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는 서민? 무슨 소리!
▲ 왼쪽에서 두 번째 건물이 안철수 원장의 장인 소유의 상가 건물. 농촌이 아닌 시가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박은숙 기자 |
<일요신문>은 안 원장이 최근 언급한 장인의 거주지를 직접 찾아가 봤다. 현지 취재 결과 안 원장의 장인은 농사를 업으로 삼는 전문 농사꾼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지난 8월 30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대표적 친노인사인 주형로 충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의 초청으로 충남 홍성군 문의마을을 방문했다. 안 원장은 당시 현장에서 농민들의 태풍피해를 언급하며 “우리 장인께서도 농사를 지으시는데, 이번 태풍으로 비닐하우스가 큰 피해를 입으셨다. 아직까지 가보지도 못했다”고 발언했다. 발언만 놓고 보면 안 원장의 장인도 태풍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농민의 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안 원장의 이 발언은 어설픈 ‘서민놀음’이라는 논란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 안 원장의 장인인 김 아무개 씨(78)는 농사를 업으로 삼는 전문 농사꾼이 아니라는 증언과 지적이 쏟아져 나오면서 신중치 못한 안 원장의 발언이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지난 9월 12일, 안 원장의 장인 김 씨가 거주하고 있는 여수시 중앙동을 찾았다. 김 씨의 자택은 농경지가 아닌 여수의 시가지인 ‘중앙선어시장’ 인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김 씨의 자택은 3층 규모의 상가주택(126.99㎡)으로 등본확인 결과 김 씨 본인 소유였다. 일단 집 근처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작은 텃밭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건물 옥상에 김 씨가 가꾸어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초들이 정성스레 자리 잡고 있었다. 문을 두드려 봤지만 집은 비어있는 상태였다.
기자는 현장에서 만난 김 씨의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기자와 만난 인근의 한 어물전 상인은 “워낙 점잖은 양반이라 인근 주민들과는 말을 잘 섞지 않으셨다. 단지 인사만 나누는 사이다. 김 씨 부부의 일상은 거의 한결같다. 아침 일찍 부부가 차를 몰고 나가서 저녁때가 돼서야 돌아온다. 돌산 인근에 소일거리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로하신 나이지만 지금도 딱 보기에 정정하시다”라고 설명했다.
기자와 만난 또 다른 인근지역 상인은 “자주 집을 비우셔서 김 씨의 우편물과 택배를 대신 받아준 적이 많았다. 종종 안랩에서 보낸 우편물들도 보였다. 워낙 조용하신 양반이라 오랫동안 알고 지냈어도 안 원장의 장인이라는 것은 몇 달 전에서야 알았다. 최근에는 아들 한 분이 집에 오셔서 함께 지내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양반은 아니다. 나이 드셔서 그냥 밭일을 하시는 수준이다. 보통 우리도 나이 들면 텃밭에 나가 제 먹을거리는 제가 지어먹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나. 그 정도 수준이다. 안 원장의 장모도 그 연세에 지금까지 손수 차를 운전할 정도로 멋쟁이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워낙 조용한 성격 탓에 오랜 기간 한 지역에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근 주민들과는 별다른 교류가 없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확실한 건, 김 씨가 농사일 자체를 업으로 삼는 전문 농사꾼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저 여수 돌산에 위치한 소규모 개인 농장을 소일거리로 가꾸는 수준이었다. 안 원장이 언급한 ‘태풍피해 비닐하우스’ 역시 생계를 염두에 둔 시설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또한 현장에서 김 씨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지역에서 양조장을 직접 운영하며 부를 축적했으며 지역의 유력사회단체인 여수로타리클럽의 총재까지 역임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여수로타리클럽 사무실을 직접 찾았다. 김 씨의 상가주택과는 불과 도보로 10여 분 걸리는 거리였다.
사무실에서 만난 여수로타리클럽 관계자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 1973년도부터 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1995~1996년, 1998~1999년 클럽 총재직을 두 차례나 역임한 지역 유명인사였다. 지역 로타리클럽 총재직은 최소 7년간의 클럽 활동을 한 사람 가운데 클럽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본부에서 임명하는 자리였다. 그는 사무실에서 여전히 ‘총재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기자와 만난 클럽 관계자는 “여수로타리클럽 총재는 광주지역을 제외하고 전남 전체를 관할하는 영향력 있는 자리다. 김 전 총재님처럼 총재 자리를 두 번이나 역임한 사례는 흔치않다. 김 전 총재님이 직접 내색은 안하시지만, 현재 클럽 안에서는 그 분이 안 원장의 장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며 그의 영향력에 대해 간접적으로 귀띔했다.
김 씨는 지난 1999년 총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지금까지 클럽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사무실 관계자는 “지금도 클럽에서 꾸준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매주 수요일 오전, 클럽 사무실에서 회의가 있다. 오늘 오전에도 회의 참석차 사무실을 다녀가셨다. 오후에는 인근 도시인 순천에 가셔서 문화와 관련한 수업을 듣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클럽 관계자를 통해 김 씨와의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김 씨는 전화를 받았지만 기자의 취재요청에 대해 “평범한 농부기 때문에 만나서 할 말 없다”는 답변만 남긴 채,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후에도 기자는 집으로 전화를 걸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계속 부재중이었다.
기자와 통화한 이재관 정치컨설턴트는 “안 원장은 여러 가지 역할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기업의 오너십을 갖고 있는 기업인이다. 서민적 이미지메이킹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지만 그의 배경 탓에 잘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면 이 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검증이 실시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