해 주당 3200원으로 배당을 늘렸다. 삼성SDS는 2022~2024년 배당성향을 30% 수준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SDS의 순이익은 2021년 6334억 원에서 2022년 1조 1130억 원으로 78.41% 증가했다.
하지만 삼성SDS의 순이익은 지난해 1~3분기 8777억 원에서 올해 1~3분기 5553억 원으로 36.73% 줄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SDS가 올해 총 6000억 원 중반대의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SDS가 배당성향을 30%에 맞춘다면 배당금도 주당 2000원 중반대로 하락할 전망이다. 삼성SDS 관계자는 배당과 관련해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 일가는 아직도 6조 원가량의 상속세가 남아 있다. 또 이 회장의 삼성물산 지분 18.26% 중 9.83%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상속세 연부연납 납세담보로 잡혀있다. 이부진 사장도 삼성물산 지분 4.84%를 상속세 연부연납 납세담보로 제공한 상태다. 상속세를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면 해당 지분이 외부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재계 다른 관계자는 “어차피 현재 배당액 수준으로는 당장의 대출 상환이 어렵겠지만 소득 수준은 대출 심사의 중요한 요소이므로 추가 대출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재용 회장의 배당 수익이 줄면 대출 이자 상환도 어려워지고, 결국 이번처럼 지분을 매각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