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수능 기대에 N수생 몰렸지만 ‘불수능’ 평가 지배적…전반적 난이도 올라 오히려 사교육 확장 우려도
#수능 난이도 어땠길래
이번 수능에선 이른바 ‘엔(N)수생’으로 불리는 졸업생 응시자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킬러문항이 배제된다는 소식에 쉬운 수능을 기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4학년도 수능 응시생 가운데 졸업생(검정고시생 포함) 비율은 35.3%(17만 7942명)으로 28년 만에 가장 높았다. 수능 한 달 전 의대 정원 증원 소식까지 맞물리자 ‘의대에 갈 최적기’라는 평가도 돌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물수능’ 기대와 달리 결과는 ‘불수능’에 가깝다는 것이 입시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이번 수능에 반수생(대학에 다니면서 수능을 다시 치르는 응시자)이 확 늘어난 이유는 킬러문항 배제로 수능이 쉽게 나올 것이란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생각보다 시험이 어렵게 출제돼 반수생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오히려 반수생이 허수가 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11월 17일 BBS불교방송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전날 치러진 수능에 대해 “수험생 입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시험이었다”고 진단했다. 임 대표는 “당초 생각했던 기대치와 차이가 클 정도로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며 “국어 같은 경우에도 지문 내용이야 형식적으로는 어려운 문제가 빠졌다지만 정답 찾기가 절대 만만치 않았고, 3교시 영어시험조차도 상대평가에 준할 정도로 매우 어렵게 출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 대표는 “어려운 문제(킬러문항)가 빠지면 물수능이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상위권 변별력뿐만 아니라 최상위권 변별력까지 구해야 돼 최상위권 문제도 대단히 어렵게, 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모의고사 때보다 더 어렵게 출제됐다”며 불수능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올해 수능과 관련해 ‘(수험생들을) 한 줄로 세우기는 쉬울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킬러문항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 변별력이 확보됐다고 볼 수 있다. ‘불수능’으로까지 볼 것이냐는 의견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면서 “공통과목이 대체로 어려웠다. 국어·수학·영어 과목이 9월 모의고사보다 어려워지면서 수험생들이 까다롭게 느꼈을 수 있다. 과목 별로 다르지만 지난해 수능과 비교해도 어려운 과목이 많았다”고 의견을 전했다.
#‘NO 킬러문항’ 두고 설왕설래
평가원 측은 확실히 킬러문항을 배제했다는 입장이다. 수능 출제위원장인 정문성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문항을 배제했으며,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정 난이도의 문항을 고르게 출제했다”고 밝혔다.
2023년 6월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정의한 바 있다.
EBS 현장 교사단은 수능 종료 직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에서 “킬러문항을 배제하고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시험”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사교육 업체들은 “이번 시험에 킬러문항, 준킬러문항이 있어도 감히 누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응했다.
임성호 대표는 킬러문항 배제 여부에 대해 “정답률 측면, 수험생 부담 측면, 문제의 접근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는 킬러문항이 빠졌지만 수험생 입장에서 ‘그 문제 자체가 킬러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들이 다수 출제됐다”며 정부의 의도와 달리 “상당수 수험생들이 ‘킬러’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번 수능을 치른 한 수험생은 “뉴스에서 ‘킬러문항’이 없었다고 말하는데 직접 시험을 치른 수험생이 어렵다고 느끼고 정답률이 낮으면 그게 킬러문항 아닌가. 왜 자기들이 정한 기준으로 킬러를 없앴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운 올해 수능이 무사히 끝난 것이 다행이라고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전의 맘카페에서 한 학부모는 “아이 말 들어보니 킬러문항 없앤다 어쩐다 하더니 ‘문제를 이리저리 꼬아서 냈더라’고 하더라. 서울 사는 고3 조카와 주변의 다른 수험생들 반응도 마찬가지”라면서 “킬러문항 없는 수능이라는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이만기 소장은 “냉정히 말해 킬러문항의 정의 자체가 애매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초고난도 킬러문항은 없었지만 ‘준킬러문항’이 어렵다보니 시간이 부족할 수 있었다. 또한 성적표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킬러문항이 아니더라도 오답률이 유의미하게 높은 문항이 존재할 수도 있어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킬러문항을 배제하되 변별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평가원에서 고육지책을 내놓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누리꾼은 “변별력을 없앨 수는 없으니 결국 전 문항의 킬러문항화를 만들었다”고 이번 수능을 평가했다.
#사교육 시장 어떻게 변할까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사교육의 중요성이 더 커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정부는 앞서 ‘사교육 카르텔’을 잡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일부 대형 학원을 겨냥한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부조리 신고센터를 운영하면서 고강도 조치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수능의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자 학부모들은 불확실성의 확대에 따라 향후 사교육 시장의 입지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수능을 치른 고3 아들과 중2 딸을 둔 한 학부모는 “말 많은 수능이 끝났지만 한시름 놓기도 어렵다”면서 “쉬운 수능을 예상했지만 결국 불수능 아니었나. 앞으로의 대입도 예측이 안 된다. 특히 딸이 바뀐 제도에 적응해야 하는 중2라 더욱 신경 쓸 것이 많다. 결국 엄마들 입장에서는 공교육을 믿기보다는 학원에 보내는 것이 제일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킬러(문항을) 없애고 난이도 자체가 올라가면 사교육은 더욱 부흥하기 좋다. 킬러문항이 있을 때는 학원도 학생도 그냥 의대 갈 애들을 위한 전용 문제로 취급하고 ‘나머지 문제들을 잘 잡자’ 분위기라면, (전반적인) 난이도가 올라가면 한두 문제 버려서 될 일이 아니고 (학생들은) 더욱 사교육에 목숨 걸게 된다”고 주장했다.
수험생 딸을 둔 한 맘카페 학부모는 “(이번 수능에 대해) 딸아이가 ‘대포 3개 정도를 없애고 지뢰 100개를 설치해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면서 “킬러문항은 빠졌지만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지뢰를 엄청 심어 놓은 모양이다”라면서 “면접 학원을 열심히 알아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능은 당해 출제되지만 사교육 시장은 이듬해에 반응한다. 현재 예비 고3의 사교육이 늘어날 것인지 줄어들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수능 난이도의 가변성 때문이 아니라 내신 등 다른 변수로 사교육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