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행 루머로 ‘광란의 8시간’ 해프닝도…데뷔전은 한국에서 김하성과 맞대결
# 전 세계 스포츠 사상 처음 나온 거액
다저스는 올 시즌 중반부터 꾸준히 오타니의 유력한 차기 행선지로 거론돼 온 팀이다. 오타니의 다저스행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의미다. 7억 달러라는 계약 총액은 전 세계 스포츠 역사에 처음 등장한 거액이다. '축구황제'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가 2017년 스페인 라리가 FC 바르셀로나와 6억 7400만 달러(5년 계약)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에 재계약했는데, 오타니는 6년 만에 이 금액을 뛰어 넘어 역대 단일 계약 사상 최고액을 경신했다.
북미 4대 프로스포츠에서는 한동안 오타니의 몸값을 따라잡을 선수가 나오기 어려울 듯하다. 이전까지 역대 최고액 계약은 2020년 미국프로풋볼(NFL) 간판 쿼터백 패트릭 마홈스가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계약을 10년 연장하면서 사인한 4억 5000만 달러였다. 또 MLB 선수 기준 최고액 계약은 오타니의 팀 동료였던 마이크 트라우트가 2019년 LA 에인절스와 연장 계약한 12년 4억 2650만 달러였다. 오타니는 마홈스와 트라우트의 계약 총액을 2억 5000만 달러 이상 추월하면서 단숨에 '7억 달러 시대'를 열어젖혔다.
오타니는 또 지난 시즌 아메리칸리그(AL) 최우수선수(MVP) 경쟁자였던 뉴욕 양키스 간판타자 에런 저지보다 2배 가까운 금액을 손에 넣게 됐다. 저지는 지난해 말 원 소속팀 뉴욕 양키스와 역대 빅리그 FA 최고액인 9년 3억 6000만 달러에 사인했다. 오타니는 한 시즌 만에 이 기록을 가뿐히 넘어 역대 가장 '비싼' 선수로 우뚝 섰다.
10년 계약의 연평균 금액 7000만 달러도 MLB 역대 최고 연봉에 해당한다. 종전 최고 연봉은 베테랑 투수 맥스 셔저와 저스틴 벌랜더가 올해 뉴욕 메츠에서 받은 4333만 달러였다. AP통신은 "오타니의 연봉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선수단 전체 급여보다 많은 금액"이라고 소개했다.
CBS스포츠는 이와 관련해 "이전 소속팀 에인절스는 오타니를 광고·마케팅·유니폼 판매 등에 적극 활용해 연간 2000만 달러 가까운 수익을 냈다. 스포츠에서 오타니만큼 '돈이 되는' 선수는 없다"며 다저스의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오타니의 이름을 새긴 다저스 유니폼은 출시 후 48시간 판매량 기준으로 역대 스포츠 스타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MLB닷컴은 스포츠 의류 판매업체 '패너틱스(Fanatics)'의 통계를 근거로 "오타니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메시 등 글로벌 축구 스타들을 제치고 제치고 최다 판매 기록을 썼다"고 공개했다.
#슈퍼 스타의 거취에 쏠린 관심
오타니는 프로에 데뷔하기 전부터 슈퍼 스타였다. 2013년 일본 프로야구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한 뒤 '이도류(二刀流·투타 겸업)' 열풍을 일으키며 리그를 평정했다.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는 동시에 홈런 30개 이상을 때려내는 '괴물'의 존재에 일본이 들썩였다. 그가 2018년 에인절스와 계약해 빅리그 무대를 밟자 미국와 일본의 많은 야구인들은 "세계 최고 리그인 MLB에서는 투타 겸업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오타니는 보란 듯 또 다시 투수와 타자로 모두 성공을 거두면서 MLB에 거대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오타니의 활약에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 "야구 그 자체", "인간이 아닌 외계인 같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FA를 앞둔 올 시즌에는 특히 타자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홈런(44개)·출루율(0.412)·장타율(0.654)에서 아메리칸리그 1위에 올랐고, OPS(출루율+장타율·1.066)는 MLB 전체 1위였다. 투수로도 23경기에 선발 등판해 10승 5패, 평균자책점 3.14을 기록했다. 그 결과 2021년에 이어 또 다시 만장일치로 두 번째 아메리칸리그 MVP에 등극했다.
