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어 첫 번째, 헬튼 여섯 번째 도전서 영광…셰필드처럼 본즈·클레멘스도 약물 의혹으로 ‘컷’
이들은 앞서 명예의 전당 입회자로 발표된 짐 릴랜드 전 감독과 함께 올해 7월 22일 뉴욕 쿠퍼스타운 클라크스포츠센터에서 열리는 입회식에 참석한다. MLB의 대표 명장 중 한 명인 릴랜드 감독은 지난해 12월 명예의 전당 입회자와 전직 구단주, 기자 등으로 구성된 '당대 위원회'를 통해 명예의 전당 입회자로 결정됐다.
#첫 투표에서 가볍게 통과한 벨트레
명예의 전당 입회자는 최근 3년 동안 단 2명만 나왔다. 2022년 데이비드 오티스와 2023년 스콧 롤렌이 전부였다. 그러나 올해는 한꺼번에 세 명이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그중 가장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벨트레는 1998년 LA 다저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뒤 시애틀 매리너스, 보스턴 레드삭스, 텍사스 레인저스를 거치면서 통산 21년을 뛰고 2018년 은퇴했다. 빅리그 통산 2933경기에서 안타 3166개, 홈런 477개를 때려 역대 개인 통산 홈런 31위에 올라 있다. 올스타로 4회 선정됐고, 홈런왕 1회·골드글러브 5회·실버슬러거 4회를 각각 수상하는 등 경력도 화려하다. 그가 명예의 전당 첫 도전에서 가볍게 목표를 이룬 비결이다. 벨트레는 또 다저스에서는 박찬호, 텍사스에서는 추신수(SSG 랜더스)와 한솥밥을 먹어 한국 야구팬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그는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정된 뒤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가 우러러보던 전설들과 같은 무대에 오르게 됐다"며 "항상 최고가 되고 싶었고, 경기를 즐겼고, 열심히 플레이했다. 덕분에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 같다"고 감격했다.
헬튼은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콜로라도 로키스에서만 17년을 뛴 강타자다. 통산 타율 0.316, 안타 2519개, 홈런 369개를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거포로 활약했다. 다만 그가 선수 생활 내내 고산지대에 있는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썼다는 점에서 종종 평가절하되곤 했다.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쿠어스필드는 해발 고도(약 1.6㎞)가 높고 공기가 건조해 타구 비거리가 늘어나는 구장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2019년 첫 투표에서 고작 16.5%의 표를 얻는 등 앞선 다섯 번의 도전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후 "헬튼이 홈뿐만 아니라 원정경기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표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초조하게 발표를 기다리던 헬턴은 입회자로 결정됐다는 전화를 받은 뒤 주먹을 불끈 쥐며 가족들과 포옹했다는 후문이다. 헬튼은 "정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깜짝 놀랐다"며 "홈 경기 성적과 원정 경기 성적 모두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홈에서 뛰다 다른 구장에 갔을 때는 적응이 잘 안돼 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벨트레처럼 첫 투표에서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한 마우어도 2004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데뷔한 뒤 15시즌 내내 한 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다. 현역 시절 리그를 대표하는 공수 겸장 포수로 이름을 날리면서 통산 타율 0.306, 안타 2123개, 홈런 143개를 쳤다. 2009년에는 타율(0.365), 출루율(0.444), 장타율(0.587) 모두 아메리칸리그 1위에 올라 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르기도 했다. MLB 역사에서 타격왕을 3회 수상한 포수도 마우어가 유일하다. 마우어는 "먼저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던 선배들을 존경하며 야구를 해왔다. 나도 빨리 (내가 입회한) 명예의 전당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야구라는 아름다운 종목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다"고 감격적인 소감을 밝혔다.
