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원희룡 등 새로운 간판 요구 거세…‘슈퍼 빅텐트’로 방어막 쳤지만 회의적 시선
#새로운 간판으로 바꾸나
김기현 지도부는 더 이상 여권발 뉴스의 1호가 아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출범한 인요한 혁신위도 마찬가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해나가고 있다.
한 장관의 11월 17일 대구 방문은 큰 화제를 뿌리면서 그의 정치권 공식 등판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강력범죄 피해자 및 그 가족들에게 심리 치유, 임시거처 등을 제공해 일상생활 복귀를 지원하는 기관인 대구스마일센터 방문을 위해 이날 대구를 찾은 한 장관은 사진을 찍으려는 시민들로 인해 예정된 기차를 타지 못하고 밤늦게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를 타려고 동대구역에 온 한 장관을 본 시민들이 “사진 좀 찍어 주세요”라며 몰려들었고, 한 장관은 결국 예매한 기차를 취소하고 무려 3시간 가까이 시민들의 촬영 요구에 응했다. 이러는 사이 사진을 찍으려는 시민들은 더 늘어나 긴 줄을 이루는 진풍경까지 목격됐다.
TK(대구·경북) 한 전직 국회의원은 “대구 사람들은 지역색이 강해 대구와 연고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타성을 드러내는데 서울 출신인 한 장관에 대한 시민들의 응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TK가 움직이면 이 정서가 수도권 보수층으로 북상하는데 한 장관이 보수의 새 간판으로 TK의 낙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장관은 11월 21일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평가 시스템인 한국어능력평가센터(CBT) 개소식 참석을 위해 대전도 방문, “여의도에서 300명만 공유하는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며 “나는 나머지 5000만 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했다. 국회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사실상 정치를 개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내년 총선의 보수 간판을 자임하고 있다. 그는 주변에 “만약 지역구로 출마한다면 가장 어려운 지역에서 가장 센 상대와 붙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여당의 험지로 불리는 인천 계양을로 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겨루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고 한다.
원 장관은 인요한 혁신위의 ‘희생’ 요구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태도를 나타내면서 주목을 이끌어내고 있다. 원 장관이 이재명 대표와의 승부에서 비록 지더라도 근소한 차이라면 전혀 잃을 것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고도 이겼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원 장관이 이 계획을 감행한다면 험지 출마를 망설이는 중진들의 결단도 이끌어낼 것으로 보여 당을 완전히 새롭게 물갈이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한 장관과 더불어 보수의 새 쌍두마차 위치를 원 장관이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세대교체와 새 간판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내보이고 있다. 그는 11월 21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연을 들은 뒤 기자들을 만나자 “이름은 거명 안 하지만, 두 분이 말씀을 줬다”며 “거기에 굉장히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이 언급한 ‘두 분’은 원희룡 한동훈 장관으로 읽혔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보수 지지자들이 아예 정치 경험이 없는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듯이 정치 불신이 더욱 심화하는 요즘 세태에서 유권자들이 새 인물을 추구하는 경향이 더 강해지고 있다”며 “여당에도 신장개업을 요구하고 있어 기존 지도부가 버티기가 몹시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상민·양향자 영입 대상 거론
새 간판, 세대교체, 신장개업 등의 이야기가 번져나가자 김기현 대표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는 안정 속의 변화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며 여론을 호의적으로 이끌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김 대표는 수도권 민심을 잡기 위한 김포 서울 편입 정책에 이어 ‘슈퍼 빅텐트’를 내세우면서 위기 탈출에 나섰다. 보수를 넘어 중도 진영까지 아우르는 빅텐트 카드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김 대표의 빅텐트 구상은 더불어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까지도 총망라한 중도 통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 본인이 직접 민주당의 소수 비명계를 언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첫 영입 대상으로 거론된다. 민주당 출신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도 거론된다.
