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라는 ‘3기둥’ 인물·지역·바람 모두 부실…거대 양당 틀 깨기엔 세력 약하다는 지적
#신당, 주사위는 던져졌다
10월 말까지 설로만 머물던 이준석 신당은 구체적인 창당 시기까지 거론되면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형국이다. 이 전 대표는 11월 5일 유튜브 채널 ‘여의도재건축조합’에 출연해 “12월 말까지 당에 변화가 없으면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연말 행동 개시라면서 창당 시기를 못 박은 셈이다.
이 전 대표는 유튜브 방송에서 “민생보다 계속 이념에 집중하고 정치적 다른 목소리를 ‘내부 총질’이라고 얘기한다면, 당이 정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안 된다는 것”이라며 “그러면 저는 새로운 길로 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가 11월 1일 서울 종로에 있는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 사무실을 찾아가 만난 것을 볼 때 창당은 실행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읽힌다. 이 전 대표는 이날 만남 뒤 기자들을 만나자 “내가 항상 어떤 중요한 행동을 하기 전에 많이 자문하고 상의드리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친정과의 화해도 이제 완전히 사라졌음을 밝혔다. 그는 11월 13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가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서 중책을 부탁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사회자가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도 신뢰가 없느냐’고 묻자 이 전 대표는 “신뢰가 없는 장본인”이라며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
이 전 대표는 “굉장히 권위 있는, 신뢰가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것도 아니고 신뢰가 없음이 대표적이고 장본인인 분이데, 그분이 뭘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선에서) 0.7%포인트 차이로 이겼지만, 그때 지지하셨던 분들 중 이탈하셨던 분들은 다 비슷한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신당 창당에 대해선 “(창당 가능성이) 59%쯤”이라고 했다. 당내 인사 중 신당 참여 의사를 전한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분도 있다”고 답했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다. 신당 창당 명분을 쌓는 행보로 읽힌다. ‘핍박을 받아 당을 떠나는 그림’을 연출하는 동시에, 반윤 결집을 노린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이 11월 12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한 것을 두고 “도대체 대통령 일정을 대구와 관변단체, 해외만으로 순도 높게 돌리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의 일정, 경호 담당자들은 대통령에게 민생과 가장 가까운 곳을 보여주십시오. 심기경호 일정을 돌리지 말고”라고 쏘아붙였다.
앞서 윤 대통령은 11월 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구 사저를 방문했다.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정상회의 참석자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고 이어 영국·프랑스·네덜란드 3개국 순방에 들어간다.
이 전 대표는 “좋아하시는 술 한잔도 관저가 아니라 수유역에서, 성신여대입구역에서, 불광역에서, 정권 출범 이후 가장 상권이 붕괴된 곳에서 해야 한다”며 “대구, 관변단체, 해외 일정을 뺑뺑이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윤 대통령을 몰아세웠다.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을 앞두고 세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당내 ‘반윤’ 인사들은 물론, 민주당 이탈 및 제3지대 세력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준석 신당의 형태가 ‘빅텐트’가 될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지만 과연 실제 합류할지는 미지수다.
#뭘 믿고 이러는 것일까
이 전 대표, 그리고 그의 신당 창당에 동조하는 이들은 이준석이라는 ‘인물 간판’이 통할 것으로 기대한다. 집권당 대표를 지냈기에 비록 ‘0선’이지만 인지도에서만큼은 보수진영 그 누구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그 다음은 한국 정당 선거사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 무기였던 ‘지역’이다. 이 전 대표는 11월 9일 대구를 찾아 기자들에게 대구 출마 가능성에 대해 “당이라는 건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에게 그런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가 있을 때는 당연히 어렵다는 이유로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구 출마 가능성을 활짝 연 그는 “대구 도전이 어렵다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1996년 대구는 이미 다른 선택을 했던 적이 있다”고 하면서 그 당시 대구를 호명했다. 1996년 제15대 총선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총재가 갈라선 뒤 김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신한국당이 대구 전체 13개 의석 중 2석을 확보하는 데 그친 반면 자민련이 8석을 석권한 사례를 소환한 것이다. 그는 “지금 60대, 70대가 돼서 윤석열 정부를 많이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30대, 40대 때 했던 선택”이라며 “다시 한번 변화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 전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부모 고향이 TK(대구·경북)여서 정치에 입문한 뒤 TK 행보를 꾸준히 해왔고 TK에 오피니언 리더급 지인들도 여럿 있다. 당 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던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도 대구에서 긴 기간 상주하며 바람몰이를 한 덕분에 승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실제 이 전 대표가 대구의 특정지역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대선 득표율(48%)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윤 대통령에 대한 보수정당 지지층의 반감 세력이 상당하다고 보고 이들을 기반으로 바람을 일으킬 경우, 신당에 지지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을 한다. 지금 여권이 아닌 대안세력을 요구하는 보수 지지층이 폭넓게 존재한다는 게 이 전 대표 측 구상이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꿈꾸는 신당의 3기둥 ‘인물’ ‘지역’ ‘바람’이 허상이라는 따끔한 비판이 나온다. 우선 이 전 대표가 여당 1호 당원 현직 대통령과 겨룰 수 있는 인물이 되느냐는 현실적 무게감이다. 여당 내 야당의 대표 사례가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의원이었는데 이 전 대표가 과연 박근혜급인가에 대한 의문은 크다.