#셰필드는 마지막 기회도 무산
반면 과거 '박찬호 도우미'로 유명했던 강타자 게리 셰필드는 끝내 명예의 전당 입성에 실패했다. 그는 올해 10번째 명예의 전당 입회 후보에 올랐지만, 총 득표율 63.9%(246표)를 기록하며 기준선을 넘지 못했다. 9번째 도전에 나섰던 통산 422세이브 투수 빌리 와그너(득표율 73.8%)와 함께 고배를 마셨다. 명예의 전당 투표는 빅리그에서 10시즌 이상 뛰고 은퇴한 뒤 5년이 경과한 선수 중 BBWAA가 선별한 최종 후보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이때 10차례 투표 대상자가 됐는데도 입회하지 못하거나 한 번이라도 5% 미만의 득표를 받은 선수에게는 더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셰필드에게는 올해가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1988년 밀워키 브루어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데뷔한 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플로리다(현 마이애미) 말린스, 다저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뉴욕 양키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뉴욕 메츠 등에서 8개 팀을 거치며 22년간 활약하다 2009년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92, 안타 2689개, 홈런 509개로 홈런 수는 벨트레보다 32개 더 많다. 9회 올스타로 선정되고 실버 슬러거를 5회 수상하는 등 경력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박찬호가 개인 한 시즌 최다승(18승)을 올리던 2000년 다저스에서 함께 뛰면서 셰필드 역시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43개)을 때려내 한국 팬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런 셰필드의 발목을 잡은 건 결국 금지 약물 복용 의혹의 꼬리표다. MLB닷컴은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탈락한 선수 중 일부는 경기력 향상 약물과 관련이 있다. 셰필드 역시 금지약물 복용 대상자로 미첼 리포트(MLB에서 스테로이드 등 경기력 향상 물질을 불법 사용한 선수 명단을 정리한 보고서)에 이름을 올렸다"고 짚었다. 셰필드가 2015년 첫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11.7%의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이유다. 그는 매년 조금씩 득표율을 끌어올리면서 2020년 30%, 2021년 40%, 2023년 55%를 넘기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마지막 도전에서 약물 오명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약물 복용 선수는 철퇴 맞는다
명예의 전당 헌액 여부를 결정하는 BBWAA는 성적 이외의 요소도 투표 기준에 포함한다. 금지약물 복용이나 인종 차별 발언 등으로 야구의 '명예'를 훼손한 선수는 예외 없이 외면 당하곤 했다. 셰필드뿐 아니라 수많은 레전드 스타플레이어들이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탈락했다. 8년 만이자 역대 9번째로 명예의 전당 입회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던 2021년의 투표 결과가 상징적이었다. 월드시리즈 '핏빛 투혼'의 주인공인 투수 커트 실링, 빅리그 최고 홈런 타자 중 한 명이었던 배리 본즈, '로켓맨'으로 유명한 투수 로저 클레멘스가 그해 나란히 9번째 투표 대상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어느 누구도 75%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현역 시절 명예의 전당 입회자로 손색이 없는 성적과 인기를 누리고도 치명적인 약점에 발목을 잡혔다.
실링은 빅리그에서 22시즌 통산 216승 146패 22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한 투수였다. 6차례 올스타에 선정됐고, 세 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다. 특히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이던 2004년에는 발을 다쳐 피가 흐르는데도 역투를 이어가 팀을 86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역사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그는 은퇴 후 무슬림들을 나치로 매도하는 차별 발언을 해 월드시리즈 해설진에서 제외되거나 성 소수자를 조롱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남겼다가 팬들과 설전을 벌이는 등 과격한 행보로 비난의 중심에 섰다. 그는 이런 이유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9차례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자 "차라리 내 이름을 후보 명단에서 제외하라"라고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본즈와 클레멘스는 셰필드처럼 금지약물 복용 이력이 문제였다. 본즈는 22년간 MLB 통산 홈런 762개를 때려내고 볼넷 2558개를 얻어내 두 부문 역대 1위에 올라 있는 빅리그 대표 거포다. 클레멘스도 빅리그에서 24시즌을 뛰면서 통산 다승 9위(354승), 탈삼진 3위(4672개), 투구이닝 16위(4916⅔이닝)에 올라 있는 명 투수다. 본즈의 MVP 7회 수상과 클레멘스의 사이영상 7회 수상은 둘 다 MLB 역대 최다 기록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미첼 리포트를 통해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이 제기됐고, 여러 정황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둘의 금지약물 이력을 비판적으로 보는 '유권자'가 많았다.
실링, 본즈, 클레멘스가 나란히 9번째 후보로 이름을 올린 2021년 투표에서 그나마 가장 높은 표를 얻은 건 '약물 복용은 하지 않은' 실링이었다. 실링은 명예의 전당 헌액 기준에 단 16표가 모자라는 285표(71.1%)를 받았다. 본즈는 61.8%(248표), 클레멘스는 61.6%(247표)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했다. 또 그해 투표에선 단 한 명도 선택하지 않은 '백지 투표'가 14장이나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6년의 12장을 넘어선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그렇게 9번째 도전을 마감한 실링, 본즈, 클레멘스는 2022년 마지막 10번째 투표에서도 끝내 빈손으로 돌아섰다. 이번엔 본즈가 66%(260표), 클레멘스가 65.2%(257표)로 실링(58.6% 득표)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셋 다 75%를 넘지 못해 최종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해 말 BBWAA 투표에서 탈락한 선수 8명을 대상으로 베테랑 선수들의 모임인 '현대야구 시대 위원회'의 추가 투표가 진행됐지만, 세 명 모두 기준 득표인 12표(총 16명)를 충족하지 못했다. 실링이 7표로 탈락했고, 본즈와 클레멘스는 4표 미만의 득표로 냉정한 현실을 실감해야 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