김 대표는 지도 체제 안정화에도 나서는 중이다. 최고위원 보궐선거를 앞당겨 치른 것도 김 대표 체제 강화에 나섰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김재원 전 최고위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최고위원 자리와 관련, 국민의힘은 11월 23일 당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재선의 김석기 의원(경북 경주)을 선출했다. 당초 12월로 예상됐지만 그 일정을 당긴 것이다.
같은 날 김기현 대표 특별보좌역에 조정화 전 부산 사하구청장 등 4명이, 중앙당 후원회장 직무대행을 맡아온 안응수 다함이텍 회장은 후원회장으로 임명됐다. 김기현 당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여세를 몰아 12월 중순 안에 내년 총선의 핵심 기구인 공천관리위원회도 띄울 방침이다.
인요한 혁신위의 희생 요구와 관련해서도 적극적으로 방어막을 치는 중이다. 혁신위가 지도부·중진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권고를 내놓으면서 김 대표 역시 이 사정권에 들어갔지만 김 대표는 지역 발전 역할론을 내세우는 모양새를 비치고 있다.
김 대표는 11월 20일 김두겸 울산시장과 울산 지역구 의원들이 모인 비공개 회동에서 울산 남구을 출마 요청을 받고 “숙고하겠다”고 답했다. 울산 남구을은 김 대표의 지역구로 김 대표는 지난 2004년부터 이 지역에서만 4선을 했다. 지역 민심을 내세우면서 기존 지역구 출마 명분을 쌓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당내에서는 혁신위가 내세운 희생 키워드에 김 대표가 걸려들면서 이미 대표의 권위에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본다. 한동훈 원희룡 장관 등 새 간판까지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장면까지 나오면서 김 대표 입지는 더 쪼그라들었다. 결국 새 간판을 내세운 비대위 체제 등장에 무게를 두는 당내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11월 23일 충남도청으로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찾아오자 초선 의원과 원외 인사가 다수인 당 최고위원회 구성을 지적하며 “당 대표가 꼬마 대장 노릇을 하는 형태에서 된장찌개처럼 깊은 의사결정이 나오겠냐”고 우려했다. 김기현 체제에 대해 강한 질타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비대위 카드 만지작
여권에서는 김기현 대표의 빅텐트가 대박을 칠 가능성을 낮게 본다. 이상민 의원을 제외하고는 민주당 비명계 대다수가 국민의힘으로 오는 것이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양향자 의원을 비롯한 3지대 영입만으로는 파괴력이 크게 떨어진다.
더욱이 김기현 대표 등을 타깃으로 삼은 혁신위의 희생 요구는 피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요한 혁신위는 희생 요구를 두고 조만간 최후통첩을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도 흘리고 있다.
원희룡 장관이 험지에 가겠다는 의지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김 대표 역시 어떤 식으로든 비슷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험지 출마에서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면 총선 불출마와 백의종군을 김 대표가 선언하고 뒤로 빠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원희룡 장관이든, 한동훈 장관이든 새 인물이 비상지휘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정치권에서 점치는 배경이다.
역대 총선에서 비대위 체제가 효과를 봤다는 선행 사례도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눈여겨보고 있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치른 이명박 정부 당시 2012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은 최악의 상황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며 총선 승리를 일궈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내리 4선을 한 자신의 지역구(대구 달성군)를 내려놓고 비례대표로 가면서 이명박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 등 중진들의 지역구 물갈이를 이끌어냈다. 변화와 혁신을 앞세운 당시 여당은 대통령 임기 말 불리한 판세 속에서 국회 다수당이 됐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총선 승리도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였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당 대표가 뒤로 물러앉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압도적인 권한을 부여해 당시 여당을 눌렀다. 이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민주당은 이후 전국 단위 선거를 싹쓸이하면서 ‘선거 전문가 정당’이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정치판에서는 더욱 강도 높은 카드를 내놓은 쪽이 항상 우위에 섰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로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으로서는 혁신위에 이어 새로운 간판을 앞세운 비대위를 적극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내에서는 비대위 체제로 간다면 새 간판 한동훈 원희룡 장관이 중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내다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