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부문 실적 악화, 인수 기업도 신통치 못해, ‘리브랜딩보단 연구개발 강화’ 지적도…LG생건 “선택과 집중 중”
#미국 시장 실적도 시원치 않네
LG생활건강의 3분기 매출액은 1조 746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285억 원으로 전년 대비 32.4% 줄며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7분기 연속 어닝쇼크를 기록한 LG생활건강의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20.3% 하락하기도 했다. LG생활건강의 사업부는 크게 뷰티, 생활용품, 음료로 나뉜다. 실적을 끌어내린 사업부는 뷰티 사업부다. 해외 자회사인 중국법인이 적자로 전환한 영향이 큰 탓으로 분석된다. 중국법인의 3분기 매출은 1932억에서 1373억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9%가량 감소했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시장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오히려 LG생활건강은 중국 시장에서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포부를 밝힌 상태다. 이를 위해 주력 브랜드인 더후의 천기단 라인을 리브랜딩하고 향후 2년간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다. 비용 효율화 차원에서는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숨과 오휘의 오프라인 매장들을 철수키로 했다. 향후 이커머스몰이나 멀티브랜드숍에 입점하는 방식을 통해 고정비를 아끼려는 방침인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다음으로 규모가 큰 미국 시장의 실적도 시원치 못하다. LG생활건강은 적극적인 M&A(인수합병)를 통해 사세를 크게 키웠다. 이 같은 맥락에서 북미 사업 강화를 위해 2022년 6월 1525억 원에 미국 MZ세대 화장품 브랜드 더크렘샵 지분을 65% 취득했다. 2021년에는 1164억 원에 헤어케어 브랜드 알틱 폭스를 보유한 보인카 지분 56%, 2021년엔 1912억 원에 피지오겔 아시아·북미 사업권을, 2019년도에는 1450억 원을 들여서 더 에이본 컴퍼니의 북미와 캐나다 법인을 인수했다. 하지만 인수 효과는 아직이라는 평가다.
올해 3분기 북미 지역 매출은 1422억 원에서 1481억 원으로 4.2%가량 성장했다. 다만 북미 지역에서의 성장세는 지난해 인수한 더크렘샵 매출이 단순 합산된 덕분이다. LG생활건강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북미 사업이 쉽지 않다. 더크렘샵에서도 생각보다 성과가 안 나고 직원들도 줄퇴사하자 본사에서 10월에 한국 직원들을 부서별로 차출해 급하게 파견해서 수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더 에이본 컴퍼니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에이본 컴퍼니는 지난해 47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손실액이 전년 대비 8배 이상 늘어났다. 캐나다 법인의 당기순손실 역시 전년 대비 3배 늘었고 매출은 감소했다. LG생활건강은 올해 연말까지 사업 효율화를 위해 캐나다 법인의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상황도 여의치가 않다. LG생활건강의 3분기 일본 지역 매출은 87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6% 감소했다. 일본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의 뷰티 시장이다. LG생활건강이 9월 25일 색조 브랜드 ‘힌스’를 운영하는 비바웨이브의 지분 75%를 인수한 것도 일본을 겨냥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힌스가 전체 매출의 절반을 일본에서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은 비바웨이브 인수 시 잔여 지분에 대해 3년 후부터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힌스가 더 성장하면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잔여 지분을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기업의 규모만 놓고 보면 아직은 성장동력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비바웨이브의 2022년 매출은 218억 원 수준이다. 창립 이래 단 한 해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바웨이브의 영업손실은 2019년엔 7000만 원, 2020년엔 6억 6000만 원, 2021년엔 25억 원, 2022년엔 16억 원을 기록했다.
중국 다음으로 고가 제품 비중이 높은 국내 시장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10월 말부터 업계 전반에서 신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했기 때문에 가격 저항 역시 예상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화장품 가격이 오르면 고가 화장품이 제일 타격을 많이 받는다. 고가 비중이 높은 LG생활건강 역시 실적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 한쪽에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탈중국’을 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리브랜딩'이 놓치고 있는 것
LG생활건강은 현재 리브랜딩에 사활을 걸고 있다. ‘더후’로 시작해 2024년에는 ‘오휘’랑 ‘숨’도 리브랜딩에 들어갈 예정이다. 향후 럭셔리 라인은 ‘더후’로 집중하고 전세계적으로 트렌드인 중저가 라인에 대응하기 위해 더마에서는 CNP, 클린뷰티 쪽에서는 빌리프, 저가에서는 더페이스샵을 중심으로 브랜드 경쟁력을 제고할 방침이다.
다만 리브랜딩에 회의적인 시각도 감지된다.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브랜드는 오랜 시간 동일한 철학과 메시지를 유지해야 소비자들에게 각인된다. 해외에서 잘 안 팔린다고 용기랑 디자인만 바꿔서 리브랜딩하는 건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다”며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 역시 리브랜딩을 했지만 큰 효용은 누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리브랜딩보다는 연구개발 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글로벌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인 로레알이나 시세이도의 연구개발 인력은 각각 4000명, 2000명이 넘는다. 반면 LG생활건강의 조직도에 따르면 연구개발 인력은 500명 남짓이다. 특히 연구개발비는 2020년 1602억 원, 2021년 1566억 원, 2022년 1534억 원으로 꾸준히 감소세다.
김주덕 한국화장품미용학회 회장은 “사람들이 로레알이나 시세이도 제품을 쓰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멀리 보고 화장품 소재나 기초 연구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롱런 브랜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LG생활건강 관계자는 “LG생활건강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럭셔리 화장품 사업은 ‘더후’를 위주로, 프리미엄 화장품 사업은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더마 및 클린 뷰티 브랜드를 중심으로 운영할 예정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해외 사업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