에인절스와 6년 계약이 끝나고 FA가 된 오타니의 거취와 몸값은 시즌 내내 MLB를 달군 주요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미국 언론들은 일찌감치 "오타니가 북미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총액 5억 달러를 넘길 것"이라고 점쳤다. 오타니가 시즌 막판 팔꿈치를 다쳐 내년엔 지명타자로만 나서게 되자 일각에선 "1년 동안 투수로 뛸 수 없으니 계약액이 예상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수많은 구단이 치열한 영입 경쟁을 벌이면서 오타니의 주가는 오히려 치솟았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저스와 엇비슷한 금액을 제시하며 총력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오타니와 그의 에이전트는 MLB 윈터미팅이 종료된 후에도 장고를 거듭하며 결정을 미뤘고, 다른 구단들은 "오타니가 빨리 계약해야 다른 FA 선수들의 계약도 이뤄질 수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미국도, 일본도 오타니로 난리법석
그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오타니가 다저스 입단을 발표하기 8시간쯤 전에 "오타니가 토론토와 계약하기 위해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졌다. MLB 취재에 잔뼈가 굵은 MLB 네트워크의 존 모로시 기자가 자신의 SNS에 "오타니가 곧 새 팀과 계약할 것 같다. 그 팀은 토론토가 유력하다"는 글을 올린 게 발단이었다. 그러자 한 SNS 사용자가 항공 추적 사이트를 검색한 뒤 "(오타니의 거주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로 향하는 개인 전세기 일정이 있다"고 거들었다. 토론토 팬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토론토 공항에는 오타니를 찍으려는 파파라치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 전세기에는 캐나다의 유명 사업가 가족이 탑승했고, 오타니는 바로 그 시간 자택에 머물고 있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일본 닛칸스포츠는 일련의 해프닝을 소개하며 '광란의 8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오타니는 몇 시간 뒤 다저스와 계약 사실을 알리면서 서두에 "결정이 너무 늦어진 점을 사과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오타니의 다저스행이 알려지자 새 소속팀 다저스와 전 소속팀 에인절스의 희비는 엇갈렸다. 다저스의 공동 구단주인 미국프로농구(NBA) 레전드 스타 매직 존슨은 자신의 SNS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기로 결정해 준 오타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전 세계 모든 다저스 팬이 매우 행복하고 흥분된 상태다. 다저스에 온 걸 환영한다"고 썼다. 마크 월터 다저스 회장도 "오타니가 재키 로빈슨, 샌디 쿠팩스, 노모 히데오 등 전설적인 선수가 뛴 다저스에 온 걸 환영한다"며 "오타니는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갖췄다.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선수"라고 반겼다.
반면 오타니와 공식적으로 작별하게 된 에인절스는 홈 구장 에인절스타디움 외벽에 설치했던 대형 사진을 곧바로 철거했다. 대신 구단 공식 SNS를 통해 "오타니는 세대를 초월한 선수다. 그가 6년간 새 역사를 쓰고 야구의 한계를 재정의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우리 팀과 함께해준 오타니에게 고맙다. 앞으로 선수 생활도 축복한다"는 작별인사를 남겼다. 앞서 오타니가 "지난 6년간 응원해주신 에인절스 구단과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 시간을 내 마음속에 영원히 새기겠다"고 인사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오타니의 고국 일본도 '국민 영웅'의 역사적인 계약 소식에 종일 들썩였다. 7억 달러를 일본 엔화로 환산하면 약 1015억 엔에 달한다. 요미우리 신문은 '1000억 엔의 사나이'가 탄생했다는 호외를 특별 발행해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스포츠호치는 "오타니가 국가 예산급 계약에 성공했다", "혼자 오사카에서 박람회도 개최할 수 있다", "역시 인간의 스케일이 아니다" 등 일본 팬들의 열렬한 반응을 소개했다. 도쿄스포츠는 "오타니에게 최우선 조건은 '돈'이 아니었다. 우승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다저스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6800억 달러를 10년 뒤 수령한다?
오타니의 다저스 입단 발표 이튿날엔 계약 총액만큼이나 파격적인 '지급 유예(deferrals)' 조항이 구체적으로 공개돼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디 애슬레틱은 12월 12일 "오타니는 7억 달러 가운데 97%에 해당하는 6억 8000만 달러를 계약기간 이후인 2034년부터 2043년까지 무이자로 나눠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빅리그에서 대형 계약을 한 선수들이 구단과 합의해 연봉 일부의 지급을 유예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다만 그 금액은 대체로 연봉의 10~20% 수준이고, 많아도 50%를 넘지 않는다. 무키 베츠도 2020년 다저스와 12년 총액 3억 6500만 달러에 사인하면서 약 33%에 해당하는 1억 15000만 달러만 나중에 받기로 했다.
