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주당 586운동권 저격 ‘윤석열 코드’ 담아…이, 현안 조목조목 짚으며 탈당 명분 세워
#한동훈 취임사에 담긴 '윤석열 코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취임 연설에서 민주당을 부패한 586 운동권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는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것이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더욱 폭주하면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앞서 21대 대통령 선거 때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2022년 2월 26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유세에서 “민주당 정권, 특히 이재명의 민주당 주역들을 보면 80년대 좌파 운동권 세력들”이라며 “자기들끼리 자리 차지하고, 이권을 나눠 먹다 보니 이렇게 엉망이 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유사한 내용이 한 비대위원장의 연설문에 담겨 있는 셈이다.
처칠의 연설문 구조를 가져온 대목에서도 윤 대통령 코드가 들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위원장은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서울에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했다. 1940년 6월 4일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에 있었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연설 내용을 차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처칠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고, 여러 차례 처칠의 말을 인용했다.
‘비정상적인 586 운동권 대 정상적인 나머지’ 구도도 눈길을 모은다. 한 위원장은 “만주벌판의 독립운동가들은, 연평해전의 영웅들은, 백사장 위에 조선소를 지었던 산업화의 선각자들은, 전국의 광장에서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들과 넥타이 부대들은, 어려운 상황이란 걸 알고도 물러서지 않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불멸의 역사가 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을 대신해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울 것”이라고 했다. 앞서 언급한 독립운동가, 참전 용사, 넥타이 부대 등은 상식적인 국민이고 민주당과 586운동권 세대는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국민의힘 문제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당 대표가 일주일에 세 번, 네 번씩 중대범죄로 형사재판을 받는 초현실적인 민주당인데도 왜 국민의힘이 압도하지 못하는지 함께 냉정하게 반성해야 한다”면서 “국민들이 합리적인 비판을 하면 미루지 말고 바로바로 반응하고 바꿔야 한다”고만 했다.
불출마 선언은 한동훈 취임사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정치를 시작하면서, 저부터 ‘선민후사’를 실천하겠다”라며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공직을 방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 특권의식 없는 분들만을 국민들께 제시하겠습니다”라며 “우리 당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기로 약속하시는 분들만 공천할 것이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약속을 어기는 분들은 즉시 출당 등 강력히 조치하겠다”고 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같은 코드를 공유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쓴 수사라고까지는 보지 않지만, 그동안 두 사람이 공유해온 어떤 경험의 표현일 수는 있다”고 했다. 김 평론가는 “다부동 전투, 인천상륙작전, 산업화는 TK를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이 공유하는 역사관이다. 여기에 정상적인 민주화 세력을 끼워 넣고 1987년 넥타이 부대까지 이야기 하는 것”이라며 “이 정상적인 세력에 들어가지 않는 게 지금의 민주당, 문재인, 이재명 그리고 586운동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비정상적인 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자신이 온 것이고, 이것이 비상한 상황이라고 규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그러나 비대위원장이면 어떤 것이 비상한 상황이고, 왜 그러한 비상 상황에 빠졌고, 그러한 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돌파할 것인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이번 연설은 본인이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웠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와 그 일당들이 너무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치를 한다는 것이고, (연설 내용은) 결국 그동안 윤 대통령이 이야기했던 서사 구조와 완전히 같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자기 선거를 하면서 비대위원장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편한 지역구를 가겠다고 할 수도 없다”며 “(비례대표의 경우) 선거 제도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연동형이 유지되면 국민의힘은 위성 정당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한 위원장이 비례대표 출마를 못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준석의 ‘마포참숯갈비 선언’
이준석 전 대표는 연설 초반부터 국민의힘을 겨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과 지선의 연승은 당원들의 도움과 사랑 없이는 이뤄낼 수 없었다”며 “잠시 보수정당에 찾아왔던 찰나와도 같은 봄을 영원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반성한다. 그들의 권력욕을 상식선에서 대했고 진압하지 못했던 오류를 반성한다. 모든 것이 제가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 미래를 강조하며 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양당 체제를 꼬집었다. 이 전 대표는 “이제 대한민국의 공용어는 미래여야 한다”며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왜 적장을 쓰러뜨리기 위한 극한 대립, 칼잡이의 아집이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이제 시민 여러분께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검투사의 검술을 즐기러 콜로세움으로 가는 발길을 멈춰 달라”며 “시민 여러분께서 수고롭지만, 아고라에 오셔서 공동체의 위기를 논의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들에게 성원을 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이 전 대표도 한 비대위원장처럼 역사를 언급했다. 이 전 대표는 “과거 정치군인들은 북한의 위협을 항상 강조했다. 그리고 비상 선포를 통해 많은 자유를 억압했다. 놀랍게도 소위 직업군인인 그들은 실제로 쿠데타를 위해 전방 사단까지 동원하는 등 국가 안보를 최우선에 두고 일을 처리하지도 않았다”며 “대통령과 당 대표가 모두 군인인 시대를 겪어내고 이겨냈던 우리가 왜 다시 한 번 검찰과 경찰이 주도하는 정치적 결사체 때문에 중요한 시대적 과제들을 제쳐놓고 극한 대립을 강요받아야 합니까”라고 했다. 검찰 출신인 한 위원장과 경찰 출신인 윤재옥 원내대표를 우회적으로 공격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었다. 이 전 대표는 △R&D 예산 삭감 △윤 대통령의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 △저출산 문제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과 교권 추락 문제 △박정훈 해병대 대령 수사 외압 의혹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연금개혁 사례를 언급하며 “신당에서는 이 위기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당당하게 표 떨어지는 이야기하겠다”며 “무책임한 현재의 위정자들과 다르게 저는 제가 지금 하는 주장과 선택에 대해서 30년 뒤에도 살아서 평가받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신당에 대해서는 “몇 개의 의석을 만들어낼지 확실하지도 않은 누군가의 말에 신빙성이 없고, 실행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더 많은 의석을 만들어 달라”며 “이준석이 정당을 끌어나갈 돈이 있느냐, 사람이 있느냐 설왕설래한다. 3000만 원으로 전당대회를 승리하는 방식이 정치개혁의 실증적 사례였던 것처럼, 나눠줄 돈과 동원할 조직 없이 당을 만들어 성공한다면, 정치의 문화가 확 바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무리 발언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만의 넥스트 스텝을 걷겠다. 변화와 승리에 대한 확신을 두고 이 길을 즐겁게 걷겠다. 훗날 오늘의 제 약속이 ‘상계동 마포참숯갈비 선언’이라고 위키 한 자락에 기록될 수 있도록 견마지로를 다하겠다.”
이 전 대표 연설문에 대해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어쨌든 자기는 최선을 다했는데 요구했던 게 다 안 돼서 떠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에서 가지고 있었던 자산을 다 내려놨다’라는 탈당의 명분을 세운 것”이라고 분석했다. 채 교수는 “그리고 이제 자신이 단지 권력 쟁취를 위해서가 아니고, 대한민국을 바꾸겠다는 자기 목표를 위해서 싸운다는 대의명분을 강조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민하 평론가는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총론적인 사람이다. 반면 이 전 대표 화법은 각론을 강조하는 식”이라며 “이런 식으로 대척점에 있다는 것을 부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평론가는 “제3지대 신당이 결국은 국민의힘을 대체하는 정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프랑스 사회당이 무너지고 당에서 나온 사람들이 마크롱을 중심으로 뭉쳐서 기존 문법을 깨고 우측에 있는 정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이 전 대표는) 그런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