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둘을 납치해 장기를…’ “카더라” 통신에 그들은 두번 웁니다
최근 들어 인터넷 각종 게시판을 통해 갖가지 버전의 조선족 괴담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살인, 성폭행, 납치 등 강력범죄는 물론 장기매매, 사람도축, 인육유통 등 충격적인 내용도 수두룩하다. 사실관계를 넘어 이러한 괴담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타민족에 대한 혐오감과 분노로 치를 떤다.
하지만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정체불명의 괴담 대부분은 누군가에 의해 그럴 듯하게 조작된 것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괴담 유포가 잦아지면서 선량한 외국인들에게 피해가 가는가 하면 매일 접수되는 허위신고로 인해 경찰의 수사력 낭비까지 초래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최근 본지에 제보된 한 조선족 괴담을 토대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제노포비아(제노포비아(Xenophobia): 이방인 또는 낯선 이를 뜻하는 제노(Xeno)와 공포, 혐오의 뜻을 가진 포비아(Phobia)가 합쳐진 말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외국인 혐오증 정도로 해석된다) 괴담의 실체를 낱낱이 추적해봤다.
기자는 지난 9월 11일, 아이를 둔 몇몇 주부들로부터 ‘유아납치’와 관련한 공통적인 제보를 받았다. 제보 사항은 키우던 아이를 납치해 간 조선족 베이비시터에 대한 내용이었다. 출처는 국내 최대 규모 맘카페로 알려진 ‘맘스홀릭’에 게시된 문제의 글이었다.
sunny라는 닉네임으로 게시된 문제의 글은 “남편 회사 동료 가족의 아이 두 명이 조선족 베이비시터에게 납치당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용의자는 불법체류자로 신분 자체가 위조였다. 국내에서 밀항을 하는 장기밀매 조직으로 의심된다. 현재로서는 아이들 안전이 비관적이다. 아이들이 부모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기자가 경찰을 통해 직접 확인한 결과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거짓말’이었다. 사건 조사에 착수한 경찰관계자는 “직접 확인해보니 관할 경찰서에는 피해사실과 관련한 신고접수 사실이 없었다. 게시자 남편이 재직 중이라는 I 사에서도 피해를 봤다는 직원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문제의 게시글은 악의적 괴담이었다. 현재 괴담 유포자를 찾기 위해 방통위에 협조를 요청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번 괴담유포로 인해 엉뚱한 조선족 베이비시터들만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베이비시터 괴담’ 이전에도 조선족을 타깃으로 한 각종 버전의 괴담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지난 7월에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9명이 서귀포시 일호광장과 동문로터리에서 여자 2명을 납치했다”는 일명 ‘올레길 괴담’이 퍼져 사람들을 혼란케 했으며 지난달에는 의정부 흉기난동사건의 피의자 유 아무개 씨(39)가 조선족 출신이라는 근거 없는 괴담이 나돌아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런가하면 오원춘 사건 이후 시작된 ‘인육괴담’이 끊임없이 번지면서 최근에는 “중국인들은 10월 10일 국경일만 되면 인육을 먹는 풍습이 있다”다는 일명 ‘쌍십절 괴담’이 퍼지기도 했다. 문제의 쌍십절 괴담은 최근 들어 급속도로 번지면서 한때 포털 검색어 순위 수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서울 대림동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는 조선족 이주민 이 아무개 씨는 “우리가 아이를 납치해 장기를 적출했다느니, 인육을 먹었다느니 하는 괴담이 돌 때마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인데도 말이다. 그런 괴담이 돌 때마다 괜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요즘 한국인 손님들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최근 들어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아 우려스럽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갖가지 버전으로 번지고 있는 조선족 괴담의 내막에는 몇 년 사이 한국사회에서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문화와 점점 확산되고 있는 제노포비아 조직들의 활동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안산이주민센터 김영선 사무국장은 “연이어 번지고 있는 조선족 괴담은 분명 제노포비아 문화의 한 현상이다. 그 타깃이 ‘조선족’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국내 거주하는 이주민들 중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불특정다수에 대한 이러한 괴담 유포 현상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최근 들어 제노포비아 성향의 조직들이 점차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우려할 수준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조직들은 대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다문화가정이 지나친 복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피해는 결국 자국민들이 본다는 식이다. 아직까지 외국의 사례처럼 폭력 사태로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분명 조심해야할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제노포비아 성향의 한 단체가 국회헌정기념관에서 벌어진 ‘다문화토론회’ 연단을 점거하는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단체의 주요 타깃은 이주민 출신인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었다. 직접적인 폭력사태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기자와 만난 백석대 김상균 교수 역시 “미국에서도 지난 과거,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인해 몇 차례 인종 폭동이 일어난 바 있다. 자국민들이 이민자 집단을 불황의 원인으로 돌렸던 것이다. 이는 일종의 집단적 증오범죄(hate crime)이다. 최근 조선족 괴담 유포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발생한 것이다. 한국은 아직까지 물리적 충돌에 대해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주민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이에 대한 준비가 요구된다. 특히 경찰은 최근 조직화되고 있는 제노포비아 성향의 단체들에 대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미네르바 사건 당시 적용됐던 전기통신법 자체가 위헌판결로 인해 사문화됐다. 정치권에서 관련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하다. 현재로서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제노포비아 괴담 유포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강제수사권이 없다는 뜻이다. 반드시 조속한 시점에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괴담 유포자 심리 특성
사회 혼란 즐겨…연쇄살인범과 유사
범죄심리학자 김상균 교수는 괴담 유포자들의 심리적 특성이 연쇄살인범들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는 다소 충격적인 분석을 내놨다. 그는 “연쇄살인범들은 사회를 마음대로 지배하고 통제하고 싶은 심리가 내면에 존재한다. 범죄 이후, 국민들이 공포에 떨고 국가, 경찰, 언론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을 즐기며 이를 범죄의 목적으로 두기도 한다. 괴담 유포자 역시 비슷한 심리를 갖고 있다. 잔혹한 내용이 담긴 괴담 유포를 통해서 이를 접하는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면 희열을 느낀다.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성이 높아져 가는 사회현상을 반영한다”라고 설명했다. [한]
사회 혼란 즐겨…연쇄살인범과 유사
범죄심리학자 김상균 교수는 괴담 유포자들의 심리적 특성이 연쇄살인범들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는 다소 충격적인 분석을 내놨다. 그는 “연쇄살인범들은 사회를 마음대로 지배하고 통제하고 싶은 심리가 내면에 존재한다. 범죄 이후, 국민들이 공포에 떨고 국가, 경찰, 언론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을 즐기며 이를 범죄의 목적으로 두기도 한다. 괴담 유포자 역시 비슷한 심리를 갖고 있다. 잔혹한 내용이 담긴 괴담 유포를 통해서 이를 접하는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면 희열을 느낀다.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성이 높아져 가는 사회현상을 반영한다”라고 설명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