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 함께 수감, 단약 아닌 중독자로 몰아넣는 환경…투약자에 대한 혐오보다 사회 복귀에 초점 맞춰야”
안준형 법무법인 지혁 변호사의 말이다. 안준형 변호사는 11월 27일 책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세이코리아)를 펴냈다. 저자인 안 변호사는 1년에 100여 건의 마약 사건을 수임하는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다. 수많은 마약 사건을 맡아본 안 변호사는 마약을 둘러싼 우리나라 처벌, 격리, 사회적 시선 등이 모두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안 변호사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건 소위 ‘향방’이라는 수감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는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마약류 관리법 위반)은 향방에 모아서 수용시킨다. 안 변호사는 “마약을 끊는 데(단약) 가장 중요한 게 마약이 생각나지 않는 환경이다. 그런데 향방에서는 하루 종일 약 얘기만 할 가능성이 높고, 어디서 약을 살 수 있는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단약이 아니라 마약 중독자로 몰아넣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연예인 마약 사건이 연일 터지고 있고, 일반인 사이에서도 마약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경고가 계속되고 있다. 11월 24일 안 변호사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계속 늘어가는 국내 마약 실태에서 문제가 뭔지 들어봤다. 안 변호사는 “책을 통해 마약이 아니라 그 속에 실재하는 사람을 얘기해 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마약 전문 변호사로 드물게 책을 냈다. 어떤 내용을 담았나.
“마약 전문 변호사를 하다 보니 마약 투약자도 많이 만나지만 그만큼 투약자 가족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투약자라고 하면 밤마다 눈이 뒤집혀 환각을 경험하거나 영화처럼 범죄 조직에 연루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이 마약에 대해서도 모르고, 마약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끊을지도 모른다. 가족들에게도 ‘어머니 이 책 한 번 읽어보세요’라고 할 만한 책이 없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마약 투약자 얘기를 경험으로 풀어낸 책이다.”
—최근 마약 투약이 크게 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어떤가.
“검거를 열심히 하니까 검거는 많아지는 것 같다. 텔레그램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이 새로 나오면서 구하기 쉬워진 면도 있다. 다만 일반인들이 마약에 손대는 비율이 극적으로 높아졌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은 대체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다들 있다. 어쩌면 경각심이 너무 커서 마약 중독자를 혐오의 시선으로만 보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마약을 하나.
“남녀노소 누구나 투약자가 될 수 있다. 이건 일종의 사고다. 자동차 사고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높은 명예를 가진 사람도 투약자가 되는 경우를 봤다. 확률상 마약을 살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일상생활과 분리된 자기만의 시간이 있으며, 이를 할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이 충족된 경우에서 많이 발생하긴 했다. 이 얘기를 정신과 의사에게 하자 우울증 취약 조건과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예인이 마약에 손대는 이유 중 하나가 마약 투약자의 최적 조건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약 중독자를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금은 마약 중독자 하면 괴물같이 본다. 그런 시선이 마약 투약자에게 ‘내가 사실 마약 투약을 했었다’고 말할 수 없게 하는 풍토다. 마약 투약을 했어도 괴물로 변하는 게 아니라, 치료 과정을 통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마약 투약도 골든 타임이 있어서 어느 시점을 지나가면 마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투약자에 대해서도 처벌 일변도인 사법 제도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등 전 세계적 추세는 투약자는 치료하고, 유통업자는 처벌한다.”
—국내 마약 투약자를 다루는 사법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나.
“향방 자체가 문제다. 왜 그곳에 몰아넣어 놓나.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는 첫 번째는 ‘트리거’를 없애는 것이다. 마약 얘기나 주사기 이미지 등은 ‘마약을 해야겠다’는 갈망에 사로잡히게 하는 원인이다. 이를 방아쇠라고 한다. 그런데 향방은 트리거 천지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마약을 끊고 사회로 돌아가겠나. 과거 연구 자료를 찾아봤을 때 우리나라 마약 재발률이 다른 나라 평균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고 알고 있다. 향방 시스템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줘야 하나.
“미국에서는 리햅(재활센터)이 흔하게 있다. 마약에 중독되면 이곳으로 보내진다. 처벌이 아니라 그곳에서 치료하고 사회로 복귀한다. 우리나라는 마약 투약을 해서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호소해도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향방에 있다가 사회로 돌아오면 바로 며칠 뒤 마약에 손대는 경우가 흔하다. 마약은 도박 등과 같이 피해자가 없는 범죄다. 피해자가 없다는 면을 봤을 때도 처벌보다는 사회로 복귀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대마 도입은 성급하다고 본다. 브릿지 이론은 낡은 이론이긴 하다. 그렇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각국이 대마 합법화를 하고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이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다는 거다. 합법화할지, 말지 논의가 있어야 결론이 나는데 그런 논의조차 없는 게 문제다. 국내 마약법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깊이 있는 논의 없이 땜질하듯 법을 만들어서 마약의 위험성과 처벌이 부합하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어떤 게 있나.
“마약이라고 하는 건 일종의 사회적 용어다.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여기에 포함된 약물이 수천 종이다. 여기에 포함된 약물을 했을 때 형량은 그 중독성이나 위험성과 같지 않다. 법을 만들 때 섬세하지 못했고, 땜질을 계속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필로폰보다 LSD나 합성대마를 무겁게 처벌한다. 합성대마 중에는 일본에서는 마약으로 규정이 안 된 물질도 많다. 필로폰 구매는 벌금형이 있어서 선처를 받을 수 있지만, 대마는 징역형만 있어 이론적으로는 더 무겁게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겪어보면 가장 위험한 마약은 필로폰과 펜타닐이다. 필로폰은 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마약을 끊는 게 얼마나 힘든가.
“약에 따라 다르다. 대마는 끊기 쉽다. 사실상 중독 증상이 없다는 얘기도 있다. 담배는 그에 비해 매우 끊기 어렵다. 필로폰이 가장 끊기 어렵다. 필로폰 투약 후 성관계를 가져본 사람은 약물 끊기가 극도로 어렵다. 의지가 강하고, 단약을 강력하게 원하는 사람도 10명 가운데 2명 정도 성공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국내 약물 재활센터가 너무 부족하다. 마약 처벌에 열을 올리는 만큼 제대로 된 재활센터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국내 약물 재활센터가 부족한가.
“지금은 대부분 정신병원에서 같이 치료한다. 마약 중독자는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정신이 멀쩡한데 정신 병원에 수감돼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면 그게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정신병원에 갔던 의뢰인 한 분은 ‘주변에서 이상한 말을 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 못 견디겠다’는 말했다. 사실 사법적 처벌에도 예산이 들어간다. 마약 유통업자가 아니라 중독자는 치료를 통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고 사회로 돌려보내는 게 우리 사회에도 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뢰인 중에서 인물, 능력, 성품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존경 받으며 주변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필로폰에 중독됐고, 치열하게 노력해 결국 끊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얼마 뒤 어느 날 유언이나 조짐도 없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런 대단한 사람도 약을 끊는 과정이 죽을 만큼 힘들었는지를 주변 사람들은 몰랐다. ‘어쩌면 약을 안 끊었으면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앞서 말했듯 마약은 자동차 사고하고 비슷하다. 어쩌다 보니 마약을 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됐고, 그게 하필 필로폰이었고 끊기가 정말 힘들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야 열심히 뛰면 돼’라고 하지 않는다. 마약 투약자가 끊을 수 있게 하는 건 절대적 지지다. 주변에서야 투약자를 심적으로 질타나 원망을 하고 싶지만 그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 사회도 투약자를 질타보다는 지지해 주는 쪽으로 바뀌길 바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