신당의 지역적 기반에 대해서도 회의감에 높다. TK에서 이 전 대표 지분이 과연 있느냐는 냉철한 질문에 대해 답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신당 준비론자들은 없다. 공천에서 떨어지면 무소속으로 갈망정 이 전 대표 신당을 따라갈 동조자도 TK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1월 11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대구에서 이준석 유승민 바람은 전혀 불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홍 시장은 “16대 총선 때 대구에 자민련 바람이 불었던 것은 YS(김영삼) 정권 출범 당시 대구에 설립 예정이던 삼성상용차를 부산으로 가져간 데 대한 반감과 자민련 중심인물로 거물인 박철언 장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윤석열 정권은 대구시 정책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고 이준석은 대구와 전혀 연고가 없다. 같이 거론되는 유승민은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있다”며 “이준석 신당은 대구 민심을 가져갈 만한 하등의 요인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상황 인식의 오류이고 정세 판단의 미숙이다. 현실을 무시하는 바람만으로 현 구도를 바꾸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TK를 기반으로 하는 한 국회의원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자민련 바람이 1996년 대구에서 불었던 것은 ‘우리가 남이가’라며 대선에서 TK 표를 가져갔던 YS가 TK를 저버렸다는 배신감이 급속도로 번졌기 때문이다. TK가 여당을 버리고 자민련으로 심판 투표를 한 것이다. 지금 TK에서는 배신은커녕, 윤 대통령에 대한 실망 정서도 없는데 무슨 이준석 신당 바람이 분다는 말인가.”
#양당구도 타파? 글쎄
정치권에서는 지금의 양당 구도가 무너지고 이준석 신당 등이 새로이 진입하는 다자 구도가 형성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중도층, 무당층 비율이 꾸준히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과거 선거들을 복기해보면 이들이 새로운 정당에 표를 던질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우선 여당 지지층은 진정한 정권 교체는 총선 승리라고 보는 인식이 강해 기존 투표 경로를 이탈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민주당에 표를 줬던 투표자들 역시 야당을 몰아세우는 여권에 대한 강력한 방어 기제가 작동하면서 다른 길을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3세력이 끼어들어 다자구도를 만드는 압력이 작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적 한계가 신당의 추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 전 대표 측근들조차 빠른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러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이 전 대표와 신당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11월 14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창당이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다”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나타냈다. 그는 “사실 신당 창당이라는 것이 탈당을 수반하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신중하게 고민해야 된다라고 하는 원론적인 말씀들을 많이 드렸다”고 했다.
이준석 계열과 가까운 김웅 의원은 11월 15일 신당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저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이다. 근데 당 대표까지 나가겠다고 한 자가 신당에 얼쩡댄다고 하면 그건 정치 도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바른정당 창당 작업에 관여했던 한 국민의힘 당직자의 고백이다.
“양당 구조 해체가 어려운 데다 창당 작업 역시 실무적으로 난관이 많다. 한번 나가면 철새 취급을 받기에 바른정당·새로운보수당 등의 악몽을 갖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로서는 신당으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데다 이준석 계열을 일부 포용하는 전략까지 사용되면 신당 창당 시도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한때 ‘이준석 끌어안기’도 고민했던 여권 핵심부는 ‘이준석 외톨이’ 전술을 통해 신당 고사 작전에 나서기로 결론을 내렸다. 때문에 여권 주류와 이 전 대표와의 극적인 재결합 가능성도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11월 17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가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 가능성에 대해 “그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친윤 핵심 의원은 사석에서 기자와 만나 “이준석에게 원하는 지역 공천을 주거나 또는 비대위원장 자리를 주자는 얘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대통령실의 생각이 너무나 확고했다. 이준석 이름조차 꺼내기 힘든 분위기다. 이준석 신당 파괴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도 영향을 미쳤다. 이준석은 간을 보고 있을진 몰라도 국민의힘은 그와의 헤어질 결심을 굳혔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