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가액비율은 건드리지 않아 고가 주택 보유자들 상대적으로 세 부담 줄어
공시가격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 등을 부과하는 기준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공시가격이 시세를 얼마나 반영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기준이다. 현실화율 70%라면 시세 10억 원짜리 주택의 공시가격을 7억 원으로 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올해처럼 2020년 수준의 현실화율을 적용하면 내년 아파트 등 공동주택 현실화율은 평균 69.0%, 단독주택은 53.6%, 토지는 65.5%가 된다. 구체적으로 9억 원 미만 아파트는 68.1%, 9억 원 이상~15억 원 미만은 69.2%, 15억 원 이상은 75.3%다. 현실화율이 유지된다고 해도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집값이 오르든지 과세표준을 정하는 다른 기준이 높아지면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
부동산 보유세는 크게 재산세와 종부세로 나뉜다. 재산세는 공시가격에 공정가액비율을 곱한 액수가 과세표준이 된다. 공정가액비율은 주택의 경우 60%지만 현재 지방세법 시행령에는 2023년도 납세분에 한해 43~45% 범위에서만 적용한다. 시행령을 손 보지 않으면 2024년부터는 다시 원칙대로 60%가 적용된다. 시가 10억 원짜리 주택의 재산세 과세표준은 올해 공시가격 6억 9000만 원에 45%를 곱한 3억 1050만 원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았더라도 내년에 공정가액비율이 60%로 환원되면 과세표준이 4억 1400만 원으로 높아진다. 과세표준이 높아지면 재산세도 더 내야 한다.
하지만 종부세 공정가액비율은 내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60%다. 그런데 종부세 납부액에서 재산세 기납부액은 공제된다. 올해에는 재산세를 덜 내는 대신 종부세를 많이 냈지만, 내년에는 재산세를 더 내는 대신 종부세를 덜 낼 수 있다. 종부세 대상 주택 소유자에겐 재산세 공제 혜택이 커지는 셈이다.
올해 종부세 납부자는 130만 명이 넘었던 전년 대비 크게 줄어 100만 명 미만이 될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비싼 집을 가진 이들 다수가 종부세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올해 서울 및 수도권 집값이 반등하면서 내년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늘겠지만 올해에 비해 상대적인 부담은 덜할 수 있다.
2035년까지 시세대비 공시가격을 90%로 끌어올리겠다는 문재인 정부 때의 로드맵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로드맵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해 내년 7~8월께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정권이 바뀐 만큼 지난 정부에서 만든, 법률에 반영되지도 않은 로드맵이 실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올해와 내년 현실화율이 2020년 수준으로 동결되면서 로드맵 일정 자체도 크게 어그러졌다.
변수는 세수다. 특히 국세인 종부세와 달리 재산세는 지방세로 지방정부 세수의 핵심이다. 지난해부터 지방 부동산 시장의 부진으로 이미 재산세 세수는 크게 줄었다. 세수 부족으로 중앙정부의 지방교부금도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재산세에 대한 갈증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일몰 조항을 손보지 않는 방식으로 공정가액비율을 45%에서 60%로 ‘티’ 나지 않게 올린 배경에도 지방정부 재정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정부는 최근 증시 안정을 명분으로 대주주에 대한 주식양도세 기준도 완화하기로 했다. 이 역시 주식으로만 10억 원 이상을 가질 수 있는 부자들에 유리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 개정 없이 시행령만 고치면 가능해 연내 실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이 추진 중인 김포를 포함한 수도권 일부 도시의 서울 편입 역시 마찬가지다.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해 쉽지는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수도권 도시들이 서울에 편입되면 가격이 올라 상대적으로 중산층이나 서민들이 매수하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