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변호 맡은 김앤장 “사실관계 입증해야”…전범진 변호사 “지엽적 사안보다 종합적 검토 필요”
그러나 아직은 '소송을 제기할 자격' 등이 명확해졌다는 의미로 결론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동안 전개돼 온 이야기가 그랬듯, 앞으로도 지난하고 복잡한 상황들이 예상된다. 불명확한 옛 기록들을 놓고 여러 쟁점이 첨예하기 부딪히는 탓이다. 무엇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을까.
#피해자 200여 명, 다시 배상여부 다툼
A 씨의 아버지는 불과 50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거동도 힘든 데다 낮과 밤 내내 기침이 심했고, 어떤 때엔 숨이 넘어갈 듯한 기침을 내뱉으며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A 씨의 아버지는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한 1938년 일본 해군 군속으로 차출됐다. 그러다 1942년 기계를 조작할 줄 안다는 이유로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제철소에서 굴삭기 등으로 철광석 등을 드는 작업에 강제동원됐다. 생전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그 시절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안전장구도 없이 거의 종일 작업했고, 유독가스와 심한 분진 속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B 씨의 아버지는 1943년 현 전북 군산시 지시를 받고 일본제철 인솔자를 따라 동해 바다를 건너 야하타제철소로 끌려갔다. 오염물 제거 등의 노역에 종사했는데 지옥 같은 환경에 도주를 시도하다 발각돼 일주일 동안 심한 구타를 당하고 식사도 제공받지 못했다고 한다. B 씨도 아버지가 생전 온전했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 같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혹은 자녀나 유족들이 피해배상을 받고자 법원을 오간 지 벌써 10여 년째다. 일본의 사과는 없지만 잘못만큼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A 씨와 B 씨의 경우 난관이 컸다. 일제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다투기에 앞서 피해배상을 청구할 권리 자체가 있는지를 놓고도 곳곳에서 얘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2019년 소를 제기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법원은 대법원이 일본의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한 2012년을 소멸시효 기준점으로 봐 왔다. 청구권은 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3년의 소멸시효를 가진다. 즉 2012년이 소멸시효 시작점이면 2015년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대로라면 2019년 소를 제기한 A 씨와 B 씨는 청구권 자체가 없게 된다.
그러나 2023년 12월 대법원이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놓았다. 경기 평택시에 살던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의 손해배상청구에 원고 승소를 확정한 한편, 소멸시효 기산일을 2018년 10월 30일로 명시했다. 이 날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965년 한·일 간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때다.
이에 따라 A 씨와 B 씨처럼 2018년 10월 30일 이후 3년이 지나기 전에 제기된 소송도 무리 없이 진행이 가능해졌다. 현재 200여 명이 제기한 약 60건이 계류돼 있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이제 밝은 표정을 하고 있을까.
#오탈자로도 시비…일일이 입증 난관
새솔법률사무소의 전범진 변호사는 이들 가운데 다섯 가족의 변론을 무료로 맡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남은 과정들이 꼭 순탄치만은 않다고 한다.
그동안 일본기업들은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끝났다는 주장을 주로 펴 왔다. 그렇지만 대법원의 최근 판결로 소멸시효 문제는 마무리된 만큼, 앞으로는 지엽적인 부분들을 쟁점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강제동원 자체가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사실관계를 다투기가 까다롭다는 점을 이용한 전략이다. 이를 테면 일제강점기에는 모든 기록을 손으로 쓴 탓에 잘못된 표기가 꽤 있다. 같은 성씨라도 한자 표기가 다르게 기재된 식이다. 이런 점들을 토대로 '원고가 강제동원자라는 사실 자체를 확신할 수 없다'고도 주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옛 기록에는 창씨개명한 이름이 적혀 있어 이를 원고와 동일인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주장은 몇 차례 반복해 왔다. 심지어 회사 주인이 바뀌었으므로 옛 강제동원을 한 일본 기업과 현재 기업은 다르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전 변호사는 이 같은 주장들을 하나하나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는 "국가기록원 등의 옛 기록과 수많은 논문들을 다 찾아보고 있다"며 "이참에 불명확한 기록들을 명확히 하고 있는데, 앞으로 법원도 이를 의미 있게 받아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기업의 변호를 맡은 곳은 한국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이다. 이들이 A 씨와 B 씨의 재판에 낸 서면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는 사람들의 막연한 진술에 근거해 피징용자를 인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원고들이 언제, 어떻게 동원됐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일본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했다는 것인지 자료가 없다…(중략)…민사소송은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정을 위한 면밀한 증거조사 절차가 기본이다."
하지만 일제 강제동원을 증명할 자료들은 수없이 존재한다. 김앤장의 이런 논리에 전 변호사는 "일본 현지에서도 일본제철이 쓴 '조선인 노무자 관계' 자료가 발견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제철 식민지에서 사람들을 속이는 방식과 임금 미지급 등의 기록을 남겨둔 논문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B 씨의 사례로 보면, 그의 진술은 야하타제철소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피해자들의 현실을 다룬 각종 기록들의 증언과 대부분 일치한다. 1942∼1943년 전북·충남 등지에서 목적지도 모른 채 끌려갔으며, 일본에서는 외출 및 개인행동이 일체 금지됐고, 전염병 등으로 죽는 노동자가 많았는데, 시체 치우는 일을 하면 승선권을 빨리 받을 수 있었다는 등의 내용들이다.
전 변호사는 앞으로는 법원의 의지에 피해자들의 승소 여부가 달렸다고 바라본다. 시민들의 지지도 중요하다. 그는 "옛 기록이 손으로 쓰여 오탈자가 일부 있고, 찢기거나 번져 요즘 시대보다 자료가 불명확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렇더라도 부분적인 지점에 주목할 게 아니라 각종 증언과 여러 문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후 판결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법원의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 재정리로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도 다시 공론화할 것으로 보인다.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 유족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적잖은 이들이 제3자 변제는 거부하는 까닭에서다. 2023년 12월 승소한 피해자 유족들도 일본 기업의 직접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피해자와 유족들을 직접 찾아뵙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 해법을 충실히 설명 드리고 이해를 구하는 진정성 있는 노력을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