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 통한 역외탈세 증가세…펀드 환매수수료 제도 맹점 악용해 편법증여도
사모펀드는 비공개로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주식과 채권, 기업 등에 투자해 운용하는 펀드로 외환위기 이후 도입됐다. 외환위기 여파로 국내 우량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인수되자 국내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토종자본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당시 금융당국은 기업들의 원활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국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지와 달리 사모펀드를 악용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역외탈세가 그중 하나다. 통상 사모펀드는 투자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SPC(특수목적법인)라는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설립한다. 증권업계, 경제 관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일부 사모펀드의 페이퍼컴퍼니는 조세피난처(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혹은 낮게 부과하는 지역 또는 나라)에 설립된다. 조세피난처는 외국환관리법이나 회사법 등의 규제가 적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돼 역외탈세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려도 세금 한 푼 안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때 금융기관도 동원된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후 사모펀드 투자자는 금융기관을 통해 모집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사 직원이 메릴랜드, 버진아일랜드 등에 있는 회사에 투자해 이익을 냈다고 하면 대부분 역외탈세 사모펀드다”라고 귀띔했다.
정부는 2000년대 말부터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올린 투자이익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역외탈세 행위는 여전하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2022년 역외탈세 건수와 부과세액은 △2020년 192건(1조 2837억 원) △2021년 197건(1조 3416억 원) △2022년 199건(1조 3563억 원)으로 소폭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서 역외탈세 건수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역외탈세를 막기 위해 사모펀드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은데,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혀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사모펀드를 악용해 역외탈세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로 펀드 수익금에 대한 세금도 현저히 줄어 역외탈세를 위한 사모펀드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펀드 등 금융상품 투자로 얻은 수익이 연간 5000만 원을 넘으면 수익의 22~27.5%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금융투자소득세가 시행되면 사모펀드는 세금폭탄을 맞는다. 금융투자소득세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모두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2년 11월 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하면서 펀드 수익금 성격을 금융투자소득(22%)에서 배당소득(15.4%)으로 개정했다.
세율만 보면 배당소득세가 적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금융투자소득세는 분리과세지만 배당소득세는 금융소득종합과세 합산 대상이다. 이 경우 사모펀드 등 펀드에서 발생한 수익금의 최대 49.5%를 세금으로 내게 된다. 이총희 공인회계사는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면 사모펀드 투자자들은 좋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이었던 이상훈 변호사는 “소득이 있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 구멍을 만들어주니 역외탈세 문제도 활개를 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모펀드가 편법증여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펀드의 환매수수료가 남은 투자자에게 귀속된다는 제도적 맹점을 악용한 것이다. 환매수수료는 고객이 투자금액을 만기(약정 기간) 이전에 찾을 경우 ‘약속 위반’에 따른 범칙금 형식으로 수익금의 일부를 공제한 금액을 의미한다. 현재 공모펀드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입 후 90일 내 환매시 이익금의 30~70%를 환매수수료로 징수한다. 반면 사모펀드는 특별한 규정 없이 운용사와 투자자 간 자율적 합의로 결정된다.
일부 자산가들은 이를 악용해 거액의 증여세를 회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자산가 A 씨와 자녀 B 씨가 투자자로 들어가 있는 사모펀드가 있다. 시간이 흘러 사모펀드에 수익이 발생하자 A 씨는 이익금의 70%를 환매수수료로 지급하고 펀드를 중도 해지한다. A 씨가 낸 환매수수료는 규정에 따라 B 씨의 몫이 된다. B 씨는 원래 자신의 몫이었던 수익금과 A 씨의 환매수수료를 합쳐 수익을 거둔다. B 씨가 받은 돈은 펀드 수익금이므로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즉, 남은 투자자인 B 씨는 A 씨에게 증여받았음에도 증여세를 내지 않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사모펀드를 통해 편법증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듣긴 했다”며 “자주 발생하진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를 악용한 편법이 성행해도 사모펀드에 대한 모든 규제를 강화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총희 공인회계사는 “사모펀드를 악용한 편법 행위가 발생했을 때 관련한 법 개정은 그때그때 개정해 나갈 수 있지만 모든 사모펀드 규정을 강화해 편법 행위를 막는 건 어렵다”며 “사모펀드 모든 규정을 강화하면 또 새로운 편법 행위가 등장할 것이고, 투자사들이 위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