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분 25% 제한’ 한중 합작 부담 커져, 초안 수정 올인…중·미 기술제휴 지침도 예의주시
#‘일본 사례 있으니…’ 의견수렴기간 남아
지난 12월 1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FEOC에 대한 해석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중국 정부 관련 지분율이 25% 이상인 기업은 중국 외 지역에 있다고 하더라도 해외우려기관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중국 등 우려국 정부가 이사회 의석수, 의결권, 지분의 25% 이상을 보유해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경우는 해외우려기관으로 간주된다.
미국은 IRA에 따라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를 대상으로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배터리 부품 사용 시 3750달러,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광물 사용 시 3750달러를 지급한다. 이 혜택을 받기 위해서 배터리 부품은 2024년,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광물은 2025년부터 FEOC에서 조달하면 안 된다. 이번 가이던스에 따라 FEOC에는 중국 정부와 관련된 합작회사 지분율이 25% 이상인 기업도 포함됐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야화와 모로코에서 수산화리튬 채굴 협력을 준비 중이다. SK온과 에코프로는 중국 거린메이와 전북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LG화학·포스코홀딩스·포스코퓨처엠 등 배터리 소재 기업들도 안정적인 원료 확보를 위해 중국 기업과 합작회사 설립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분율을 공개하지 않은 기업 외에 국내 배터리 셀·소재 기업들과 합작한 중국 기업은 40~80%까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중국 파트너사 지분을 매입하는 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 전구체와 관련된 공정과 기술을 넘겨주는데 의사 결정 권한은 없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도 미국 시장 진출이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끝까지 대립 각을 세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마냥 순순히 지분을 내어주지는 않을 것 같다. 중국이 핵심 광물에 대한 글로벌한 장악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협상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의견 수렴 기간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미국 에너지부는 내년 1월 4일까지 FEOC 해석 지침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한다. 미국 재무부와 국세청은 내년 1월 18일까지 FEOC 준수와 결정에 관한 실무절차 관련 의견을 받는다. 한국무역협회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나 중국 공산당의 관여 정도가 핵심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와 아예 관련이 없는 순수 민간 기업도 있을 수 있다”며 “초안이 강화될지 현 수준에서 유지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세부적인 내용이 추가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의견을 받는 상태다. 업계와 한 번 더 회의를 거친 후 해당 내용을 취합해 미국에 보낼 예정”이라며 “큰 틀에서 초안은 유지되겠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충분히 변경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배터리산업협회 한 관계자는 “가이던스 자체가 수정되지 않더라도 국내 업계 의견이 반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은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이 아니었는데도 미국과 광물 협정을 체결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포드-CATL 같은 기술제휴 지침도 확정될까
배터리 업계는 FEOC 지침 중 ‘기술제휴(라이선스 계약)’ 관련 내용에도 변화가 생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배터리 부품과 핵심광물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사용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할 경우, 중국 등 우려국 정부가 핵심광물이나 배터리 부품소재 생산 전반에 대한 유효 통제권을 가져야 FEOC로 간주하기로 했다. 미국 완성차 기업 포드와 중국 배터리 셀 업체 CATL은 포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CATL은 기술을 지원하는 형태로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이 지침대로라면 사실상 기술제휴 형태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는 방식은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철완 교수는 “중국의 민간회사라 하더라도 미국에 합작회사를 만들면 안 된다는 내용이 없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과 합작회사를 설립할 때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중국 배터리 셀 기업이나 소재 기업이 미국 완성차 기업과 기술제휴 방식으로 협력하는 등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미 CATL과 포드의 사례가 있어 부담도 덜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기술제휴를 하는 사례가 늘면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높아질 여지가 있다. 우선 중국 배터리 업체들과 완성차 기업들의 협력 사례가 늘어나면 중국이 주도권을 잡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시장이 더욱 확대될 수 있어서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전기차 가격 인하 압력이 큰 상황이다. 또 가이던스만 지키면 중국 소재 기업들도 미국 완성차 기업과 협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완성차 기업들이 직접 중국과 합작사를 세워 배터리 소재를 공급받게 되면 우리나라 소재 업체의 입지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평가다.
강인수 교수는 “경제적인 논리로 봤을 때 중국의 저렴한 배터리를 수급해야 하는 상황이라 (기술제휴 형태 계약을) 금지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만 보면 지침을 더 강력하게 개정할 여지도 있다”며 “다만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이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국과 대립을 강화하면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경기나 내년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입법 내용이 향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고 했다.
하지만 해당 지침이 그대로 확정되더라도 중국의 미국 진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제도상 틈이 보인다 하더라도 미·중 갈등 국면이 바뀌지 않는 한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에 직접 진출하는 게 위험 부담이 있을 것”이라며 “CATL이 포드와 기술제휴 형태로 미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미 의회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 바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미국 시장 진출 전략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제휴 형태의 협력을 사실상 막지 않은 이번 지침을 두고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외신에 따르면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의원은 “미국의 이익보다 전기차 업체의 특별한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며 해당 지침을 비판했다. 미국 정부는 포드와 CATL 합작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배터리가 세금 공제 대상인지 여부를 밝히지 않은 상태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