그러나 오타니는 사실상 대부분 연봉을 지급 유예 금액에 포함했다. 바꿔 말하면 향후 10년간 받게 될 총액이 2000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오타니가 올해 에인절스에서 받은 1년 연봉(3000만 달러)에도 못 미친다. 올해 빅리그 선수 평균 연봉은 약 490만 달러였는데, 오타니는 그 절반도 안 되는 연봉 200만 달러를 받으면서 10시즌을 뛰어야 한다. 그런데도 향후 팀의 전력 보강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먼저 이런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저스는 오타니의 연봉 지급을 유예하면서 2400만 달러의 사치세(연봉 합산 금액이 일정 기준을 넘긴 구단에 부과하는 제재금) 여유분을 확보하게 됐다.
오타니의 월드시리즈 우승 열망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에인절스에서 한 번도 포스트시즌을 경험하지 못해 매년 아쉬움을 삼켰다. 다저스로 이적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우승할 수 있는 팀에 가고 싶다"는 의지였다. 구단을 통한 공식 입단 인사에서는 "다저스 구단과 나는 'LA에서 월드시리즈 우승 퍼레이드를 벌이겠다'는 목표를 공유한다고 100% 확신한다"고 거듭 강조했을 정도다. 디 애슬레틱은 "오타니의 지급 유예 결정 덕분에 다저스는 현금 운용에 유연성을 더하게 됐다. 일본인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릭스 버팔로스) 등 전력 강화에 필요한 선수 영입 경쟁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 나아가 오타니는 입단 확정 사흘 만인 12월 14일 다저스타디움을 찾아 야마모토와 다저스 구단의 면담에 직접 동석하기도 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 투수인 야마모토를 데려오기 위해 메츠, 양키스, 샌프란시스코 등과 치열한 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다저스는 야마모토의 환심을 사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일본 대표팀에서 함께 뛴 오타니를 꺼내 들었고, 오타니도 흔쾌히 힘을 보탰다. MLB닷컴은 이 장면 역시 "우승을 위해 야마모토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오타니가 당장은 많은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금전적인 아쉬움은 전혀 없을 거라는 해석도 있다. 디 애슬레틱은 "오타니는 광고와 각종 마케팅 등을 통해 야구 외적으로도 연간 5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연봉의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다"고 했다. AP통신은 "캘리포니아 주세는 13.3%로 미국에서 가장 높다. 오타니가 (다저스와 계약 종료 후) 다른 곳에 거주할 때 더 많은 돈을 받는다면,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썼다.
#오타니의 다저스 데뷔전은 한국에서
오타니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뛰는 첫 공식 경기 장소는 미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 될 전망이다. MLB 사무국이 내년 3월 20~21일 샌디에이고와 다저스의 MLB 정규시즌 개막전을 서울에서 치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MLB는 최근 수년간 야구의 세계화와 MLB 홍보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개막전을 열어왔는데, 내년 개최 장소로는 일찌감치 서울을 점찍고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매치업은 한국 야구팬의 흥미를 고려해 김하성의 소속팀 샌디에이고와 박찬호·류현진 등이 몸담았던 다저스의 맞대결로 정했다. 경기 장소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척스카이돔이 유력하다. MLB 관계자들은 지난 7월 고척돔을 찾아 시설을 면밀히 관찰했고, 고척돔 잔디와 조명탑의 조도, 베이스 크기 등을 MLB 기준에 맞추기 위한 재정비에 돌입했다.
당초 이 2연전은 빅리그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친정팀 키움 히어로즈 홈구장에 다시 서는 김하성의 '금의환향 시리즈'가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오타니라는 거물이 다저스에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순식간에 '7억 달러를 받고 입단한 오타니의 다저스 데뷔전'으로 경기의 스케일이 격상된 것이다. 전 세계 야구팬의 시선이 서울 경기로 몰리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미국·일본 취재진의 열기도 엄청나게 뜨거울 수밖에 없다. 샌디에이고 일본인 선발 투수 다르빗슈 유와 오타니가 투타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도 있어서 더 그렇다. 고척돔 입장권을 구하기 위한 야구팬들의 전쟁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