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범위 너무 넓어 고소득자도 수혜” vs “경제 자립 못 한 국민까지 탈락 우려”
건강보험공단은 피부양자 자격의 합리적인 인정기준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피부양자 인정기준 개선방안 연구’를 진행 중이다. 건보공단은 우리나라의 피부양자 인정기준이 넓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친족이 피부양자에 포함되는 등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개선대책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가 완료되면 피부양자에 대한 규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는지 검토할 예정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크게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지역가입자 등 3개 그룹으로 나뉜다. 이 중 피부양자는 직장에 다니는 가족이나 자녀에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으로 보험료를 내지 않고 의료보장을 받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우리나라 피부양자는 약 1703만 9000명으로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33.1%를 차지한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는 각각 1959만 4000명, 1477만 7000명으로 피부양자가 직장가입자보다는 적지만 지역가입자보다는 많았다.
건보공단은 건강보험 제도를 지속하고, 고소득·고액 자산가가 피부양자로 등록해 무임승차하지 못하도록 피부양자에 대한 인정 기준을 강화해왔다. 피부양자가 되려면 정부에서 정한 소득 기준, 재산 기준, 부양요건 기준 등에 부합해야 하며, 사업소득이 있으면 피부양자에서 탈락한다. 건보 당국은 2022년 9월부터 건보료 부과체계 2단계를 개편하면서 소득기준을 소득세법상 연간 합산종합과세소득(금융‧연금‧근로‧기타소득 등) 연 3400만 원 이하에서 연 2000만 원 이하로 낮췄다. 건보공단은 피부양자의 재산과 소득이 늘었는지, 부양 기준은 충족하는지 등을 살펴보고 기준이 넘으면 피부양자에게 사전 안내 후 지역가입자로 전환해 지역보험료를 부과한다.
건보공단의 이러한 조치에도 우리나라에 피부양자가 많은 이유는 피부양자로 인정되는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피부양자 인정 범위는 직장가입자의 배우자(사실혼 포함), 직계존속(배우자의 직계존속 포함), 직계비속(배우자의 직계비속 포함) 및 그 배우자, 형제‧자매 등으로 넓다. 공단에서 정한 연 소득 2000만 원 이하 등 일정소득과 재산조건, 부양조건을 충족하면 부모님, 조부모님, 자녀들을 포함해 손자, 손녀, 증손자, 증손녀, 형제·자매 등 상당히 많은 친족들이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폭넓은 피부양자 인정 기준이 가입자 간 형평성 문제와 고소득·고액 자산가가 피부양자로 등록해 무임승차하는 문제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불능력이 있는 고소득자들과 고액자산가들이 편법으로 제도를 오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그러려면 피부양자 인정 범위를 줄이는 것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원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건강보험료를 지불할 만큼 재산이 많거나 소득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내도록 피부양자 인정 범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저소득층 노인들이나 대학생처럼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피부양자 자격이 될 수 있도록 핀셋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건강보험 피부양자 중 건보료 부과대상인 4000만 원 넘는 차량을 보유한 이들은 3만 2252명으로 나타났다. 차량가액별로 보면 1억 원 초과 2억 원 미만 차가 814대, 2억 원 초과 3억 원 미만 29대, 3억 원 초과 4대 등으로 1억 원 넘는 고가 차량이 847대나 됐다. 수억 원이 호가하는 고급차를 몰고도 건보료를 내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피부양자 인정 기준에 소득 기준이 있지만 피부양자의 전월세 여부와 자동차 등은 소득에서 고려 대상이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문제도 피부양자 범위를 줄여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고령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만큼 의료비 지출이 더 늘어난다”며 “따라서 자산이나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건강보험료를 내도록 개편하는 것이 건강보험 제도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윤 명예연구위원은 “혜택을 받으려고 한다면 의무도 같이 지켜야 한다”며 “소득이 적고 재산이 적은 사람들이라도 조금은 부담해야 하는 것이 사회보험”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10월 발표한 ‘2023~2032년 건강보험 재정전망’에 따르면 올해 건보 재정수지는 수입 93조 3000억 원에 지출 92조 원이 나와 1조 30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그러나 국고지원금 11조 원을 빼고 보험료 수입과 급여 지출만 감안하면 9조 7000억 원 적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출 증가가 이어진다면 국고지원이 계속되더라도 전체 재정수지는 2024년이면 적자로 전환할 것이고, 2032년에는 적자 규모가 20조 원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건강보험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재정확보가 중요하다. 피부양자 인정 범위를 줄이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사람이 많아져 재정 확보에 도움이 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피부양자 제도 자체를 없애고 기준을 단일화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 여부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지불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며 “이미 가족은 해체되고 있고, 1인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피부양자라는 개념이 더 이상 의미 없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대표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에서 탈락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재산 기준 때문에 실제 자신의 소득보다 과도하게 건보료를 내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소득을 기준으로 소득이 있으면 건보료를 내고, 소득이 없으면 안 내는 방식이 가장 깔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기준을 단일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방향으로 건강보험제도를 개편하든 항상 논란과 갈등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보료를 월급과 종합소득에만 부과하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지역가입자에게는 소득, 재산, 자동차에도 건보료를 부과한다. 피부양자 범위 축소로 피부양자가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건보료 부과 기준에 재산도 포함돼 더 많은 건보료를 내야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소득’으로 기준을 단일화 해 건보료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득은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재산으로부터 나오는 임대소득, 금융소득 등 모든 소득을 포함한다.
건보당국의 피부양자 인정 범위 개선에 대해 우려도 있다. 고물가‧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피부양자 범위가 축소되면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소장은 “피부양자 제도가 서민들과 중산층에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며 “물론 소득이 있는데도 숨기고 혜택을 받은 사람은 문제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감시를 더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안 그래도 건강보험료가 많이 올라서 서민들이 힘들어졌는데 피부양자 제도마저 축소돼 지역가입자로 편입되면 생계에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굉장히 피해가 많이 갈 것으로 예상되며, 보험료를 내기 위해 다른 경제적 고통을 감내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순환 서민민생대책위원회 사무총장은 “고소득 고액자산가임에도 피부양자로 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피부양자 범위 축소가 오히려 서민들의 삶에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피부양자 범위를 배우자와 미성년 직계비속, 일부 직계존속으로 단계적으로 축소할 것을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성인 자녀와 형제‧자매 등은 점진적으로 피부양자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이 제안대로라면 성인이지만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지 못한 청년들도 건강보험료를 내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또한 의료비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노인들도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게 되면 건강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상은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피부양자 범위를 갑작스럽게 축소하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특히 노인들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약화시킬 수 있어 우려된다”며 “피부양자인 사람들이 지역가입자인 사람들과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면 피부양자 범위를 줄이는 것보다 차라리 지역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줄여주는 방향으로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관련 연구에 대해서는 아직 진행 중에 있어서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피부양자 범위가 축소 여부, 연구 결과 발표와 관련해서는 아직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소득자나 고액자산가에 대해서는 국세청에서 받은 소득자료에 따라 기준점을 넘어서면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피부양자 범위 축소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며 “연구가 끝나면 종합적으로 검토해 제도 개선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